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으려다가 혼자 간직하고 싶어 쓰는 개인적 소회
일주일동안 4회, 무리했던 밋업이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든 생각, 안도감이었다. 네 번 모두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내일 드디어 늦잠을 마구 잘 수 있겠구나. 아침 일찍 일어나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다시 나태하게 게으름을 부릴 수가 있겠구나. 수고했다. 나도 그리고 날 만나준 다른 분들도 이 이상한 만남을 응해주느라 고생 많았다.
내향적인 나는 보통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를 소진하곤 한다. 특히 사람이 많은 장소에 가거나 4명 이상 참석하는 모임이 끝나면 내 호불호와 상관없이 어김없이 피곤해지기 일수다. 하루 사람을 만나면 다음 날은 혼자 조용히 쉬며 에너지를 회복해야 했다. 간혹 1:1 만남에서도 흔히 말하는 '기 빨리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 사람이 기가 세서도 그 만남이 재미없었기 때문도 아니다. 그냥 헤어지고 나면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배터리 방전 상태가 될 뿐이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예외적인 만남이 간혹 찾아왔다. 자주 보지 않아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고 고마운 만남. 그 차이도 이유도 모르겠다. 어떠한 논리도 기준도 없이 순전히 내 느낌과 직관에 따라 결정되어버리니깐
이번 밋업은 체력적으로는 너무 피곤해서 집에 도착한 후 쓰러져 자기도 하고 회사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한 시간만 잘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란 생각도 했다. '왜 내가 연속 4번이나 밋업을 잡는 욕심을 부렸던 걸까? 역시 무모했어'라는 후회도 조금 있었다. 그러나 나는 충동과 극단을 즐긴다. 역시 안 하던 짓을 해야한다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질러보는 게 후회가 없고 확실하다.
신기하게도 이번 밋업은 내게 에너지를 주었다. 피곤하다가도 약속 시간이 되면 깨어났다. 대화가 시작하면 너무 재밌어서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그 시간이 지나가는 게 아쉬울 만큼 즐거웠고 자꾸만 흥이 났다. 일주일 내내 격앙된 상태로 웃으며 지냈던 것 같다. 별 다른 노력 없이 일상적인 어느 날이 스위치 하나로 무언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삶이 이렇게 즐겁고 유쾌한 일들로 채워질 수도 있는 거구나. 내 생각보다 더 쉽게 그리고 내 기대보다 훨씬 멋지게.
연속으로 밋업을 진행해보니 비교가 확실했다. 누군가를 만나느냐에 따라 대화 소재가 달라졌고 나의 발화량이 달라졌다. 좀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 다양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거라는 당연한 깨달음을 다시 한번 얻었다. 항상 만나던 사람만 만나다 보니 잊고 있었다. 나도 다른 생각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걸. 내가 꼭 고정된 존재가 아니구나.
그리고 난 내 생각보다 사람을 참 좋아했다. 다른 누군가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고 그가 무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얼 좋아하는지 알고 싶었다. 이렇게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걸 참 좋아하는구나. 사람이 그리웠구나.
생각해보니 내가 쓴 모든 글에는 사람이 있다. 사람이 없는 글을 쓴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글은 누군가에 대한 글이거나 누군가와 있었던 일뿐이다. 난 정말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그냥 그동안 상처를 받을까 봐 안락한 일상이 깨질까 봐 두려워 사람과의 만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나를 속였던 것 같다.
내가 이번에 만났던 모든 분들이 성격도 직업도 하는 일도 관심분야도 모두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다들 삶을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살고 있었다. 내가 게으른 건 알고 있었지만 가끔은 보통이 아닐까란 위로를 했다. 나태와 치열함 사이의 중간 정도, 다들 이렇게 살고 있을 거야 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내 생각보단 훨씬 사람들은 열심히 살았다. 목표와 열정을 지닌 채 긍정하며 하루를 살았다. 나처럼 손 놓고 내버려두지 않았다. 물론 가끔은 그들도 쉬는 날도 있고 나태한 날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내가 가진 삶의 태도와는 상당히 달랐다.
아... 내가 내 삶을 너무 방치해 둔 채 나 자신을 옭아매며 살고 있던 건가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내 삶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아직 내게 너무 어려운 숙제다.
나를 이 밋업으로 이끌어준 제3의 자아 녀석은 비록 처음보단 영향력이 작아졌지만 고맙게도 아직 어디로 떠나지 않고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다신 없을 특별한 한 주를 만들어준 녀석에게 무엇보다도 감사 인사를 올린다. 가끔은 용기 내서 미친 짓을 해보고 싶다.
만약 또 나태해지고 무기력해지면 갑자기 또 이상한 밋업을 제안하며 돌아올지도 모른다.
물론 그때는 1주일에 두 번 정도 감당할 수 있는 범위내로 약속을 잡아야겠다. 욕심 부리지 말고.
삶은 내 생각보다 재밌다.
P.S. 이 이상한 밋업 덕분에 샘터님도 만나게 되었다!!! 얏호 이상한 짓 하길 역시 잘했다.
-급만남 커피 밋업 후기 완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