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의 발현지, 천재들이 모여살던 피렌체.
그러나 그 많은 천재들 중에 피렌체를 대표할만한 단 한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이 사람을 지목하겠다.
한 손에 컴퍼스를 든 이 사람.
두오모 주변에서 돔을 쳐다보고 있는 이 사람.
그러나 브루넬레스키를 말하기 위해서 일단 이 대머리 형님부터 소개해야겠다. 2인자 기베르티(1378~1455)
피렌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지만 브루넬레스키 때문에 영원한 2인자로 머물 수 밖에 없었던 인물.
때는 1402년의 피렌체, 한 세례당 건물의 문을 교체하는 작업이 시작되는데, 세례당의 관리자들은 이 문에 멋있는 장식을 넣을 조각가를 구하기 위해 공개 공모전을 열게 된다.
20대의 열혈 청년이었던 브루넬레스키와 기베르티는 조각가로서의 명예를 걸고 이 공모전에 참여하게 된다. 두 천재가 대결을 하게 된 것도 흥미롭지만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이 공모전이 예술에 있어서 최초의 공개 공모전이었다는 사실이다.
출처 : 네이버
이게 바로 응모기준에 맞춰서 둘이 출품했던 응모작이다. 왼쪽이 기베르티, 오른쪽이 브루넬레스키의 작품이다. 나라면.. 정말 고르기 쉽지 않을 정도로 비슷비슷해 보인다. 여하튼 공모 주체의 여러가지 기준에 의해 최종 우승자는 선정되었다. 승자는 누구였을까?
바로 기베르티가 최종 우승자로 뽑히게 된다.
그리고 무려 21년동안이나 세례당 문을 장식하기 위한 조각 작업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뙇!
세례당 한쪽 문 장식은 기베르티의 역대급 작품으로 새기게 되었다. 훗날 역대급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이것을 보고 "천국의 문" 같다 라는 감탄사를 날리게 되고, 아직까지 천국의 문이라는 별칭으로 사람들에게 불리워지고 있다.
한편 공모전에서 떨어진 브루넬레스키는 크게 상심을 하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된다. 사실 공모전에서 떨어진 이후에도 세례당 관계자들은 비록 1등은 못했지만 브루넬레스키의 천재성을 인정하고 그에게 기베르티와의 공동작업을 제안한다.
같은 하늘에 두 천재가 공존할 수는 없는 법.. 브루넬레스키는 당연히 그 제안을 거절한다. 급기야는 조각가로서 절필을 선언해버리고 꼴도 보기싫은 기베르티를 떠나 과감하게 로마로 이사를 가 버린다.
그리고 역시 과감하게 전공마저 바꾼다. 그는 조각을 버리고 건축 공부에 전념한다. 브루넬레스키는 로마에서 고대 건축에 대해 연구하며 점차 건축가로서의 명성을 쌓아간다. 언젠가 기베르티에게 복수할 그 날을 꿈꾸며..
시간은 흘러흘러 브루넬레스키에게도 복수의 기회는 찾아온다. 피렌체에서는 또 한번의 공개 공모전을 개최한다. 내용인즉슨, 피렌체의 중앙에 성당을 짓고 있었는데 규모가 어마어마해져서 건축의 마지막 단계인 '돔'을 쌓아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뚜껑 없는 상태로 이 성당은 무려 반 세기나 방치되었고, 피렌체에서는 돔을 쌓을 수 있는 건축가를 공개 모집하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브루넬레스키, 당연히 공모에 참여한다. 자신이 연구한 고대로마의 건축법을 적용해 이 돔을 쌓을 수 있노라며 피렌체를 설득한다. 그 방법이 너무 획기적이었던지, 브루넬레스키를 못 믿은 피렌체는 그에게 기베르티와의 공동작업을 또 한번 제안한다.
시공 설명회가 있던 날 브루넬레스키는 병을 핑계로 일부러 참석을 안 하게 된다. 건축에는 문외한이었던 기베르티는 홀로 시공 설명회에 참석했지만 관계자들 앞에서 '개쪽'을 당하게 된다. 그래서 브루넬레스키는 결국 단독 감독직을 얻게되고, 피렌체의 랜드마크가 될 돔 건축에 착수하게 된다. 똑똑한 브루넬레스키..
브루넬레스키는 결국 돔 건축에 성공한다. 그리고 피렌체 두오모의 돔은 아직까지 피렌체의 랜드마크로서 확실히 자리잡고 있다. 직접 조토의 종탑 위에서 돔을 본 소감은 이건 뭐 그냥 잘 지어진 건축물 정도가 아니라 절대 없어서는 안될 피렌체의 태양같은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
건축가로서 확실히 자리를 잡은 브루넬레스키는 돔의 완공 이후에도 피렌체에서 많은 건축들을 설계하게 된다. 고대 로마의 건축법을 연구한 그는 수학적인 미를 강조한 르네상스 건축양식의 창시자 이기도 하다.
