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정신이 없다. 평소보다 20분이나 빠르게 일어나 5시 20분에 식당으로 간다. 내일 아침은 기내에서 먹을 터이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모든 것에 시선이 한번 정도 더 간다. 여행 첫날 먹었던 아침을 떠올리면서 오늘의 동선과 가져올 음식을 떠올리며 내려간다. 마지막이란 단어가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준건지? 매일 아침 깨우기 힘들었던 아이들이 마지막 날에서야 100% 현지적응을 마친다. ㅎㅎ
나는 아이들이 고르는 빵들을 자르고 버터를 발라 회전식 토스트기에 넣고는 야채, 올리브, 베이컨, 계란, 버터, 쨈을 담아 자리로 간다. 그간 우리에게 신선한 야채를 맛나게 먹을 수 있게 해주었던 드레싱이 딱 바닥을 드러낸다. 과일과 마지막으로 전자레인지에 데운 따뜻한 죽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는 멋지는 커피 한 잔으로 터키에서의 마지막 아침식사를 접는다. 어제 저녁에 짐정리를 하고 제일 큰 가방은 이제 열지 않도록 가득 채워 열쇠를 잠그었는데, 올라오니 마눌이 열어야 한다고 한다. 결국 짐정리에 추가로 15분이 더 걸려 로비로 내려와 텀블러에 뜨거운 물을 담아 버스에 오른다.
흔히 보는 피자 토핑으로 놓이는 올리브는 검은색, 보통 자주 접하는 건 청록색 정도지만 그 색깔과 크기가 각양각색이고 이번에 입맛을 들여 놓은 덕에 한국에 돌아간 뒤에도 자주 먹어볼 생각이다.
오늘도 맑은 날씨로 안탈리아에서 오전에 약 30분 정도 가벼운 비가 온 뒤로는 항상 맑은 날씨만을 허락해준 고마운 터키의 하늘이다.
오늘 첫 행선지는 양질의 올리브유와 관련 건강식과 비누, 화장품을 파는 상점에 30분 정도 들렀다가 남은 터키 리라화와 유로화를 정리하고자 몇 가지 산 뒤에 히포드롬 광장으로 가는 데, 이젠 이스탄불의 주요 관광지가 어느 정도 눈에 들어오고 건물의 위치가 대강 감이 잡히니 다음엔 자유여행으로 와서 깊이 보지 못했던 아쉬운 곳을 다시 둘러봐도 무방할 듯하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주변 상점은 문을 열기 전이고 아침 태양은 딱 좋은 정도로 올라와 있어서 어제 야경으로 보았던 이 주변의 경치들이 따뜻하고 강렬한 햇빛 속에 화려하게 되살아나 어제와는 다른 아름다움을 준다. 진정 햇빛이야 말로 이 세상을 가장 아름답고 분명하게 보여주는 영사기임이 틀림없다.
히포드럼 광장의 랜드마크는 당연히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두 개의 오벨리스크이다.
이제 히포드롬 광장으로 들어서는 데, 단숨에 시선을 잡아 끄는 건 다음의 3개의 유적인데 2개의 높다란 오벨리스크와 하나의 쇠기둥이다.
1, 첫째, 우리가 한번 정도는 보았을 법한 화강암으로 만든 4각주 형태로 하나의 돌덩어리를 가공한 것으로 기원전 1550년에 메소포타미아 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이집트의 파라오 (왕)에게 헌사된 이집트의 “카르나크 신전”에 세워졌었던 2개의 오벨리스크 중에 하나인데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이곳으로 가져와 경기장 내에 설치한다.
2개의 오벨리스크,,,,상형문자는 여기에도 여전히 살아있다. 타원형 밧줄 모양안의 상형문자가 왕의 이름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는데..
약 3천년이 흘렀는데도 오록볼록한 글자가 막 조각한 듯 생생하다.
2, 둘째, 나머지 하나의 오벨리스크는 콘스탄티누스 7세가 벽돌을 쌓아 올려 만든 오벨리스크이다.
