안녕하세요. 나루입니다. 어제는 오랜만에 폴 토마스 앤더슨의 팬텀 스레드를 봤습니다. 영화가 너무 좋아 어떤 방법으로 이 영화를 소개하면 좋을지 고민하다 평소에 제가 영화를 보는 기준에 따라 이 영화를 소개해볼까해요.
색다른 영화 감상을 위한 몇 가지 팁
- 미장센
영화에서 쓰이는 미장센은 단일 화면에서 담는 영상미를 가리킵니다. 제한된 장면 내에서 대사가 아닌, 화면 구도, 인물이나 사물 배치를 이용해 표현하는 연출자의 메시지와 미학을 말하지요.
영화 초반에 나오는 이 시퀀스를 보고 숨이 멎을 것 같습니다.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죠. 이 한 장면 속에 있는 각종 소품들, 배우의 의상, 벽지, 반대편 의자에 걸려있는 옷까지도 폴 토마스 앤더슨의 미학이 담겨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이름 모를 어떤 명화가 떠올랐어요. 굉장히 회화적인 장면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장센을 이용해서 감독의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 초반에 여주인공(엘마)과 남주인공(우드콕)이 나오는 장면입니다. 두 사람의 거리가 꽤 떨어져있죠?
같은 씬의 다른 숏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 우드콕이 친누나(시릴)와 훨씬 더 가까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우드콕이 엠마보다 시릴을 심적으로 더 가깝게 느끼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영화의 중후반부입니다. 이 장면에선 우드콕이 엘마와 더 가까이 있습니다. 이런 장면 구성을 통해 감독이 우드콕의 심리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카메라의 촬영 방식에 따라서도 아름다운 영상미를 자아낼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은 드레스 디자이너인 우드콕이 엘마에게 자신이 만든 드레스를 입혀주는 장면인데요. 익스트림 로우 앵글(극단적으로 낮은 곳에서 위를 찍는 구도)로 찍힌 씬입니다. 하늘 거리는 드레스의 천이 마치 바다에서 유영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이 장면은 꼭 음악과 같이 들어야합니다 ㅠㅠ)
- 영화 속 음악
저는 영화를 볼 때 음악을 굉장히 꼼꼼히 듣습니다. 일종의 직업병입니다. 음악을 하지 않는 분들은 음악에 큰 신경을 쓰지 않으실텐데요. 아래의 영상을 보겠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 시끌벅적한 파티와, 그 안에서 '석별의 정' 멜로디가 나옵니다. 조금 더 집중해서 음악을 들어보시면 그 아래 조용하게 나오는 음악이 들리실거에요. 이는 우드콕의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음악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석별의 정'은 파티 장소에서 흘러나오는 디제시스적 음악입니다. 그와 함께 나오는 영화음악은 실제 파티 장소와는 상관 없는, 우드콕의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비디제시스적 음악입니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이런걸 신경쓰지 않지만 본능적으로 음악과 함께 스토리를 받아들이곤 합니다. 저 장면에서 만약 신나는 음악이 나왔다면 우드콕의 심리가 또 다르게 느껴졌을 거에요.
- 엔딩 크레딧
저는 늘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영화를 봅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마치 크레딧이 영화의 끝인 것처럼 기다렸단 듯 조명이 켜지는 것은 정말 애석합니다. 엔딩 크레딧도 영화의 연장입니다. 엔딩 크레딧에서 나오는 음악은 그 영화 전체를 함축하고 있어요. 진짜 잘 만든 영화는 크레딧 음악이 좋을 수 밖에 없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엔딩 크레딧을 보면서 영화를 곱씹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찍기 위해 노력한 기억하지 못할 많은 사람들의 이름도 눈으로 담아봅니다. 그러면서 간절히 바랍니다. 크레딧과 음악이 딱 맞게 끝나길. 그리고 그럴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마지막까지 완벽한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팬텀 스레드의 엔딩 크레딧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마지막 반복되는 한 음에서 조니 그린우드의 재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마지막 음을 듣고 전율, 소름.. 황홀할 정도였어요.
이 영화가 정말, 정말 좋았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좋아하는 감독을 항상 우디 앨런이라고 말했어요. 어제부터 그 마음을 바꿨습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PTA)이라고요. 매그놀리아, 펀치 드렁크 러브, 데어 윌 비 블러드, 마스터, 그리고 팬텀 스레드. 한 사람의 필모그래피라고 하기엔 잘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PTA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갈수록 진화하는 PTA의 끝은 어디일지 진심으로 궁금합니다.
이 영화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음악. 어쩌면 영화를 압도하는, 그 음악을 만든 조니 그린우드는 이로써 또다른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은 저는 영화 음악은 영화에 종속된다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절대 영화를 보기 전에 OST를 듣지 않아요. 그런데 이 앨범을 조니 그린우드 신보인 줄 알고 듣게 되었습니다. 꽤 많이 들은 후에야 PTA 영화의 OST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음악을 들을 때마다 장면을 상상해보곤 했어요. 실제로 영화를 보니 제 상상을 뛰어넘는 대단한 작품입니다.(역시 영화 음악은 영화에 종속되는 게 맞아요.)
대학을 다니는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영화과 수업을 들었습니다. 영화가 너무 좋았고, 그래서 영화음악가를 꿈꿨던 적도 있지요. 그 때 영화과 친구들과 여기저기 다니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도 모르게 영화를 분석적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저는 요즘 아무 생각없이 영화 자체만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만, 지금껏 그냥 영화를 보셨다면 한 번쯤은 영화 속 배치, 구도, 음악을 통해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미장센을 소개하며 제가 올렸던 장면입니다. 음악과 함께 들으면, 영상과 함께 보면 그 아름다움이 배가 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