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 2차를 가는 대신 집에 와서 스팀잇에 글쓰기를 선택한다.
세계의 확장
팟캐스트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된다. 김보통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초연결된 사회. 수많은 다양한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오히려 더 쉽게 사람을 끊어낼 수 있다. 취향이 비슷하거나 나와 잘 통하는 사람만 취사선택이 가능한 세상.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쉽게 차단할 수 있는 세상. 양적으로 많은 사람을 만난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비슷한 사람만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세계는 확장되지 못하다. 작은 세계에 갇혀 있는 셈이다. 우리는 다름에 대해 수용해야만 자신의 세계를 확장할 수 있다.
그러면서 본인이야 말로 성격이 별로 좋지 않아 몇 명 만나지 않는다는 고백을 한다.
나는 그래서 집단생활을 견디지 못했는지 모른다. 금세 사람을 판단하고 가려낸다. 나와 친해질 만한 사람인지 그렇지 않을 사람인지. 배척을 하거나 텃세를 부리는 건 아니다. 차라리 고립된다. 그렇게 내가 좋아할 만한 사람의 유형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비슷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좋아할 만한 사람들로 내 좁은 세계는 가득 찰 거다. 나의 세계는 확장되지 않는다. 나는 그 자리에 머물러 그 작은 세계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어리석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2년 전쯤엔 2차로 노래방을 갔었다.
딴에는 송별회, 오늘은 나의 마지막 회식 날이다. 어쩌면 적당히 성격 좋은 사람이라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못 이긴 척 2차까지 남았겠지만 나는 그냥 집에 가겠다고 했다.
2년 전쯤 이 회사를 들어온 후 첫 회식에서 노래방을 갔다. 나는 그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그들과 무난하게 잘 지내고 싶었다. 나는 열성적으로 탬버린을 흔들고 생목으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나는 평소에 노래방을 가질 않는다.... 그날은 확실히 분위기가 좋았고 그들은 이미 잊었겠지만 그때만큼은 그들도 나를 좋아했던 것 같다. 자기들 앞에서 잘 보이고 싶어 재롱을 떨며 애쓰는 나를
그래도 그게 지금만큼 싫지 않았던 건 아직 그들이 인간적으로 그렇게까지 싫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피곤하긴 했지만 그 순간이 그렇게 괴롭진 않았다. 최근 들어 생각해보니 대체로 나는 그들의 첫인상에 대해서 좋게 기억했던 것만 같다.
(나는 심지어 따뜻한 물을 마시고 싶다고 슬쩍 말하는 이사를 위해서 혼자 편의점에 가서 내 돈으로 따뜻한 꿀차와 포카리스웨트를 사서 내밀었다. 내가 미쳤지)
다음날 이사는 연신 새로운 신입이 노래방에서 얼마나 자신들을 즐겁게 해 줬는지 자랑스럽게 떠들어댔다. 나는 약 3 주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때를 매우 후회하게 된다. 그들은 내 세계에서 나의 그럴만한 호의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싫어하게 된 이후로 사절이다. 마음에도 없는 재롱따윈 정신노동일 뿐이다
잘못된 만남
역사의 If라는 가정은 아무 쓸모가 없다. 만일 그 일이 일어났다면, 만일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미 벌어진 사건에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 다른 이야기를 생각해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역사는 이미 기록되었고 변하지 않는다.
수많은 우연이 겹쳐 발생한 이 회사에 입사한 나를 생각해본다. 이 잘못된 만남은 어디서부터 시작이었을까? 수많은 IF를 떠올려본다.
만일 그때 나를 면접 본 사람이 이사였다면 나는 그래도 이 회사를 다녔을까?
만일 그때 나의 직업상담사 선생님이 나의 이력서를 이 회사에 넣지 않았다면?
만일 그때 내가 기나긴 공백기와 취업에 대한 압박으로 괴로운 시기가 아니었다면?
만일 그때 내가 알레를 만나지 않았다면
만일 그때 내가 여행을 가지 않았더라면
만일 그때 내가 그냥 전에 다니던 회사를 그냥 다녔다면...
만일 그때 내가 그 남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만일... 만일... 만일...
그런 수많은 우연에 의해 나는 이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런 질문을 해봐도 어차피 나는 이 회사를 다녔고 이 일을 겪었다는 사실만이 남는다.
이미 스팀잇에 많이 적어 내려갔지만 그냥 나와 회사가 미치도록 지독하게 맞지 않을 뿐이다.