3, 셋째, 뱀 3마리가 휘감겨 올라가는 형상의 쇠기둥으로 기원전 5세기에 벌어진 페르시아와 그리스 간의 전쟁에서 패한 그리스인들을 기념하기 위해 그 당시 빼앗은 무기들을 다 녹여 만든 것으로 원래는 그리스의 아폴로 신전에 있었다고 하는데 324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명으로 그리스 델피로부터 이곳 경기장으로 또 옮겨져 설치된다. 약 8m의 높이로 17세기만까지도 이상이 없었다고 하는데 이후에 어떤 이유인지 파괴되어 지금은 맨 위에 있던 뱀 3마리는 간곳없고 뱀머리 일부분에 해당하는 파편만이 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오벨리스크에 시선을 뺏겨서 놓치고 지나갈 뻔했다.
예전 그림 속에 나오는 뱀 3마리의 모습과 박물관에 보관 중인 실제 뱀의 머리 일부분
오벨리스크는 원래 이집트의 고대 신인 태양신 (라)를 상징하는 화강암 조각품으로 가장 길이가 긴 건 하트셉수트 여왕의 30m가 최고이며 신왕조 멸망 후에 로마 황제와 앗시리아 왕들에 의해 약탈당하고 옮겨져 지금은 런던, 파리, 로마, 이스탄불, 뉴욕 등의 엉뚱한 곳에 세워져 있고 정작 이집트에는 5기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자료참조 : https://www.welikemovies.com/home/wlmafitop100challengebenhur
이후 17~18세기에 블루모스크의 건설로 인해 경기장이 해체되고 18세기 후반에는 버려지게 되면서 잊혀지게 되는데 아래 사이트에서 참조한 그림을 통해 그 당시의 규모를 상상해본다. 원래 이 광장은 로마 황제 세비루스에 의해 203년에 이곳을 정복하고 나서 도시를 건축하고 많은 건물도 짓게 되었고 그 당시 시민들을 위해 가장 중요한 장소였던 검투사들이 서로 죽기까지 싸우던 검투용 경기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 이 광장은 로마 황제 세비루스에 의해 203년에 이곳을 정복하고 나서 도시를 건축하고 많은 건물도 짓게 되었고 그 당시 시민들을 위해 가장 중요한 장소였던 검투사들이 서로 죽기까지 싸우던 검투용 경기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4세기 무렵에 비잔틴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가 이곳을 콘스탄티노풀 이라고 명하면서 비잔틴 제국의 첫 재건 사업으로 정한 곳이 바로 이곳 히포드롬이라고 한다. 황제는 이후 검투를 중지시킨 뒤에 이곳을 영화 “벤허”를 비롯해 많은 로마 영화에 등장하는 말이 끄는 “U”자형으로 생긴 전차용 경기장으로 변화시키고 5~7세기 당시 이스탄불의 인구가 약 40만명으로 추정할 때 그 1/10인 약 40,000명의 수용이 가능한 것이 상식적인 규모이다.
아래 사이트는 술탄 아흐메트 거리에 있는 모든 관광지가 영어로 잘 소개되니 참조하면 좋다.
자료참조 : http://blog.istanbultourstudio.com/center-of-byzantine-istanbul-hippodrome-of-constantinople
경기장의 일부가 파손되어 있는 그림이나 오벨리스크의 존재와 그밖의 경기장 중앙을 장식하는 예술품들이 많다.
동로마제국의 심장 비잔티움의 전성기 시의 상상도
이제 길을 건너 성소피아 박물관 뒤에 위치한 톱카피 궁전으로 가는데 화요일은 휴관이니 유념한다. 이스탄불 어디에서도 잘 보이는 높이의 언덕에 위치한 이 궁전은 한때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으로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화려하면서 또한 퇴폐적인 생활을 했던 술탄들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는 곳이다.
1461년에 세워진 이후로 1853년 술탄 압둘 메체드가 제국 수비대를 지금의 돌마바체 궁전으로 옮길 때까지 약 400년 동안 그 위상을 유지하는데 22명의 술탄과 그 가족들이 살았다고 하는데 술탄의 평균 재위기간이 약 20년 정도로 추정되고 19년 정도인 우리나라보다는 약간 길다.
