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O O K]_담 금 질 의 시 간
江國香織에쿠니 가오리의 落 下 す る 夕 方낙하하는 저녁
냉정과 열정사이Rosso 아오이Aoi의 이야기를 집필한 것으로 자명한 에쿠니의 소설 낙하하는 저녁은 당시 나에겐 꽤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움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냉정과 열정사이보다,
반짝반짝 빛나는1991作/2002,소담
낙하하는 저녁1996作/2003,소담
이 두 소설을 훨씬 좋아하고, 1900-2000년대 초반 사이에 쓰여진 그녀의 책을 사랑한다. 그 내역은 홀리가든 1994 /차가운 밤에 1996 / 몇 번의 주말 1997/웨하스 의자2001/울 준비는 되어있다2003정도.
모두 2000년에서 2010년 사이에 국내에 출간 되었고 내 방 수납장에 고스란히 머물고 있다.
여담이지만, 주변 지인들로부터 리카와 쇼코가소설의 주인공들나랑 꽤 많이 닮아있다는 말을 시간이 흐른 서른즈음을 넘기고서 꽤 많이, 오금이 저릴 정도로 들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리카의 연애담, 낙하하는 저녁은 한 권짜리 이야기다.
초판이 주홍색, 요근래 재출간은 보랏빛이 감도는 네이비 블루 표지를 가지고 있다. 쇼코의 반짝반짝 빛나는,은 아무래도 설정이 더 파격적일 수도 있기에, 포스팅을 할 것 같지는 않다.
덧붙여 책에 관한 스포일러도 없으니 안심하고 읽으셔도 무방할 것 같다.
왜 깨알문학의 제이미가 떠오르지;
알지? 난 줄거리 아니고 요점만 집어준다,하는 제이미
스물 둘, 03년 주홍색의 저녁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녀 얘기
설정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남자 하나 낑긴 여자 둘의 삼각구도 형태로 새로울 게 하나 없다. 상황 역시, 너무나 친숙하고 매우 간단 명료하다.
사랑을 잃은 리카
사랑을 버린 다케오
그리고 하나코
이야기는 8년 정도 연애를 바탕으로 동거하던 리카의 입장에서 애인 다케오의 뜬금없는 이별통보로부터 시작된다. 너무 진부해 이쯤 되면,
이런 장면이 쉬 연상되리라 생각되는데, 은하 언니, 복귀해줘요 으앙
애석히도 저런 신박나는 스펙터클함은 물론이고, 육두문자 드뢉 더 비트 같은 다이나믹함도, 워터 귓방맹이, 머리채 잡초정돈 같은 블록버스터도 발견할 수가 없다. 단 한 장면도.
그것도 모자라 여자 둘이 동거를 하고, 남자가 놀러오는 희한하고도 헤궤한 상황이 펼쳐진다. 소설 시작 불과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이 정신나간 세 사람의 행태와 행보가 어처구니 없게도 흥미로웠다.
소위 막장스러움에 번역자의 실수 인정까지남자의 이름은 다케오가 아니라 겐고였다고 한다 고스란히 들어있는 이 책은
사람이 사람에게 얼마나 관대해 질 수 있는지,
사랑에 미치면 어느 정도까지 가진 것들을 놓을 수 있는지
그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럴 수도 있는 거구나,하고.
한편으론, 어디까지나 소설이고 허구니까 가능한 거,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서른 일곱, 18년의 짙은 파랑의 저녁
이제서야 비로소 알 수 있는 내 얘기
십여년이 흐른 현재, 저녁은 좀 달라져 있었다.
요근래 경아님의 포스팅 댓글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되뇌어보건데, 오마주 프로젝트 관련 이야기로 기억한다.
글이란 게 참, 뭐랄까. 음식하고는 조금 달라서, 갓 나온 직후의 맛과 얼마만큼 지난 후, 그리고 한참이 되고 나서의 맛이 저마다 다르게 다가온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라고.
에쿠니의 저녁 역시 예외는 아니었는지…
스물 언저리의 열기가 삭아가는 저녁이 주홍의 색감이었다면, 머지앉아 마흔을 바라보는 시점의 저녁은 다소 서늘하고 차분하게 그리고 담담한 형태로 안착하는 게 아닐까.
도무지 알 수가 없던 기묘한 이 세 사람, 특히 리카의 이야기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내 얘기가 되어 굳은 살로 자리매김하듯 그렇게.
이건 한 사람이 그 어떤 것보다 무거운 슬픔을 흐르는 도중의 이야기이고,
한 사람이 마주한 상대에 대한 이해, 관용을 넘어서,
어쩔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한 아픔을 직면했을 때,
그에 관한 질투, 분노, 경멸, 그러면서도 애착 같은 감정들을 최소한의 배려와 보살핌으로 소화해낸 최종 보답이자 선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럴 수도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럴 수 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표지를 넘겨 책에서 가장 처음 만나보게 되는 문장은 재출간에도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이상한 말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나, 다케오하고 두 번 다시 안 만날 수도 있고,
다케오하고 새롭게 연애할 수도 있고
지금 당장 다케오하고 같이 잘 수도 있어.
이 말의 본질을 이제서야 비로소 알았다. 더불어 내 마음의 형태도 정확히 알았다.
스물 둘의 나는 이 문장이 뭘까,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놓친 게 있는 건지 혹은 독서 방법이 잘못되어있는지도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말한다.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직접 체감하지 않는 이상, 저 문장은 아무리 해도 알 수가 없는 거였다고.
이 글을 적고 있는 나에게도,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기여한 당신에게도,
이 문장을 읽고 내려온 그대에게도,
오늘 저녁만큼은 차분한 평온이 깃들길 염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