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손자병법 제13편 용간(用間)이 마무리됩니다. 용간(用間)의 마무리는 손자병법 13편 모두가 끝나게 됨을 의미합니다. 약 3개월에 걸쳐 75개의 포스팅으로 손자병법을 소개했습니다.
용간(用間)의 마지막 구절에서 손자는 용간의 역사적 사례를 들어 용병에서의 용간(用間)의 중요성을 설명했습니다. 그가 예를 든 것은 은나라의 이지와 주나라의 여아입니다.
은나라는 중국 고대에 하나라를 멸망시키고 세운 나라이다. 대략 기원전 16세기부터 12세기까지 존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지는 은나라의 혁명이 일어날 때 은의 탕왕을 도와 하나라의 폭군 걸왕을 타도하는 데 도움을 준 인물이다. 한편 주나라는 은나라의 폭군 주왕을 쓰러뜨리고 세운 중국의 고대 왕조다. 기원전 12세기부터 기원전 221년까지 이어졌다. 여아는 강태공으로 알려진 사람으로 성은 강씨고 관명이 태공이다. 주 무왕을 도와 군사로서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역성혁명을 실현한 인물이다. 은나라의 이지나 주나라의 여야 모두 새로 창업되는 국가의 간첩으로 활동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이 명석한 군주와 현명한 장수는 최고의 지혜를 발휘해 간첩을 운용한다는 것입니다. 지혜롭고 선제적인 간첩 운용을 통해 새로운 왕조를 열어나갈 수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손자는 용간(用間)이 용병의 요체이면서 기본이 되기 때문에 이것에 의지해 정부와 군을 움직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昔殷之興也, 伊摯在夏. 周之興也, 呂牙在殷. 故惟明君賢將, 能以上智爲間者, 必成大功. 此兵之要, 三軍之所恃而動也.
이전에 은나라가 흥한 것은 이지가 하나라에서 은나라를 위해 활동한 덕분이며, 주나라가 흥할 때는 여아가 은나라에서 주무왕을 위해 활동한 덕분이었다. 그러므로 오로지 명석한 군주와 현명한 장수만이 뛰어난 지혜로 간첩을 써서 대업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용병의 요체이니 전군이 이에 의지해 움직이는 것이다.
용간(用間)편에서 손자는 다양한 정보원을 상호 교차 검증함으로써 그 정보의 신뢰성을 확보해야 함을 천명했습니다. 그는 용간이라는 것이 단순히 적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에 국한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했습니다. 용간은 적으로 하여금 아군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도록 하는 기만의 중요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손자가 강조한 것도 이 점입니다.
손자병법은 춘추시대 말 오나라의 군사(軍師)이자 장군이었던 손무가 쓴 것입니다. 이 책은 2500년 동안 동양 최고의 군사고전으로 많은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현재에도 세계 각국의 군사사 학자들과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세계적인 군사고전임에 분명합니다.
손자병법을 한 구절 또는 한 단락으로 설명하면 ‘부전이굴인지병(不戰而屈人之兵)’일 것입니다. 손자는 병법서에서 싸움의 기술을 설명함에 앞서 그 싸움을 하지 않고서도 이길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의 용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꼽은 용병술 중 으뜸이 벌모(伐謀)이고, 그 다음이 벌교(伐交)이며, 마지막 수단이 벌병(伐兵)이었습니다.
손자의 용병술의 목적은 국가이익의 보호였습니다. 아무리 중요한 전쟁과 전투가 있을지라도 국가이익이 결여된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손자는 싸움이 끝난 뒤의 상태는 전승(全勝)의 모습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온전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 때만 싸움에 나서라는 주문도 잊지 않았습니다.
손자는 전쟁을 단기 속결전으로 치를 것을 강조했습니다. 바로 속승(速勝)의 원리입니다. 이런 속승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평시의 전력구조와 전투력 배양 등이 속승에 맞추어져야 합니다. 자세한 전술전기도 현대에 적용할 만한 것입니다. 그가 강조한 공기무비(攻其無備), 출기불의(出其不意), 우직지계(迂直之計), 허실(虛實), 등의 개념은 현재 군에 사용해도 크게 어긋남이 없습니다. 손자의 위대함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내일부터는 오자병법을 소개합니다.
참고문헌
손자지음, 손자병법, 김광수(역), 서울: 책세상, 2000
손무지음, 노양규 옮김, 365일 손자병법, 서울: 신한출판사, 2007
손자, 손자병법, 이현서(역), 서울: 청아출판사,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