재무부 건물이 같이 있는 관계로 무장군인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옆에서 사진찍어도 무방함?
앙카라에 대한 소개처럼 터키가 공화정을 선택하면서 70만평 크기의 이 궁전은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관광지로 사용되고 있고 4개의 안뜰과 마라마르해가 바로 내려다 보이는 경치까지 이스탄불 최고의 명당임은 틀림이 없다. 여기에서 꼭 보고 싶었던 나만의 보물은 따로 있지만 다음에 다뤄보고자 한다.
오토만 (Orthomans)의 정상적인 Divan-i Humayun 회의의 그림인 Topkapi Palace (Imperial Council meeting)
보물 섹션에 전시된 일명 “스푼장수의 다이아몬드”는 무려 86 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중심으로 49개의 작은 다이아몬드가 둘러싸는 형태의 보석으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다이아몬드라고 하는데, 이를 발견한 어부가 유리세공품으로 알고 스푼 3개와 바꾸었다는 일화 때문에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직접 보지 못하고 사진으로만 보았고 이 외에도 다이아몬드가 줄줄이 박혀있는 술탄의 칼 등 엄청난 가치의 보물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우리로 치면 근정전, 대신들의 조회와 각종 출정식이 벌어진 희락의 문.
희락의 문 설명
희락의 문에 있는 출정기를 꽂아두는 곳. 저 구멍에 깃발이 있으면 술탄이 정복사업 중이란 뜻.
구석구석에 화려함이 배여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첫째가 속이 안좋아서 우린 좀 쉬었다.
궁전의 많은 부분이 “이즈니크 타일”이라고 불리는 화려한 문양의 당시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수제타일로 장식되어 있고 4~11월에는 오전 9시~오후 4시 45분, 11~4월에는 오후 6시 45분까지 개방한다. 많은 보물들과 궁전 여기저기를 더 보고 싶으나 바쁜 일정으로 이것 또한 다음 기회가 있다면 볼수 있을 것이다.
타일로 일해 가장 화려한 궁전임에는 틀림없다.
하렘의 한 건물, 정말 넘사벽인 궁전이다. 유목민족이 뿌리라 초원의 녹색과 오아시스의 파란색이 많다.
이 하렘의 여자들을 오다리스크라 부르는데 왕이나 귀족을 위해 하렘에 살면서 주인의 유희를 위해 존재하는 여자들을 말하는데 1861~76년에 술탄 압둘 아지즈 때에는 그 수가 809명에 달했다고 하니 이들의 방탕함이 극에 달했음을 말해주고 결국 내실을 다스리지 못한 왕국에 미래는 없다는 말이 맞는 듯하다. 맨마지막에 보게 되는 돌마바체 궁전은 건축에 엄청난 돈이 소요되는데 이때 오스만의 재정이 바닥이 났다는 건 다음에 거론한다.
아래 그림은 1814년 앵그르의 오달리스크라는 그림으로 그 미색이 뛰어나고 한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어 여느 나라의 궁녀들처럼 그 내부의 암투가 엄청났다고 하고 당연히 거세를 한 내시들이 이들을 보살피고 관리했다고 한다.
앵그르의 오달리시크라는 유화, 그림 하나로 하렘과 오달리스크의 의미가 어느 정도 전달된다.
매표소를 지나 이제 궁전으로 가는 길, 바로 오른쪽의 상점에 전통의상 체험장과 매점이 있다.
톱카피 궁전의 정문으로 오후가 되니 관광객이 너무 많아 거의 밀려다니는 수준이다.
4개의 안뜰을 상세히 볼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았기에 오기 전에 정보를 찿아서 동선을 정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궁전에서 내려다 보이는 보스포러스 대교와 해협
아들이 한국에서 왔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렇다고 하면 소녀들의 사진요청이 쇄도한다. 한류의 영향이 이 먼곳까지 대단하다.
금강산도 식후경, 이제 점심을 먹으러 도이도이 식당으로 이동한다.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