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듯 일상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일상은 여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행이란 일상 속에 무뎌진 시간과 공간, 그리고 나를 새롭게 발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35p)
캐나다에서 온 여행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남자는 내게 어디서 왔으며 왜 여행을 하는지 궁금해했다. … 왜 자전거 여행을 하냐는 말에 무언가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게 무엇이냐는 말에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44p)
여행을 떠나고 싶은 때는 언제일까? 저자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떠났다고 말한다. 그 결심은 52일간 이어진 뉴질랜드의 자전거 여행 이야기로 이어진다.
스팀잇에서 님이 독립출판을 했다는 글을 보고, 바로 텀블벅 후원을 통해 책을 받아보게 되었다. 평소 이 분의 흑백사진에 매력을 느꼈던 터라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내 생애 첫 독립출판 도서를 구입한 순간이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사진에 대한 기대만 가지고 있었다. 책을 펼쳐보고, 꾸밈없고 솔직한 흑백 사진의 향연을 즐긴 후 에세이로 눈길을 옮겼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설레는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눈이 기쁘고 페이지를 넘기는 손가락 끝이 달콤하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잘 튀겨진 감자튀김을 먹는 기분이다. 담담한 문체 속에 물이 톡톡 오른 감성이 배어나온다.
눈을 감았다. 산 정상에서 바람이 불어와 머리칼을 들었다 놓았다. 뭉쳤던 근육이 풀리며 온몸이 이완됐다. 나는 기억했다. 부드럽고 맑은 햇살을. 그 햇살이 스며들던 순간들을. 함께였던 사람들을. 그것을 잊고 있었다. 아름다운 것들은 익숙함의 이름으로 무뎌지곤 했다. (52p)
저자는 알 수 없는 결핍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한 여행을 떠났다. 오롯이 혼자가 되는 나홀로 자전거 여행이다. 하지만 여행은 늘 그렇듯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넘어지고, 다치고, 언덕과 맞서고, 바람에 흔들리고, 비바람에 시달리는 하루 하루의 이야기는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는 것 같다.
그리고 저자는 시간이 흐르며 나를 벗어나 타인과의 관계 속으로 성큼 들어간다. 연고라고는 전혀 없는 낯선 땅에서도 사람은 인연을 만들어가는 존재인 것이다.
호스텔은 시끄럽고, 복잡한 곳이다. 그런데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호스텔 같은 공간이 그립다. 상대적으로 아늑한 침대와 주방, 샤워장이 그리운 것도 맞지만, 길 위에 혼자 남았을 때 무엇보다도 그리운 것은 사람이었다. (64p)
셋이서 함께 달리니 작은 공동체에 속한 느낌이었다. 우연한 동행이 생각의 층위를 바꿨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과 길에 대해서만 묻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잃어버렸던 건 내 목소리가 아니라 타인과 함께하며,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상태는 아니었을까. 오늘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들을 앞질러 달리지 않기로 했다. (75p)
여행의 막바지에 다다른 저자는 지쳐간다. 하지만 그 여행의 끄트머리에서, 그는 말한다. 다시 떠날 힘이 생겼다고.
이튿날. 호스텔을 떠났다. 신기하게도 조금 쉬면 다시 떠날 힘이 생겼다. (109p)
그리고 그는 나름의 답을 찾는다. 자신의 한계였다는 겸손의 말을 덧붙이지만, 아마도 나름의 후련함을 여정의 마지막에 느낄 수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나와 내가 아닌 것들에 진실해지고 싶었다. 그것이 나의 한계였다. (117p)
한 문장에 담은 그의 답에 미소를 짓게 된다. 그의 한계는 자신이 내린 답에 대한 것이 아닌, 그가 느낀 것을 문장으로 담아내는 것에 대한 한계가 아니었을까. 그의 여정 속을 활자로 함께 걷다보면, 말 속에 담긴 것 이상의 무엇인가가 가슴에 쌓여간다. 나는 이 감정을 뭐라고 언어로 규정할 것인가? 나 또한 시원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결국, 저자가 쓴 문장을 빌린다. 순간에 진실할 것. 올지 모를 미래의 목표에 얽매이지 말 것. 삶은 결국 현재에 붙잡혀있다. 뛰어넘을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다.
책을 읽는 내내, '여행'이라는 단어를 '삶'이라는 단어로 치환하며 읽었다. 에세이인데, 한 편의 소설을 읽은 기분이다. 나와 같은 평범한 한 사람의 이야기와,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순간의 기록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책.
생각이 복잡해 갈피를 잡기 힘들 때, 어두운 방에서 스탠드 불빛 하나에 의지해 조용히 책장을 넘기며 다시 보고 싶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