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우리가 가즈안이지만 '격'도 있으니, 형이 한 수 가르쳐줄게.
4월이 되면 라디오에서 많이 나오는 시구절이 있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둔한 땅을 휘젓는다."
미국 태생인데 영국으로 귀화한 시인, 극작가, 문학 비평가 T. S.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의 장시 '황무지(The Waste Land)'의 시작 부분이야.
응, 무지 길어. 김국환의 노래 '타타타' 아는 형들 있을까? '타타타'가 바로 엘리엇의 시 '황무지' 맨 끝에서 두 번째 행에서 나왔어. 몰랐지? 무슨 뜻이냐고? 직접 알아봐. 암튼 어디 가서 자랑질하고 싶을 때 써먹어. (분위기 깬다고 얻어 맞진 말고) 궁금하면 끝까지 읽어봐. 명시야.
사실 오늘 하려는 얘긴 '황무지'의 '명구(epigraph)로 알려진 문구야. 맨 앞에 있어. (사진 투척.) 희랍어와 라틴어로 써 있지? 형이 번역해 줄게.
한번은 쿠마이 무녀(巫女) 시빌라가 항아리에 매달려 있는 걸 내 눈으로 직접 보았어. 소년들이 “시빌라야, 넌 뭘 원하니?”라고 물으니, 무녀는 대답했어. “죽고 싶어.”
<시스티나 성당 천정화. '쿠마이의 무녀 시빌라(a Sibila de Cumas)'. 미켈란젤로의 그림.>
이 스토리는 배경을 모르면 이해가 안 돼.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에는 이렇게 이야기되고 있어.
비록 영원한 삶은 가진 그녀였지만, 무녀 시빌라는 천년 가량 살았다. 그녀가 이렇게 오래 산 것은, 아폴론 신이 그녀의 사랑에 대한 대가로 소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폴로 신에게 한 줌의 모래를 들고 와서는 손에 들고 있는 모래만큼 살게 해 달라고 청했다. 나중에 시빌라가 아폴론의 사랑을 거부하자, 아폴론은 시빌라의 육체를 사그러들게 내버려두었는데, 시빌라가 영원한 젊음을 청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녀의 육체는 세월이 가면서 점점 쪼글어 들어 끝내는 항아리에 보존되다가, 결국 목소리만 남게 되었다. (오비디우스, '변신', 14에서)
무슨 말이냐고? 영원히 사는 것보다 젊음이 더 중요하단 거야. 사람이 영생을 바라는 건 실제로는 '영원한 젊음'을 바라는 거야.
진지 빤다고?
젊었을 때 잘 즐겨. 늙으면 끝장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