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19. 2018.
우리 부부는 축구를 보지 않는다.
축구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스포츠 경기가 우리의 관심 밖이다. 햇님군의 경우에는 불호(不好)의 수준을 넘어서 혐오(嫌惡)의 수준이다. 지금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자기 인생의 절반 정도의 시간 동안 원치 않던 운동을 했던 햇님군에게는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조차 그 때의 좌절과 고통을 떠오르게 하는 장치일 뿐이다.
그래도 어제는 한국과 스웨덴의 축구 경기가 있다기에 난 은근슬쩍 궁금해졌다. 어쨌든 2002년에는 친구들과 함께 거리로 몰려 나가 be the reds 티를 입고 소리를 질러댔던 추억이 있는 나다. 스포츠적 관심보다는 전세계적 축제에 대한 관심 + 세계적인 행사에서 우리 나라가 선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고나 할까.
포털 사이트를 접속하니 다양한 방식으로 축구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문자 중계에서는 사람들이 경기를 보며 실시간으로 의견을 올렸다. 문자들의 내용만 보아도 그리 흥이 나는 경기는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내심 아쉽기도 했다. 오랫동안 준비한 선수들, 관련된 사람들이 얼마나 실망스럽고 마음이 아플까 안쓰럽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제 3자로서 경기를 바라봤고, 어디까지나 그 주체는 선수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그다지 화가 나거나 답답하지는 않았다. 정작 화가 나고 답답한 사람들은 경기장에서 뛰고 있을테니.
하지만 문자 중계방에 있던 다수의 사람들이 보였던 반응은 놀라웠다. 어마어마한 감정의 폭발이었다. 게다가 우리 나라에 이렇게까지 축구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니. 다들 전술을 논하며 선수들의 장단점(주로 단점)을 논했다. 20년 가까이 또는 그 이상 축구를 해온 선수들에게는 기초가 부족하다고 했고, 심지어 자신이 더 잘 할 수 있으니 불러달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거기까지는 축구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우스갯소리 섞인 반응이라고 그렇게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문자의 내용은 더욱 더 불편해졌다. 성적 비하, 게이, 장애 등 축구와는 전혀 상관 없는 범주의 내용들을 덧붙여 모욕적인 말들을 만들어냈다. 축구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지나쳐서 어떻게 보아도 인신공격이었고, 자신의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분노조절 장애를 가진 사람들처럼 보였다. 과연 얼굴을 맞대고 이름을 밝힌 후에도 저런 말을 내뱉을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역시 비겁하다고 느꼈다.
경기보다 문자댓글이 더 재미있다는 반응이 올라왔다. ’재미’라는 요소를 누군가를 비난하며 찾는다는 것이 불편해서 그 공간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그곳은 누가 누가 더 창의적으로, 독하게, 신선하게 비난하는지를 겨루는 경연장이었다. 또 한 번 우리나라의 사이버 윤리가 자리 잡히려면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 뉴스를 보다가 햇님군과 함께 경기 소식을 듣게 되었다.
’경기가 좀 아쉬웠나봐. 다들 말이 많더라. 자기 친구도 욕 많이 먹던데.’
곱셈을 배우기도 전에 축구를 먼저 배웠을 햇님군이 말했다.
’그래도 나보다 잘 해서 저 자리에 있는거야. 그리고 다 진짜 열심히 뛰는 거야. 앉아서 TV 로 보면 어슬렁거리는 것 같아도.’
겪어본 사람은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사랑을 해본 사람은 마음에 대해 쉽게 떠벌리지 않고, 어렵게 사회에 나온 사람들은 취업난에 시달리는 취준생의 시린 마음을 이해한다.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쏟아낼 수 있는 경솔한 비난은 어쩌면 스스로의 무지와 경험의 편협함을 내보이는 행동일 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