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이 아직도 저기압이다. 어제는 밤늦게 잔득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온다. 아이들이 아빠의 상기된 표정을 알아차리고 걱정스레 묻는다.
아빠! 어디 아파요?
신랑은 아이들에 물음에 뭐라 댓구도 없이 방으로 가서는 누워버린다. 얼굴 전체에 나 피곤함. 나 힘듦. 나 무기력함 이라고 써 있다. 이럴 때면 신랑이 어서 와서 도와 주기만을 바랬던 나의 간절했던 마음은 무색해 진다.
아직 아이들은 하나에서 열까지 엄마손이 필요한 나이다. 그런데 엄마가 밖에서 일을 하다 보니 집안 살림에 육아까지 엄마손 하나로는 부족하다. 그러니 아빠의 손길이 간절한 데, 신랑이 이럴 때마다 왜 아빠는 양육과 살림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인 것 처럼 행동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우리 신랑만 이런가?
요 며칠 행동을 보면 과히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 우리 신랑은 아이들한테는 정말 좋은 아빠이고, 집안 일도 곧잘 도와 준다. 그 스스로 자신이 집안일을 잘 돕고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려고 노력 하는 좋은 아빠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이런 신랑을 보고 있노라면아빠니까 당연히 함께 해야 하는 공동 살림, 육아 주체라는 생각보다는 객체인데 주체가 힘들어 하니까, 주체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객체가 피곤해 지니까 도와준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내재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히 내 회사 가까운 곳으로 집을 이사하고 나니 이런 현상이 더 심해졌다. 출퇴근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이유로 남편이 일찍 출근해 버리면, 아침에 아이들을 깨워서 씻기고, 밥을 먹이고, 옷을 갈아 입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까지 데러다 주는 것은 오롯이 나의 일이 되어 버렸다. 물론 퇴근해서 아이를 하원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TV 프로그램에서도 나온적이 있지만 엄마와 아빠가 아이의 울음을 들었을 때 뇌의 반응도 다르다고 한다. 엄마는 적극적인 뇌의 반응이 나오면서 아이를 도와야 겠다고 생각하는 반면, 아빠는 비교적 소극적인 뇌의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아빠들도 다 이유와 사정이 있을 것이다. 현대를 살면서 가장 노릇을 하려면 정신적, 육체적 노동에 시달리지 않은 가장이 어디 있겠냐 싶다. 그러면 여자들은 안 그런가?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밖에서 일하는 엄마도,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엄마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여자 혼자서 아이를 만들어 낸 것도 아니고, 오히려 열달을 뱃속에 넣고 다니며 힘들게 아이를 낳아주기까지 했다.
요즘 아빠들은 아이에게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단다. 많은 아빠들이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은 모습도 보여지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육아와 살림에 있어 엄마가 담당해야 하는 부분이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맞벌이 부부일수록 육아와 살림의 주체는 부부 공동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늘 신랑한테 카톡으로 소심한 꼬장 한번 부려 봤다. 앞으로 아이들 양육도 요일제로 바꾸자고.
아마 내일도 또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겠지만 이렇게라도 하소연 해 본다.
육아와 살림은 돕는게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