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나는 내가 가장 불행한 줄 알았다. 우리 집은 가난했고, 나는 그 사실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단 칸 방이었는데, 우리 집과 비교하면 방 세 개, 마당있는 대궐 같은 친구집은 너무나 좋아보였다. 아니, 대단해 보였다.
그 가난이란 것은 지속적으로 날 힘들게 했다. 방학이면 노가다에, 학기중엔 도서관. 말로 하고 글로 쓰면 간단해 보이지만, 막상 노가다로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날씨가 추워지는데... 이런날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폐자재 정리하고, 마대에 쓰레기 퍼서 옮기는 건 정말 죽을 맛이다.
어느 날은 전신주를 심고 전선을 까는 노가다로, 손에 종아리에 난 상처를 보며... 저녁 8시에 퇴근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갈 땐, 참 서러워 울기도 했었다. 다른 친구들은 방학이라 여행가는데... 거기에다 나는 임용시험 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였다.
노가다 하면서 임용공부해서 합격하면 되지 않나?
그래, 내가 그렇게 노가다 하며 임용공부해서 합격했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또 다시 가능할까? 라고 묻는다면.. 나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 흙수저 친구들이, 한국에선 미래가 없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출발선이 너무도 다른 것은 이미 옛날 이야기고, 이미 그 과정 속에서도 부의 세습은 족쇠가 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친인척 취업 비리는 여전하다.
연예인들마저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꼭 잡고 있다. 누군가 떠오르다 싶으면 "견제"한다. 이 사실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 보이지 않는 '견제'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곤 자녀나 친척들이 TV에 등장한다. 참... X 같은 세상인 것이다.
야... 아르바이트해서 해외 여행, 어학 연수도 다녀오고 해야지. 세상 너무 각박하게 살지마라.
누군 그걸 모르나. 내 알바비는 등록금과 더불어 생활비로 써야 한다. 이렇게 해외 여행 다녀오면, 무슨 대단한 사람이나 된거마냥 말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부모님들이 등록금에... 취직하면 자동차에... 결혼하면 아파트 전세값에... 다 지원을 해준 친구들이다.
어렵게 공부하고, 어렵게 생활하다보니 난 가끔 날카로웠다. 특히 있는 집 자식들이, 본인의 능력과 1도 상관 없는 자랑질을 할 땐 역겨웠다. 여기에서 역겹다는 것은 "욕"의 의미가 아니다. 그냥 내 스스로가 거부 반응이 들었다. 그리곤 가능하면 그런 친구와 대화하느 것을 피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쉽게 얘기한다.
에이.. 어렵지 않은 집이 어디있어?
나이도 꽉 찼는데 이제 결혼 해야지?
결혼도 했으니 이제 아이 낳아야지?
첫째는 아쉬우니 둘째는 언제 만들거야?
야~ 거기 가봤는데 진짜 좋더라.. 너도 남들 다가는 해외여행 안가?
너무 각박하게 살지 좀 마.
내가 아는 친구는 아버님이 눈이 잘 보이지 않으신다. 우리 외삼촌은 말더듬에, 왼쪽 손이 공장에서 일하시다 절단되셨다. 내가 아는 지인은 아이가 없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쉽게 툭. 조언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 스스로 반성해 본다.
나는 꼰대처럼 말하고 있진 않았나.
더 조심하고, 말을 아껴야겠다.
나부터 말하기전에, 한 번 더 신중히 생각해봐야겠다.
누구에게나 상처 하나 쯤은 다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