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중에게 아부하지 않는다"
일단 이 책을 쓴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명언으로 시작하겠다.
탁월한 논쟁가이자 우상파괴자인 히친스는 리처드 도킨스, 샘 해리스와 함께 세계 3대 무신론자이자 브레인으로 정평이 난 사람들이다.
특히 히친스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꾸준히 비판해왔고 사실상 인간의 믿음에만 의존하는 이들 종교는 히친스의 어마무시한 논리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박살이 나기 일쑤였다.
2001년, 마더 테레사의 시성(성인등극)을 위한 찬반의견의 과정에서 교황청의 요청에 따라 반대 측 증거를 제시하게 된 히친스는 본인이 저술한 이 책을 근거로 테레사 수녀의 진실을 폭로했다.
사실 인간세계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얄팍하고 근거없는 믿음으로 똘똘뭉쳐 흘러간다.
왜 그런말 있지 않는가?
'개인이 미치면 정신병이라고 하지만 집단으로 미치는 건 종교라고 부른다'라는 말,
히친스의 무기는 세속주의와 인본주의 그리고 이성이다.
우리가 어렸을때부터 보아온 숭고한 성녀 마더 테레사, 인도 최악의 빈민가 캘커타에서 평생을 바쳐 그들의 삶을 보살피고 그들을 위해 그 주름진 손을 모아 기도했던 천사의 현신으로 불리는 마더 테레사를 그 누구보다도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파헤치는 히친스가 폭로하는 불편한 진실, 그 책이 바로 이 '자비를 팔다(원제: Missionary position)'이다.
책을 읽기에 앞서서 우리가 테레사 수녀에 대해서 왜 이렇게 관대하고 고운 시선을 가졌는지 한 번 냉철하게 생각해보자.
'어렸을때부터 빈민을 위해 사는 그녀의 모습을 TV에서 봤다, 늙고 가녀린 몸으로 기꺼이 빈민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이 숭고해보였다. 그 모습이 좋아보였다'
자, 이외에 또 어떤 이유를 들 수 있을까?
사실 우리가 본 테레사 수녀의 모습은 거의 TV를 통한 모습이 전부이다. 실제로는 어떤 사람인지 모른 채 그저 미디어에서 편집해서 내보낸대로 믿어온 것이다.
그 말은 즉슨, '우리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가 될 수 있겠다.
'왜 헌신적이고 성스러운 마더 테레사를 비판하려 들어?'라는 불편한 마음이 들 수 있으나 그런 식의 감상은 히친스의 반론을 들은 후에 해도 늦지 않으니 일단 아껴두자.
누구나 이런 의문을 가져본 적은 있을 것이다.
테레사 수녀가 헌신한 만큼 인도 캘커타의 빈민의 삶은 나아졌는가?
정답은 '전혀 아니다'. 그녀의 평생을 바친 헌신이 무색할만큼 빈민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그들은 여전히 빈곤과 질병으로 고통받는다.
그렇다면 테레사 수녀가 캘커타에서 행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테레사 수녀는 '수난은 아름다운 것,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예수의 고통을 나누는 숭고한 것'이라고 했다. 고난에 감사하고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식의 가르침은 결국 그들의 삶을 방관하겠다는 말이다.
테레사 수녀의 '사랑의 선교회'의 자원봉사자였던 메리 라우던은 이렇게 증언했다.
'한 방에는 약 50~60명이 넘는 사내가 있었고 다른 방에는 그만큼의 여자가 수용되어서 죽어가고 있었다. 병으로 고통받는 그들은 아스피린 이상의 진통제를 받지 못했고 운이 좋으면 브루펜 같은 항염제를 받았는데 말기 암으로 죽어가는 환자에게나 겨우 처방되었다. 주삿바늘을 쓰고 또 쓰고 너무 여러 차례 사용했고 종종 바늘을 수도꼭지 밑에서 헹구는 수녀들이 눈에 띄기도 했다.'
그렇다면 테레사 수녀가 전 세계 미디어에 성스러운 모습을 비춰가며 벌어들인 그 막대한 기부금은 어디로 간 것일까?
테레사 수녀가 전세계에서 벌어들인 기부금의 행방은 알 수 없다. 그 돈이면 캘커타 뿐만이 아니라 인도의 여러 곳에 수준 높은 병원을 꽤 많이 차리고도 남을 액수였다. 기부금을 다뤘던 수전 실즈라는 사랑의 선교회의 전 회원은 "엄청난 기부금이 모였지만 그 돈은 캘커타의 빈민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라고 솔직하게 토로한 바 있다.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성스러운 것이라고 빈민을 계도하며 자신의 이미지를 이용해 막대한 수익금을 벌어들인 테레사 수녀의 언행불일치는 이것이 끝이 아니다.
테레사 수녀는 기부금의 출처를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다 받았다. 이 중에는 미국의 악질 금융 사기범인 찰스 키팅의 돈도 있었다. 무려 1만 7천 여명의 피해자를 만든 이 금융사기범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테레사 수녀는 판사에게 보냈고 어이가 없어진 판사는 '사기꾼을 옹호하지 말라'는 회신을 보냈지만 테레사 수녀의 답장을 받을 수는 없었다.
또한 테레사 수녀는 남미와 아이티의 악질 독재자와도 깊은 친분을 유지했다고하니 가면 갈수록 그녀의 행보는 의문을 낳는다.
그렇다면 테레사 수녀의 진짜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히친스는 테레사 수녀를 교황 체제가 파견한 일종의 종교 사업가라고 주장했다.
부유한 사람들은 흔히 봉사와 기부로 자기만족을 찾는다. 자신의 마음과 돈이 자기와는 직접적으로 닿지 않는 저 먼 제 3세계의 빈민들에게 희망을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니, 실제 그들의 삶이 나아지는지는 그닥 중요하지 않고 자기들의 '동정의 과시' 혹은 '세상을 나아지게 하는데 일조했다는 자기 마음의 평안'이 목적인 것이다.
부유한 사람들이 찾는 마음의 평안과 동정심을 유발하기에 좋은 제3국의 빈민들은 테레사 수녀와 같은 '종교 사업가'를 필요로 했고 카톨릭 교황청의 지시로 캘커타에 파견된 그녀는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누군가는 아직도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목적이 어찌되었건 애초에 아무도 관심갖지 않았을 빈민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그녀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말자'라고.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삶이 나아졌는가?
여담으로 말하자면,
적당히 더러운 것을 안 보이게 포장하고 보여지는대로 믿고 '세상은 아직 살만해'라고 믿거나
합리적 의심을 계속해나가면서 불편한 진실을 알아가는 것은 오로지 본인의 선택이다.
난 후자이다.
실체를 파헤치는 것은 언제나 지적충만감과 통쾌함을 준다.
테레사 수녀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by Tizia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