내가 피렌체를 여행하면서 느낀 점은 기베르티의 '천국의 문' 역시 환상적인 작품이었지만, 피렌체 곳곳을 돌아다니며 브루넬레스키의 건축을 접할 때면 그는 마치 이 도시에서 '개인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피렌체에서 브루넬레스키의 건축을 대부분 다 둘러보았다. 그러나 항상 의문이 있었다. 도대체 르네상스 건축양식이란게 정확히 뭐야? 라는 것이었다. 가이드북이나 인터넷을 찾아봐도 명확하게 딱 정의해주는 곳이 없었다.
파리나 밀라노에서 보았던 대표적인 고딕 성당들의 구조를 다시금 떠올리며 비교를 했다. 단순히 고딕 성당은 뾰족하다거나 바로크 건축은 화려하다거나 그런 교과서적 지식이 아닌 내가 직접 공간을 체험하면서 진실로 느껴지는 감정이 중요하다.
산 로렌초 성당(위 사진)과 스피리토 성당 그리고 두오모 성당 내부를 거닐면서 생각은 계속되었다. 밀라노와 시에나의 두오모를 본 사람이라면 상대적으로 텅 비어보이는 피렌체 대부분의 성당의 내부공간에 쉽게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순간적인 실망 뒤 잠시동 안의 시간만 견뎌낸다면 아주 간결하지만 세련된 르네상스 양식의 미학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르네상스 양식의 완성체 혹은 결정체라고 불리우는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파치 가 예배당의 건축을 둘러보고 나서야 무릎을 탁!! 그래 이것이 바로 르네상스 '갬성' 이구나! 라고 느꼈다.
내가 느낀대로 표현하자면 브루넬레스키로부터 시작된 르네상스 건축양식이란 절제미, 수학미, 단순미 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는 항상 전 시대와 후 시대의 비교 예술학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명쾌하게 이해될 때가 많은데, 나 역시 고딕 성당의 모습들을 계속 떠올리면서 브루넬레스키의 건축을 마주보니 점차 머리속에서 개념이 형성되었다.
고딕양식의 성당들의 외부를 보면 장식들이 화려하게 덕지덕지 붙어있고 내부는 마치 해리포터의 호크와트 마법학교를 떠올릴듯한 음산함과 약간의 괴기스러움이 느껴진다.
반면 르네상스 양식을 구현하고 있는 파치가 예배당의 내,외부를 보면 정말 단순하고 미니멀하다. 현대 디자인도 보면 방향이 점점 미니멀화되고 있는데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 역시 보면 허전하다기보다는 굉장히 세련되었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카메라로 건축 내부의 어떤 장면을 찍더라도 반원과 원, 직선의 대칭을 이용한 수학적 절제미가 느껴진다. 마치 컴퍼스와 자로 이루어진 완벽한 수학적 공간에 와 있는 것 같다.
브루넬레스키가 판테온같은 고대로마 건축을 연구한 결과로, 그동안 명맥이 끊어졌던 돔 양식도 그가 만든 건축에서 자주 등장한다.
브루넬레스키가 디자인한 스피리토 성당의 파사드는 이제까지의 아주 화려하게 치장했던 기존 성당의 파사드에 반항이라도 하듯 아무런 조각도 치장도 없이 완전 미니멀하다. 그 당시에 이런 현대적이고 과감한 디자인을 어떻게 시도했을까?
이 존재감 별로 없는 건물은 내가 묵고있던 숙소 바로 앞에 있던 것인데, 알고보니 브루넬레스키의 건축이라 한다. 좀 더 알아보니 그 당시 고아원을 만들기 위한 설계였다고 하는데 이 고아원이 세계 최초의 고아원 건축이라고 한다. 왠지 마음까지 따뜻해 보이는 브루넬레스키..
20대 초반 공모전에서 기베르티에게 패하자 조각가로서 절필을 하다시피 로마로 건너가 고대건축을 공부하고, 다시 화려하게 피렌체로 금의환향 해 새로운 건축양식을 만들어낸 브루넬레스키, 나에겐 피렌체에서 가장 돋보이는 예술가였다. 심지어 르네상스 회화의 토대가 된 원근법까지 만든 그 아닌가.
지금도 여전히 두오모 성당의 맞은편 한쪽에서 쿠폴라를 바라보며 앉아있는 그를 마지막으로 눈에 담으며 피렌체 여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