내 기준에서는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회사를 절대 좋아할 수가 없지만 또 모른다. 내가 답은 아니다.. 다만 내 세계에서는 그게 답이다. 나란 사람에게는 이 회사는 절대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가 없는 끔찍한 회사다.
흔히 여자들만 많은 회사가 더 힘들다는 괴랄한 풍문이 있다. 나의 전 직장은 여자가 90% 이상인 곳이었는데 내가 남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시간이 지나 보니 그런 특징 때문에 그 회사에 더 잘 적응했던 것 같다. 회사는 보통 거대한 군대문화를 지향하게 되는데 (그게 효율적이고 익숙하고 편안하니깐 단체를 통솔하는데 겪은 경험은 그 방식밖에 없으니깐) 아무래도 여자가 많으면 그 군대문화를 만들기가 좀 더 불편해진다. 팀마다 분위기는 다르고 내가 속해있던 팀은 연구소에서도 조금 동떨어진 개별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별로 타 부서 사람들과 교류도 없고 소문에도 느린 그런 팀. 텃세라곤 1도 부리지 않고 그냥 나를 경험이 부족하지만 한 사회인으로서 대해주었다. 일을 함께 하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기분. 보수적인 교육회사였지만 나의 1년 11개월의 회사 생활에서 권위 같은 건 그다지 없었다. 많은 단점이 있던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또라이 팀장도 있었지만 적어도 그 팀장은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권위적이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위계질서가 강한 각 잡힌 단체생활을 해본 적이 없었다. 심리학과는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이 많았다. 기본적으로도 교수님들도 공과 사는 구분했다. 친하다고 학점을 퍼붓지도 않고 친목을 강요하지도 아부를 강요하지도 권위를 앞세우지도 않았다.
가족회사인지 몰랐지만 더 큰 문제는 고작 사람 7~8명이 있는 작은 회사에서 군대놀이를 해야만 했는지 몰랐다. 물론 나는 이등병 역할이라 납작 업드려야 했다. 첫인상이 절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수평적이고 소통을 중시하는 분위기라고 거짓을 말했다. 상식 없는 회사가 아니라고 했다. 그들은 은근슬쩍 따뜻함을 강조했다. 직원들이 오래오래 일하는 회사라고 어필했다. (이것도 거짓이었다)
차라리 아예 말을 하지 않았으면 들어오지 않았을 것을..
아니다 절박한 나는 어쩔 수 없이 들어올 수 밖에...
억지로 2년간 참으며 회사 생활을 했고 참 많이 안 맞았다. 나도 싫었지만 그들도 나를 싫어했다. 그래도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내가 꼴 보기 싫고 싹수없고 인정머리가 없고 버릇없는 신입이지만 명령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당연히 부릴 수 있는 나를 통제할 수 없었기에 화가나고 싫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일상생활이 불행할 정도로 그들을 증오할 수밖에 없었다. 이해해보려는 노력은 한 시간도 가지 않아 깨졌다. 단 하루도 그들을 증오하지 않을 이유를 찾지 못한 날이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명령할 수 없었고 단 한마디의 반박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 성격 어디가겠어. 따박따박 말대답하다가 어느 날 못 참고 한 마디를 하고 완전 눈 밖에 났다. 부장이 이사한테 일렀다. 재밌는 건 그들은 더럽다고 말하면 나를 상대하길 두려워한다. 그들의 권위가 실추되는 데 공포감이 있기 때문이다. 부장은 참 전형적이다. 소심해서 친절한 척 하는 것 뿐이지 마음 속에는 늘 남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내가 그의 권위를 조금이라도 건들 때마다 견딜 수 없이 분노했을지도 모른다.)
오늘 들은 사실인데 내가 진짜 마음에 안 든다고 다른 직원에게 말했다. 아... 좀 더 버티고 진상 부렸으면 그들이 날 잘라 주지 않았을까? 아쉽다고 하자 그들을 나보다 잘 아는 과장님은 그렇다고 자르진 않고 그냥 못 버티게 괴롭혔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그만둔다고 했을 때 그렇게 속전속결로 5분 만에 상담이 끝났었구나. 얼마나 기뻤을까. 축하한다. 목적 달성했다. 내가 더러워서 나간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는 위계, 권위, 권력이다.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한 존중도 동경도 하나도 없다. 풋- 약자나 강자나 어차피 똑간다.(항상 약약약인가?ㅋ) 내겐 그저 한 개인일 뿐이다. 그 사람이 얼마나 부를 가지고 있고 권력을 쟁취했고 얼마나 능력이 좋든 상관없다. 그저 나와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가 오로지 나의 관심사다.
