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podbbang.com/ch/13909/?e=22763756
팟빵 일당백에서는 54-2 베르톨트 브레히트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2부가 방영되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베르톨트 브레히트(독일어: Bertolt Brecht, 1898년 2월 10일 ~ 1956년 8월 14일)는 독일의 극작가, 시인, 그리고 연출가다. 주로 사회주의적인 작품을 연출했으며, 낯설게 하기라는 개념을 연극 연출에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표현주의를 거친 신즉물주의적(新卽物主義的) 스타일로, 현실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과 풍자를 극화한 니힐리스트이다. 후에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독일 바이에른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제지공장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뮌헨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 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동안은 뮌헨에 있는 병원에서 잠시 일했다.
전쟁이 끝난 뒤 뮌헨에서 극작가·연출가로 출발하여 후일 베를린으로 나가 막스 라인하르트의 독일 극장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첫 희곡 《바르》(1918)와 이어서 제2작 《밤의 북[鼓]》(1919)으로 클라이스트 상을 받았고, 《도시의 정글 속에서》(1923)와 《서푼짜리 오페라》(1928)로 극단에 결정적인 지위를 굳혔는데, 《서푼짜리 오페라》는 무려 100회가 넘는 공연이 베를린에서 있었다. 초기에는 무정부주의자였으나, 나중에는 전쟁 체험을 통해서 자기의 계급에 등을 돌려 차츰 혁명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인 브레히트는 부르주아의 탐욕을 드러내는 극본과 사회주의 소설 《서푼짜리 소설》을 집필하는 좌파작가로 활동했다. 1933년 극우정당인 나치의 집권과 나치가 좌파탄압을 위해 날조한 사건인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으로 미국에 망명했다. 망명 중에 집필한 《제3제국의 공포와 비참》, 《갈릴레이의 일생》(1938),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1939), 《코카서스의 백묵원》(1944) 등의 상연으로 새로운 연극의 길을 제시하였다.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미국에서도 1947년 12월 극단적인 반공주의인 매카시즘이 불어 브레히트는 다시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으로 이주해야 했다. 당시 많은 동료 좌파작가들이 독일 연방 공화국(서독)을 택했지만, 그만은 동독을 택했다. 하지만 동독 공산당(SED) 간부들이 관료주의에 물들어 있던 동독도 그에게 만족을 주지는 못하여 풍자시를 쓰기도 했으며, 정부가 인민을 버렸다면서 1953년 동독 노동자 봉기 진압을 비판하기도 했다. 1956년 8월 지병인 심장병으로 숨을 거두었으며, 가족으로는 1929년 결혼한 아내 헬레네 바이겔과 두 자녀(슈테판, 바바라)가 있다.
김경석 논문에 따르면 억척어멈은 각각 다른 남자들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카트린, 아일립, 슈바이처카스의 세 자녀가 있다. 그녀는 이들을 데리고 30년 전쟁의 혼란기에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전쟁터를 누비고 다닌다. 세 자녀의 어머니로서 억척어멈은 차례로 자녀를 잃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도 불행의 근원을 깨닫지 못하고 장사에만 몰두한다.
억척어멈의 첫째 딸 카트린은 아기를 갖기를 원하지만 폭행을 당해 얼굴에 남은 커다란 흉터 때문에 남자를 만나기 어렵다. 그녀는 병사들이 할레 시를 기습하기 직전 북소리를 울려 아이들을 구하지만 병사들에게 총살당한다. 큰 아들 아일립 역시 처형당했지만 억척어멈은 아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헛된 믿음을 가지고 혼자 마차 끈을 둘러메고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을 따라 헤맨다. 억척어멈의 이와 같은 면모는 마치 <明天>에서 봉건적 질서체제에 충실하고 부지런한 單四嫂子가 잠이 들때면 꿈속에서 죽은 아들을 만나게 되길 바라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재난은 단지 여성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중이 겪어왔던 재난이었던 것이다. 억척어멈이 추구했던 억척스러운 생존의지만 있다면 밥은 굶지 않을수 있는 ‘안정적인 노예’의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입장에 있었다.
브레히트 作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中 억척어멈
서기가 널 데려오지 않았니? 네가 정숙한 사람이 돼서 그렇게 된 거야. 그자들은 그런 데 개의치 않으니... 상처가 깊지는 않아. 흉터도 안 생길 거다. 자, 이제 다했어. 뭘 좀 줄까? 조용히 해! 널 주려고 몰래 감춰둔 게 있거든... (그녀는 어떤 자루 속을 뒤적이더니 포티에의 굽 높은 빨간 구두를 꺼낸다.) 아니, 얘 쳐다보는 것 좀 봐? 네가 늘 원하던 거 아니냐? 자, 어서 가져. 마음이 변해 널 준 걸 후회하기 전에 어서 신어. 나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여자란 마음에 들게 생겨먹었으면 늘 팔자가 사납게 마련이야. 남자들이란 마음에 들면 닳아서 망가질 때까지 끌고 다니거든. 놈들은 맘에 안 드는 여자들만 살려두겠지. 얼굴 반반한 것들을 본 적이 있는데 얼마 가지 않아서 늑대라도 소름이 끼쳤을 만큼볼수 없는 몰골들이 됐지. 그런 인생이야말로 끔찍하지 않니? 나무와 비유할 만하지.
곧게 쭉 뻗은 볼품 있는 나무는 서까래로 쓰이고, 꾸불텅한 나무들은 살아남는다, 이 말이야. 행운이 별건가? 그게 바로 행운이지. 구두가 아직은 쓸 만하다. 내가 아까 약칠을 해뒀어. (카트린은 신을 놓아둔 채 마차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위 연극에서는 딸이 다치니 능욕당할까봐 오히려 상처가 생기는 것이 낫다고 어머니가 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매우 부조리하고 반어적인 표현이라고 보이는데 연극에서도 억척어멈의 모성애가 주제가 아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는 부모의 경우 자식 흉터를 치료하여 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서양의학적인 수술방법으로는 흉터가 더 커지거나 모양이 바뀔수도 있고 레이저 치료로도 뾰족한 효과가 없으니 치료방법이 부재한 듯하다.
다행히 강남역 4번출구 자향미한의원에서는 오랜 경험과 노력으로 다양한 흉터침을 통해서 얼굴 뿐만 아니라 몸의 흉터도 치료한다. 그 치료 대상 흉터는 인공적이거나 자연적인 것을 막론하고 화상흉터나 수술후 흉터를 치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