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꿈을 꾼 듯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연휴 끝 일상은 참 빨리 찾아오는 듯 하네요.
설날 당일, 아버지의 차 안에서 문득 어머니가 보고싶었습니다.
사실 , 또 보고팠던 것이 맞는 말이겠지요.
함께하지 못하고 홀로 타지에서 명절을 보내고 있을 엄마를 생각하니 눈물이 빠르게 차 올랐습니다. 눈물과 함께 명절을 홀로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내 괜히 머쓱해져 눈물을 슥 삼켜내며 아빠에게 말을 건냈습니다.
"아빠, 명절은 어쩌면 너무 잔인한 것 같아 홀로 보내는 사람들은 어떡해?"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운전에 집중을 한 것인지, 저의 잦은 질문이 귀찮았던 것인지 그저 침묵만이 맴돌았습니다.
그 고요함 가운데 저는 행복의 기준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내가 불쌍하다 느끼는 것들 안쓰럽게 여겨지는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내 안의 잣대가 아닐까,
세상의 너무 많은 것들을 제 기준대로 생각하고 판단했습니다.
행복의 기준을 저에게 맞춰 타인을 불쌍하다 여겼습니다.
어쩌면 혼자있는 자유가 편할 수도, 가족의 굴레 안에서 벗어나 자유를 갈망할 수도, 일로 인해 바쁘지만 함께 하는 동료로 인해 기쁨이 차오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태국으로 선교활동을 떠났을 때 만났던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주기위해 갔던 그 곳에서 도리어 충만한 행복을 선사해준 아이들.
저는 그 때 행복의 기준을 모두 무너뜨렸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제 삶의 교만함에 빠져 생각의 굴레를 돌고 또 돌고 있었습니다.
행복은 스스로의 마음 안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것은 자꾸 잊혀져 끝없이 상기해야 제 안에 남습니다.
그날 밤, 저는 또다시 제가 정한 기준의 안쓰러운 사람들이 떠올라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들만의 행복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또다시 잊고 새벽을 눈물로 지새우고 말았습니다.
타인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과 내가 가진 잣대로 상대방을 평가하는 것.
이 두가지에는 아주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저는 그 두가지 안에서 오래도록 방황했고, 지금까지도 끊없이 바로잡아 나가고 있습니다.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우리 연약한 인간은 늘 타인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그 안에는 기쁨도 있고 고통도 있지만 내 안에 정한 행복의 기준은 오로지 나의 것임을 기억하며
그것으로 충만한 기쁨을 누리며 살시기를,
타인을 내 잣대로 판단함으로 얻는 고통은 모두 벗어버리기를 바랍니다.
여러분과 제 자신을 응원하며,
Co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