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니콜스의 1인전쟁" 이라는 주제로 포스팅을 시작합니다.
6.25전쟁 기간 중 미 제5공군을 지휘했던 얼 E. 파트리지 장군은 다음과 같이 도널드 니콜스(Donald Nichols)를 기억합니다.
나의 군 생활 동안 교류했던 모든 사람 중에 가장 놀랍고 유별난 남자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그 인물로 도널드 니콜스를 택하는 데 단 1초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자주 그를 '1인 전쟁(A ONE-MAN WAR)'이라고 칭하곤 했다.
니콜스 모습 맨 오른쪽 출처 : 아폴로의 전사들 76쪽
6.25 직전 한반도의 긴박한 정세를 움직인 도널드 니콜스는 전쟁이 발발하기 수 개월전 "1950년 6월 25일 한반도 전쟁"이라고 정확히 보고한 인물이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존재조차 아는 이가 드뭄니다.
니콜스는 1946년부터 수집한 각종첩보와 정보를 토대로 북한 공산정권은 반드시 전쟁을 하려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와 같은 결론 하에서 그들이 전쟁을 하려는 시기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니콜스는 팀을 이끌고 직접 북한지역으로 들어가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다. 이런 여러가지 정보를 기초로 북한의 공격시기를 1950년 6월로 예측했다. 니콜스팀이 이 시기를 예측한 것은 1949년 초겨울쯤(10월에서 11월)이었다. 하지만 니콜스의 보고서는 미극동군사령부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심지어 전쟁이 나기 72시간전에 72시간 후에 기습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마지막 전문도 묵살되었다.
1946년 미 방첩대 훈련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주재 극동공군사령부의 607CIC 파견대 산하 K파견대 특별요원으로 한국에 파견되었습니다. 그의 임무는 육군, 항공대 요원과 시설에 대한 전복행위 예방과 비밀 취급 허가가 필요한 한국인 및 미국인의 배후를 조사하는 일이었습니다.
1950년에 니콜스는 한반도 전역에 요원들을 파견해 수많은 정보들을 수집했습니다. 당시 그는 한국의 대통령과 미 5공군 사령관 파트리지 장군을 24시간 중 어느 때라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전쟁이 나기 한달 전인 1950년 5월에는 소련제 전투기가 귀순하도록 공작을 해, 확보한 전투기는 미 본토로 보내져 분해후 각종 정보자료로 활용됩니다.
전쟁이 발발하며 준위로 진급한 니콜스는 그만의 전쟁을 시작합니다. 그가 한국전쟁에서 보여준 용감한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적 전차의 취약성을 파악하기 위해 전차를 직접 노획한 일, 공산 게릴라의 비행장 습격을 직접 차단한 일, 한국요원들을 적 후방지역에 직접 낙하공수시켜 미5공군의 표적을 제공케한 사례, 적 후방지역에 침투해 철교를 폭파 아군의 작전에 크게 기여한 일, 한반도 해안가의 도서에서 적 특수부대의 활동을 거부한 사례, 등등 이루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중령으로 진급한 니콜스는 6006항공정보지원대대장으로 임무를 수행합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전쟁을 통해 얻은 부상으로 인해 1962년 미 공군에서 전역했습니다. 1992년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한국전쟁을 통해 보여준 성공적인 전공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는 특수작전분야의 인간정보 즉 휴민트라는 새로운 임무분야를 세계에서 처음 시도하고, 이를 체계화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그에 관한 내용은 미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한국에서도 일부 사람들만이 제한적으로 알고 있을 뿐입니다. 니콜스 1인이 전쟁이 한국전쟁의 주요 국면에서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