그들은 놀랍게도 나름 중견기업의 전무보다도 더욱더 권위적이고 꽉 막히고 대접받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애초에 나와 도저히 맞을 수가 없는 인연이었다. 우리는 서로 좋게 오해했을 따름이고 당연히 헤어지는 게 결론이다. 답은 정해져있다.
내 세계가 확장되지 않더라도 누가 뭐라고 해도 그냥 그만둔다. 이렇게 살다 간 가슴에 화와 분노가 가득 쌓여 죽을지도 모르니깐. 너무 안 맞는 곳이니깐. 아무리 절박한 상황이라 한들 그냥 나간다. 인내심이 없고 나약해도 상관없다. 내가 망가지기 전에 그냥 나간다.
어쩌면 대부분의 회사가 나와 안 맞을지도 모른다.. 괜찮다. 지긋지긋하다. 군대놀이도 대접받으려는 꼰대들도 돈 주면 내 기분과 태도까지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그 오만함도.
그래도 많이 말랑말랑 유연해지고 모난 부분이 깎여나갔다고 생각했지만 난 싫은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조금도 하고 싶지가 않다.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관해서 하나도 물어보지 않았으면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란 말이 싫다. 그냥 싫으면 서로 무시하자. 관심있는 척 하지좀 마. 그냥 일만 하다 가자 제발.
그래도 역시 미워하고 싶진 않다. 내 인생 낭비다. 그냥 깡그리 내 인생에서 이들을 다 빼내고 싶다.
시간이 무뎌지면 미움도 기억도 사라지겠지만 그렇다고 난 절대 이 회사를 좋은 기억으로 포장하진 않을 거다. 그냥 지워내야지. 모르겠다 한참 지난 후 어차피 안 될 회사 생활 단념할 수 있게 선을 그어준 그들에게 감사해야 할까.
직원이 직원을 갈구기 바라고 요즘 세상에 아랫사람에게 반말하라 강요하는 회사 미련 따위 1도 없다. 아름다운 위계질서 넘치는 군대 잘 만드시고 잘 먹고 잘살길 바랍니다. 제발 연락은 하지 마세요. 어차피 안 받을 거거든요. 그냥 서로 잊자고요.
세계의 확장도... 내가 다치지 않아야 할 때 가능한 거다. 그 말을 들으면서 반성을 하긴 했지만 그냥 내 그릇을 인정한다. 나는 성격이 별로다. 그릇도 작다. 약해서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세계가 와장창 파괴되어버려서 넓혀 나가기 겁이 난다.
나와 다름까진 그래 내가 노력해보겠어. 그런데 그 관계에 위계가 있다면. 나를 동등한 한 사람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사절이다. 돈을 못 벌어도 별 수 없지.
잘못된 만남을 끝으로 그들은 좋은 인연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나와는 상관없지만
이번 주 월요일부터 새로운 직원이 들어왔는데 정말 갓 졸업한 처음 회사 생활을 하는 신입사원이다. 웃는 얼굴에 사근사근하고 명랑한 인상. 그리고 술도 잘 마시고 낯도 안 가리고 잘 논다. 심지어 그 신입을 이 회사를 진심으로 너무 들어오고 싶어 했다. 이 회사에 다녀서 행복하다고.
나는 그 신입이 인간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열심히 하고 성실하고 친근하게 굴고 멀리서 와서 잘해주고 싶어 진다. 속 깊진 않아도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고 있지만 웬만해선 나의 회사에 대한 부정적 편견과 판단에 대해 그리고 진짜 퇴사 이유에 대해서 그녀에게 말해주지 않으려고 한다. 이건 그녀 인생이니깐. (그리고 내가 그만두기 전에 나가면 곤란하니깐 )
그런데 어제는 그녀가 활짝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이 회사는 흔히 말하는 꼰대가 없어서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나는 속으로 내가 세상 태어나서 이런 꼰대들을 처음 보는데.. 속지 마요..라는 말을 삼키며 침착하게 말했다.
-아 그렇군요. 여기 일하는 사람들 좋아요. (가족 빼고)
부디 그녀는 이곳에서 행복하길. 나처럼 찍히지 않길. 부디 그들이 끝까지 그녀들에게만은 꼰대가 되지 않고 계속 좋은 사람일 수 있길
P.S. 혹시.. 퇴직금 정산, 연차수당 정산, 일할 월급 계산 같은 거 정확히 아시는 분 있나요?... 저 그거 해야 하는데... 혹시 도와 주실 수 있는 분 있으시면.. 살포시 도움을 요청해봅니다........ 허허.. 쥐꼬리 만한 월급이니 너무 놀라지 마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