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에서는 여러 행사가 있었다. 소모임부터 전체모임까지 다양하게 있어서 놀기도 많이 놀았지만 행사 중에서도 가장 동아리 특색이 짙었던 것 중 하나가 작품전(作品展)이었다.
보통 임서(臨書)라고 하면 배움에 있어 그 근본이 되는 책(법첩(法帖)이라 한다.)을 보면서 글씨를 쓰는 것을 말한다. 작품전을 하게되면 처음에는 배우는 서체(書體)의 한 부분을 정해서 준비하게 된다. 이렇게 부분만을 골라서 쓰는 것을 절임(節臨)이라고 한다.
첫 작품전을 준비할 때는 나만의 색이 없었다. 내 눈에 보이는 그대로 쓰려고 노력했었다. 그럼에도 분명 책을 보면서 글씨를 썼는데도 책의 느낌과 내가 쓴 글씨의 느낌은 달랐다. 획 하나하나를 주의깊게 보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고 아직 기초가 체화되지 않았던 때 이기도 했다. 같은 책을 보고 쓴 것인데도 해석에 따라 혹은 그 사람의 특색에 따라 또 다른 느낌을 내게 된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이름을 붙여 누구누구체라고 놀리기도 했었다.
하나의 서체를 완벽하게 해석하여 내 것으로 만들려면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할까.
안근례비
내가 처음으로 접했던 서체는 안진경(顔眞卿)의 안근례비(顔勤禮碑)였다. 중국의 서예가들은 다양한 서체를 남겼는데 안진경도 다르지 않았다. 예를들어 안씨가묘비(顔氏家廟碑)는 안근례비와 비슷하지만 다보탑비(多寶塔碑)는 같은 해서(楷書)이면서도 다른 사람이 썼다고 생각될 정도로 느낌이 다르다.
두번째 작품전 부터는 나를 지도해줬던 한 선배의 영향을 받아 나만의 색깔을 내게 되었다. 나는 분명 안근례비를 배웠지만 이보다 강하고 남자다움이 짙은 다보탑비의 특색이 약간 섞이게 되었다. 나쁘게 말하면 기교같은 것이었고 그래서 임서의 올바른 길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 멋져보이는걸 어떡해...) 나는 한동안 기교에 빠져있다가 여러 작품전을 거치며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안근례비의 느낌 그대로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다보탑비
책 한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쓰는 것을 전임(全臨)이라고 한다. 선배들은 서체하나를 두고 전임을 여러번 하면서 그 글씨를 익혔다. 나 또한 그렇게 하고 싶어 시작하였으나 의지가 약하여 책의 절반을 넘겼을 즈음에 포기했다. 이것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아서 다시 붓을 들게 되면 전임부터 시작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