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킹은 미디어 플랫폼 공룡 네이버와 공생하는 인터넷 부족의 ‘추장’이다. “여론은 곧 네이버 댓글”이라는 신념을 가진 스마트폰 시대의 댓글 전문가다. 그가 한반도 평화를 논의하는 세기의 두 정상회담과 맞먹는 뉴스의 영웅이 되는 것이 합당한가. 지난 일주일 동안 국회는 보이콧 상태이고 개헌은 사라졌으며 지방선거는 그들만의 리그가 됐다. 한마디로 드루킹 신드롬이다.
추장이 구속되자 여의도가 발칵 뒤집혔다. 드루킹과 김경수 의원의 메신저앱 통신 기록이 나온 것이 빌미가 됐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들은 앞다퉈 이 사건을 키웠다. 기사를 위한 기사를 양산하다 보니 오보와 왜곡도 잇따랐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천막농성을 벌이며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마저 특검을 요구하고 나섰다.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는 “7년간 영혼이 파괴되는 느낌”이었다며 문재인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대통령에 대한 상당히 격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다. 한국당도 대통령을 직접 겨냥했다. 하지만 드루킹과 대통령 사이는 아직 너무 멀다. ‘최순실 게이트’를 염두에 둔 ‘드루킹 게이트’라는 사건 규정은 차라리 블랙 코미디에 가깝다. 야당은 정말 드루킹으로 지방선거를 하려는 걸까.
하지만 야당의 ‘드루킹 대공세’는 지방선거에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 같다. 야당과 일부 언론의 과장에도 불구하고 ‘드루킹 사건’은 아직 ‘드루킹 사건’일 뿐이다. 일단 스모킹건이 존재하지 않는 데다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지도 않는다. 지방선거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삶의 변화를 호소하는 선거다. 흔히 대통령은 국민이 뽑고, 국회의원은 시민이 뽑고, 지방 대표자는 주민이 뽑는다는 말이 있다.
지방선거는 다른 전국선거에 비해 중앙 정치이슈 영향을 훨씬 덜 받는다. 주민들의 실질적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2010년 지방선거 때 천안함 사건에도 불구하고 무상급식 논쟁이 이슈를 지배한 것은 대표적인 예다. 나아가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을 동원한 여론조작 주범인 정당이 드루킹 사건을 밀고 나갈 자격이 있는가. 야당이 드루킹에 집착할수록 오히려 정권심판론은 동력을 잃고, 여당 후보의 민생공약이 더 잘 스며들 것이다.
물론 여론조작은 민주주의 공론 질서를 파괴하는 중대 범죄다. 스마트폰 시대의 대중은 단지 뉴스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고 참여한다. 뉴스 댓글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저널리즘이다. 댓글을 보려고 뉴스를 보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공감수는 하나의 여론처럼 보인다. ‘베댓 저널리즘’이라는 말이 생긴 이유다. 잉여시간을 가진 새로운 대중의 탄생은 언론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그들은 이제 뉴스에 참여한다. 나아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이 결합하면서 인터넷 부족화 현상이 강화된다.
심지어 네이버의 힘은 너무 막강하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발표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7’에 따르면 한국인의 77%가 검색 서비스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조사대상 36개국 가운데 압도적 1위이며, 2위 일본의 63%에 비해서도 14%나 높다. 언론사 홈페이지를 통해 뉴스를 접한다는 비율은 4%에 불과했다. 1위 핀란드는 무려 64%였다. 네이버 점유율이 70%에 육박한다고 가정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적어도 절반 이상이 온라인 뉴스를 네이버를 통해 보고 있다. 스마트폰 네이버 메인 화면의 다섯 개 뉴스 리스트의 영향력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드루킹이 네이버 댓글 공감수를 조작한 상황을 우리는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 차원의 불법 여론조작 지시나 자금 흐름이 구체적으로 포착된다면 문제는 심각해질 것이다. 하지만 아직 드루킹에게 특정된 범죄 사실은 현재 업무방해밖에 없다. 드루킹의 행적들을 보면 사이비 종교 냄새도 난다. 선거 브로커치고도 엉성하다는 평가다. 대중의 뉴스 참여가 일상화된 지금, 우리는 새로운 방식의 여론조작 범죄에 대해 엄밀한 잣대를 가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 한국당이 주장하는 내용은 지나치다. 2012년 대선의 국정원과 군사이버사령부의 여론조작 사건과 드루킹 사건을 동일시하려는 시도는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국가권력이 국가의 예산과 인력을 선거 부정에 사용한 것은 명백히 헌법파괴 행위이다. 이 사건은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중대 범죄로 이미 법원의 판결도 받았다. 드루킹 사건을 이 사건에 비교하는 것은 한국당이 아직도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에 대한 처절한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일 선거관리위원회와 박원순 홈페이지에 디도스 공격을 가한 것도 상당히 심각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공직선거법과 정보통신보호법 위반으로 특검수사도 받았다.
