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간극(間隙)이라는 단어를 되게 좋아한다. 간극이란 둘 사이에 벌어진 틈을 뜻한다.
내가 최초로 이 단어를 인식하게 된 것은 로버트 맥기가 쓴 ‘시나리오란 무엇인가?’라는 책이었는데, 이 책에서 말하기를 이야기란 간극을 좁히는 행위가 이어지며 진행된다고 나와 있었다.
그런데 이건 비단 이야기뿐만 아니라 삶의 거의 모든 것에 해당이 되는 말이다. 이야기라는 것도 그러한 보편적인 원리의 하나에 해당한다고나 할까.
이 세상의 모든 움직임은 간극에서 비롯된다. 물리학으로 말하자면 위치에너지라고 하면 될까, 혹은 전위차라고나 할까. 뭔가 아래와 위가 떨어져 있기 때문에 틈이 생기고, 그 틈에서 긴장이 생성되는데, 그 긴장이 바로 에너지가 되고 몰입과 즐거움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삶의 행복이란 목적이 이루어지는 순간보다는, 그 목적을 이루어나가면서 부족한 현재와 목표 사이의 틈을 메워가는 데 있다. 목표보다는 과정인 셈이고, 노력하는 자체로 성공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가령, 복권의 당첨은 한 순간에 결정된다. 그런데 꽝이면 당연히 실망되겠지만, 당첨이 되더라도 그 기쁨은 고작 몇 분 정도다. 오히려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시간의 대부분은 복권을 사고 그 당첨이 발표되는 시간까지의 기다림으로 채워진다. 물론 당첨이 된 사람은 다시금 그 당첨의 순간과 당첨금을 찾는 순간까지의 간극이 발생해서 당첨금을 찾으러 가는 날까지 또 즐거움이 된다.
스팀잇은 어떤가. 큰 보상이 찍혀 있는 글의 보상이 들어오는 순간은 한 순간이다. 버튼을 누르면 지갑의 숫자가 올라가고 끝이다. 그 순간의 즐거움은 길어야 몇 초에 불과하다. 하지만 진정한 즐거움은, 그렇게 보상이 들어오는 날까지 두근거리며 기다리는 나날들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꿈을 가지고 있으며 언젠가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미래의 어느 한 순간이다. 그 순간과 지금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간극을 좁혀 나가는 매 순간이 즐거움이자 행복이 된다. 그렇게 삶은 계속 간극을 발생시키며 행복을 유지시킨다.
또한 이건 글쓰기에도 해당이 된다. 글을 쓸 때는 아무것이나 쓸 수 없다. 왜냐면, 나만 좋다고 글을 쓰는 것은 독자와의 아무런 간극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독자와 간극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독자는 간극을 타고 올라올 겨를이 없다. 글을 읽어도 재미가 없고 작가가 말하는 곳까지 도달할 수 없게 된다.
글에 간극을 발생시키면 독자는 글을 따라 간극을 타고 오르게 된다. 그리하여 작가가 최초 만들어 둔 간극을 모두 따라 올라가는 그 순간이 모두 재미로 채워지고, 다 읽고 나서는 만족감과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은 드디어 나와의 간극이 좁혀졌으므로,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모두 알게 된 사람들인데, 이 마지막을 읽어서 즐거운 게 아니라, 마지막까지 좁혀지는 이 전의 글들을 읽는 그 순간이 읽기의 즐거움이 되는 거다.
ps
내용이 좀 전문적인지라 댓글 쓸 분들이 없을지도 모를 것 같아 사족 하나 달아본다. UI가 변했다! 화면 오른쪽 위에 연필 아이콘 무엇?
ps2
연필 아이콘이 사라졌다. 되게 세련된 UI였는데 테스트였던 모양이다. 잠시나마 구경해 본 사람들은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이렇게 잠깐 나왔다 사라질 거라면 캡쳐라도 해 둘걸 그랬다. 전에도 뭔가 신기한 UI가 나왔다 사라졌다는 분이 계셨는데, 스팀잇에서 이런 저런 시도를 자꾸 하는 모양이다. beta를 떼면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