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 때 일이다.
나는 당시 굉장히 소극적인 아이였고 숏컷을 했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으며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기피했다.
5학년때 까지는 먼저 다가와 준 아이들이 있었기에 혼자는 아니였다.
그러나 6학년이 되었을 때 친한 친구들은 모두 다른 반이 되었고, 그래서 나는 반의 가장 구석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그림만 그렸다. 그런데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반에서 제일 시끄럽고 소위 '논다'는 남자애가 나를 두고 놀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별 반응 없던 몇몇 남자 아이들이 그 주도자와 함께 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괴로웠다. 2/3 가량의 아이들은 모두 방관자였으며 그 때부터 나는 단 한 번도 학교에서 웃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받은 모든 스트레스를 집에 와서 풀었다. 누가 말만 걸어도 아, 왜! 가 나왔다. 모부는 그런 날 보며 무슨 애가 저렇게 버릇이 없을까, 혀를 찼다. 매일 밤 학교에 가기가 두려워 울면서 잠 들었다. 그건 결국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다행히 자해나 자살 시도는 하지 않았다. 어쨌든
당시의 나는 못생겼다, 음침하다, 더럽다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 그렇게 1년을 어찌어찌 버티다가 겨울방학이 되었다. 별 생각 없이 머리를 길렀다. 대충 어깨선 조금 위에까지 길렀다. 겨울 방학이 끝나고 다시 학교에 갔을 때 한 여자애가 나한테 말했다.
"그게 훨씬 낫다!" 그래서
그 애를 잊을 수 없다. 16살을 마지막으로 그 애를 볼 수는 없었지만 잘 살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 후로 쭉 머리를 기르고 있다. 중학생 땐 두발규정이 있었기에 늘 일정 길이가 되면 미용실에 가서 머리카락을 잘랐는데, 고등학생이 된 후로는 자유롭게 길렀다. 그렇게 해서 기른 내 머리는 지금 배꼽까지 온다. 사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날 너무 더웠어서 10센티 정도를 자른 적은 있다. 그 이후로는 가끔 잔머리 정리하러 미용실에 간다.
그리고 내 성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데, 나는 그 '음침했던' 내가 싫어서 13살을 기점으로 서서히 변하려고 노력했었다. 시행 착오도 몇 번 겪었고, 바뀌려는 과정 속에서 나를 무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래서
지금의 나가 있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긴 머리와 메이크업은 코르셋이다.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불필요한 것이다. 하지만나는 립스틱 페미니스트이며
내 긴 머리카락, 아름다운 내 얼굴로 내가 누구인지 상기한다. 그러나나는 여성들에게 말한다. 코르셋을 벗는 것도 중요하지만 코르셋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생각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이것도 코르셋이야?" 는 하면 안되는 말이라고. 스스로 생각해야 할 일을 남에게 미룸으로써 벗을 수 있는 코르셋은 안 벗느니만 못한 거라고.
아무리 래디컬한 페미니스트이더라도 다른 여성에게 코르셋을 벗을 것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삭발을 하고 메이크업을 하지 않고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 페미니스트가 말했다.
화장을 하고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 자매님 마음대로 하라.
코르셋을 채운 것은 자매님 자신이 아니라 사회와 남성들이다. 나는 그저 전선에서 싸우는 래디컬로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확고한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 뿐이다.
그러나 생각하라. 코르셋은 무엇인지, 그것은 누구로부터 왔는지, 어디에서 왔는지.여성들이 코르셋을 자각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계란으로 바위치고 있는 것이 아니게 된다. 그 계란들이 쌓이고 쌓여 후대의 여성들에게 발판을 만들어 주고 있다. 그래서
이번 생의 내 목표는 그 발판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내 머리카락은 열등감으로 빚어진 것이다.
어릴 적 나는 '여성스러워' 지고 싶었다.
여성스러워지고 싶어 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나는 사랑한다.
얼굴에 붙힌 거 쌈무 아님. ㅎ
음,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 지 감이 안오는뎅 어쨌든
저는 예쁜 제가 좋아여. 앞으로도 계속 좋아할 거랍니당.
그냥 과거 이야기 좀 해봤어요 공부하다가 집중 안 돼서 :)
그나저나 다음주 월요일 시험 실화? 전공 4과목 실화? ㅂㄷㅂ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