사건의 경중을 잘 따져야 한다. 드루킹 사건이 야당 주장대로 특검을 받을 사안이라면, 적어도 민주당 차원의 중대한 법률위반 행위가 특정되어야 한다. 김경수 의원이 특정 기사의 링크를 보냈다고 해도 드루킹 조직이 그 기사에 자발적으로 댓글을 달거나 소셜 미디어로 퍼나르는 것이 범죄는 아니다. 오히려 지지자들의 적극적인 선거참여 행위로 봐야 한다.
2012년 미국의 오바마 재선 캠프는 ‘진실팀(truth team)’이라는 트위터 조직을 만들어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진실팀은 첫째 롬니의 공격으로부터 오바마를 보호하고, 둘째 오바마의 치적을 홍보하며, 셋째 롬니의 약점을 공격하는 세 가지 임무를 수행했다. 물론 나라마다 선거법이 다르다. 하지만 선거에서 지지자들의 적극적인 온라인 활동은 민주주의의 한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드루킹이 이 과정에서 선거법을 위반했다면 법에 따라 처벌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당 차원의 조직적 지시 아래 명백한 불법행위가 저질러졌다면 특검을 도입해 철저히 수사해야 할 것이다.
정작 문제는 드루킹이 아니다. 더 강력한 제2, 제3의 드루킹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드루킹은 손가락이고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달’은 바로 네이버다. 독점적인 뉴스 서비스 플랫폼은 항상 공격과 조작의 대상이 된다. 디지털 뉴스 소비가 한 곳으로 집중된 지금 우리는 네이버의 영향력에 준하는 사회적 책임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한국당의 대공세를 이해한다고 해도 만에 하나 유시민 작가의 말처럼 ‘깍두기’를 ‘한정식’으로 오해한 것이라면 좀 공허하지 않겠는가.
민주당과 청와대가 특검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드루킹 특검’이 아니라 ‘네이버 여론조작 특검’으로 프레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역대 네이버에서 일어난 여론조작 여부를 전수조사하는 것이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국정감사에서 “네이버는 뉴스를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 언론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온라인 뉴스를 대부분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에서 소비한다면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상식이다. 페이스북의 가짜뉴스나 네이버의 댓글조작이 선거의 승패를 결정하게 내버려둬서는 안된다. 언어의 양극화로 공론장이 파괴되는 것도 개선해야 한다.
한국당이 논의하고 있는 인터넷 실명제는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뉴스를 클릭하면 언론사 홈페이지로 넘어가는 ‘아웃링크(outlink)’ 방식을 제안하는 전문가가 있고 입법화에 나선 의원도 있다. 또 댓글을 저널리즘으로 인식해 더 높은 책임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뉴욕타임스’처럼 선택 실명제로 책임의식을 높이고 댓글 이력을 보여줌으로써 신뢰도를 부여하는 방법도 있다. 네이버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공론장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플랫폼이다. 네이버 의존도를 줄이든, 네이버의 공정성을 강화하든 무엇인가는 당장 시작해야 한다.
드루킹은 네이버 여론조작의 일각일 뿐이다. 사실 ‘인터넷 부족’의 추장이 도입한 매크로도 이미 가내수공업 유물일지도 모른다. 댓글 추천수 정도가 아니라 실제 사람처럼 글을 쓰고 24시간 퍼뜨리는 인공지능 소셜봇이 회자된 지 오래다.
드루킹 사건으로 지방선거에 올인하는 것은 실익도 명분도 작다. 차제에 여야가 ‘네이버 대논쟁’에 나서라. 드루킹 사건을 미디어 플랫폼의 새로운 표준을 만드는 계기로 만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