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면 짧게 붕 뜨는 시간이 생긴다. 해가 진 이후의 시간이라면 냉장고의 맥주와 찬장의 과자가 좋은 친구가 되겠지만, 평일 한 낮이라면 혹시 다른 게 있을까 머리를 굴리게된다. 두어시간 정도 되는, 주변 지인과의 접선이 불가능한 어정쩡한 시간이라면 더더욱 머리를 굴리게 된다. 비가 구질구질하게 내리던 날 어쩌다 생긴 대낮의 여유, 만화방이 떠올랐다.
예전에 자주 갔던 구질구질한 '만화방'은 망해버렸다. 노숙자 냄새와 유사한 퀘퀘한 냄새를 풍기는 아늑한 그곳에 갈 수 없음을 아쉬워하며 '만화카페'로 향한다. 1시간에 2,500원 정도 하는 것 같다. 카페라는 이름에 맞게 컵라면 외에도 많은 음료를 파는 것 같기도 하고 시간과 음료를 묶은 세트메뉴도 있는 것 같다. 예전, 고향에 내려가는 첫 차 시간을 기다리며 지하로 들어가 퀘퀘하면서 시큼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컵라면을 먹던 동대구역 부근 만화방의 구질구질한 아늑함은 없었다. 깔끔하고 정돈된 분위기에 어색하게 쭈뼛거리며 들어가 주인과 인사를 나눈다.
'신발은 신발장의 실내화로 갈아신으시고 신발장 열쇠를 가져오시면 됩니다'라고 그는 익숙하게 읊는다. 자정쯤 5천원을 내고 해뜰무렵까지 만화책을 보던 만화방과 사뭇 다르다. 밤 11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 비유하자면 가요톱텐과 쇼음악중심의 차이만큼 다르다고 하면 될까.
제목만 봐도 반가운 책들이 있다. 중간의 어떤 부분부터 시작해도 아! 하면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그러면서 '이게 아직도 완결이 안 됐나' 하면서 혀를 차게 만드는 책도 있다.
처음엔 다락방에 들어가서 커튼을 치고 잠시 누워서 책을 들었다가 금방 나왔다. 이렇게 보면 집에서 보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조명이 좀 어둡기도 했고. 집엔 없는 저 빨간 의자가 왠지 편안해보이기도 했고.
이런저런 책들을 집어 왔지만 갑작스레 생긴 일 탓에 다 볼 수는 없었다. 집어온 책 중 두 개만 끝까지 볼 수 있었다. 유튜브의 영화소개 채널에서 보았던 물고기에게 다리가 생기면 어쩌고하는 영상의 원작인 것 같아 고른 이토준지의 책. 그리고 내 장래희망인 '백수'에 대해 다룬 책.
백수 책에 들어있던 괴테의 말
이토준지 만화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들여 뚫어지게 쳐다보았던 페이지. 누군지는 몰라도 세상에 이렇게 나쁜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