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입구에 섰다. 넓디넓은 간판 자리 한가운데 무심히 그려진 달팽이 그림. 책방의 간판이었다.
달팽이 책방은 서점이지만 도서관 같고, 카페이지만 친구 집 같기도 하다. 통유리창 너머 책방 안에는 평일 낮 시간임에도 책을 읽는 이들이 몇 보인다. 체크무늬 앞치마를 두른 책방 주인은 이들을 위해 홍차를 준비한다.
어린 시절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는 길목엔 레코드점과 서점이 나란히 자리 잡은 골목이 있었다. 레코드점에서는 항상 음악이 흘러나왔는데,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어가곤 했다. 작은 공간 안에 빼곡하게 꽂힌 테이프와 CD를 이리저리 빼 보기도 하고, 흘러나오는 노래를 한참 동안 듣기도 했다. 그리곤 바로 옆 서점에 들러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는 잡지를 구경했고, 이책 저책 기웃거리며 서점 전체를 한 바퀴 돌아 보았다(주로 살 수 있는 건 문제집이었고 가끔 용돈을 모으면 책을 한 권씩 샀다). 나중에 크면 레코드점 주인을 할까, 서점 주인을 할까 고민 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곳들은 동네에서 사라졌다. 내가 만약 꿈을 이루었다면 굶어 죽었을지 모를 만큼, 동네 서점과 레코드점은 어느 순간 종적을 감춰버렸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룬 이도 있다. 달팽이 책방의 주인, 김미현 씨다. 그녀는 책방 문을 열던 2014년의 어느 날, 책방 한편에 이런 글을 남겨놓았다. “서른이 넘어 유년시절의 추억이 담긴 고향 포항으로 돌아왔습니다. 학창시절 숨구멍이 되어주었던 따뜻했던 어느 한 공간을 기억 하며, 내가 태어나고 자란 바로 이 자리에서 책이 있고, 차가 있고, 때때로 재미있는 일들이 펼쳐지는,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그런 공간을 꿈꿉니다.”
달팽이 책방의 일상
책방에는 엄선된(주인이 좋아하는) 인문학 단행본과 개성 있는 독립 출판물, 문구류가 빼곡하다. 안쪽 작은방에는 갤러리가 자리했다. 예술이 일상 속으로 다정하게 스며들기를 바란다는 책방 주인은 이 공간을 포항과 주변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에게 무료로 대여하고 있다. 30여 가지의 홍차와 허브티도 맛볼 수 있으니 적당한 크기의 공간 안에 서가와 갤러리, 카페가 오밀조밀 들어 앉아 있는 것이다.
책방에서는 소설 낭독, 글쓰기, 근현대사 모임 등 함께 책을 읽고 느낌을 나누는 소소한 모임도 열린다. 처음에는 책이 재미있어지는 모임을 해보자는 의도로 주인이 주도했지만 이제는 자주 오는 손님들이 스스로 만들기도 한다. 책을 매개로 그곳에 모인 이들은 이곳에서 구입한 책과 책모임에 대한 리뷰, 대담 등이 실린 신문 형태의 독립출판물 ‘달팽이 트리뷴’을 발행 중이기도 하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이 소소하지만 특별한 창작물은 달팽이 책방과 몇몇 독립출판 서점에서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지역의 뮤지션들이 공연을 열기 위해 달팽이 책방을 찾는 날에는 어쿠스틱 선율이 책방을 가득 메우기도 한다.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그곳을 채우는 누군가가 되고 싶어질 만큼 매력적인 공간. 이곳을 둘러보다 이런 글귀를 발견했다. ‘당신의 일상에 여백과 느린 일상을 선물합니다.’ 더없이 따뜻한 한 마디다. 작은 책방에서 받은 선물치곤, 퍽 과분하다.
효자동 산책
달팽이 책방이 자리 잡은 포항의 효자동은 서울과 전주의 효자동에 비해 조금은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은근한 매력이 있는 동네다. 물론 그 매력의 반할은 단연, 달팽이 책방이었음을 고백한다. 홍차 한 잔 입에 머금고 느긋하게 책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 지루할 때쯤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특별한 정취가 있는 유명한 동네는 아니지만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내기엔 그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달팽이 책방에 써져 있던 글귀처럼.
책방 근처 골목 사이로 기차선로가 눈에 띄었다. 효자역을 잇는 선로다. 2015년 KTX 포항역이 생기면서 이제는 폐역이 되었지만 화물 열차는 여전히 가끔이나마 그곳을 달린다. 어느새 해가 저물어 끝을 알 수 없는 선로 너머로 붉고 푸르스레한 빛을 물들였다. 느릿한 시간이 흐르는 달팽이 책방, 그리고 효자동과 참 어울리는 풍경이다.
주소 포항시 남구 효자동 308-12
전화번호 070-7532-3316
영업시간 12시~22시, 월요일 휴무, 변동사항 있을 시 SNS 통해 공지
홈페이지 blog.naver.com/snailbooks
인터뷰 조혜원|글·사진 김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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