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결혼 생각 없어?"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을 때,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물어온 질문. 결혼 안 할 거야?
결혼.
철없던 어린 시절에는 결혼에 대한 낭만이 있었다. 사랑하는 짝을 만나 평생을 달콤한 치즈케이크같이 사는 꿈. 하지만 나이를 먹고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 나는 오히려 낭만적인 독신주의자의 삶을 그리고 있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낭만적인 독신주의자의 삶을
그리게 되었다.
연애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연애를 거듭할수록 나는 독신주의자로의 삶이 나의 길이라고 마음을 굳혀갔다.
화목했던 부모님의 관계, 웃음이 가득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 했던 부모님의 상처를 깨달아갔던 서른 즈음의 나는, 아무래도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다. 내 인생에, 내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데, 다른 누군가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나는, 나 하나도 어떻게 건사해야 할지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생활은 농담처럼 지나치기 어려운 문제였다. 문과 출신의 대학원 석사생. 이런 내가 과연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삶을 꾸려갈 수 있을까? 하고 싶은 일은 어떻게든 해야만 성미가 풀리는 이 이기적인 인간이, 누군가의 삶을 책임질 수 있을까? 내가 아니면 굶어 죽거나 아파 죽을지도 모르는 미약한 새 생명이 태어난다면, 나는 그 중압감을 버틸 수 있을까?
"일반 기업은 싫어. 글 쓰면서 살고 싶어! 뭔가 길이 있지 않을까?"
이 따위 말을 하며 대학원엘 들어간 철딱서니가 결혼이라니, 다 같이 굶어 죽기 딱 좋겠구나 싶다. 어차피 나 혼자라면 아르바이트를 하든, 과외를 하든, 그도 아니면 막노동을 해서라도 입에 풀칠은 할 테니, 한 번 사는 인생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살아보자. 그 길을 찾기 위해 결혼이라는 시한폭탄을 안지 말자. 책임도 지지 못할 일을 벌여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는 말자.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결혼을 했고, 벌써 결혼 3년 차가 되었다. 아마 10년 전의 내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어이없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가지가지한다, 정말. 그래서, 책임은 질 수 있고? 애꿎은 사람에게 불행을 안겨주는 것은 아니고?"
2012년, 프라하의 거리를 걷다 우연히 한 여성 커플의 뒷모습을 마주했다. 이런 장면을 어디에선가 마주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어디였더라? 아, 그래. 2009년 캐나다 밴쿠버 다운타운의 신호등 앞에서였다. 내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두 남자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더니 짧게 입을 맞추었다. 1미터 앞에서 마주했던 신선한 문화충격.
퀴어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랑은 '옳은 한 가지 방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사랑을 하는 방식, 사랑하는 대상,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 사랑을 유지하는 방식 모두 커플마다 제각각이다. "내일 아침에도 해는 동쪽에서 뜰 거야."처럼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결혼에 대해서는 어떨까? 사랑은 이렇게 제각각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결혼은 어떠한가?
내가 막연하게 기피해왔던 결혼은 이런 것이다. 제 때 취업을 해서 돈을 모아 너무 늦지 않게 결혼을 해야 한다. 그리고 너무 나이를 먹기 전에 아이를 낳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갈 때 즈음에는 적당히 대출을 끼고 학군이 좋은 지역에 아파트를 얻는다. 꾸준히 일하며 빚을 갚아나가다보면 아이가 대학엘 가고,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할 때 즈음에는 자녀의 결혼식에 보탤 돈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게 아이의 결혼식이 끝나면, 그때부터는 노후를 준비한다. 그리고 늙어가며 삶을 마감할 준비를 한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숨이 막힌다.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사회적으로 형성된 결혼의 정체성에 대한 나의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혼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보여주듯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인생을 살아간다. 심지어는 이 트랙에서 벗어난 사람에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과 선의를 가장한 참견이 날아온다. 이럴 때면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치고 싶다. "내 삶이야. 그냥 내버려 둬!" 이렇게 사는 삶 속에서, 나는 '나'를 찾을 수 없었다.
사랑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고
결혼은 사랑을 전제로 한다
결혼생활은 말 그대로 '삶'을 담고 있다. 보통 가정을 꾸리고 겪게 되는 생로병사에서 일어나게 될 굵직한 이벤트들의 모음. 하지만 이 안에는 가장 중요한 본질이 빠져있었다. 결혼은 사랑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 그리고 사랑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것. 사랑이 다양할 수 있다면, 결혼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결혼생활도 얼마든지 다채로운 형태가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하고 말이다.
프라하의 이른 아침, 카펠교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한 화가를 만났다. 그는 막간을 이용하여 도시락을 꺼내 먹다가, 어느 여행객의 요청으로 가족사진을 그림으로 옮겨 담기 시작했다.
"러시아에서 왔어요. 원래는 프리랜서 디자이너예요. 그런데 여름이면 이 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게 훨씬 많이 남아요. 러시아에 비하면 여기 경기는 천국이거든요."
당연히 체코 사람일 거라 생각하고 물었던 내게, 그는 자신의 삶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 사진 속의 가족, 참 행복해 보이지 않나요? 그림을 그리다 보면 표정 속에 감춰진 미묘한 속마음도 읽힐 때가 있어요. 이 가족은 정말 구김살 없이 웃어요. 행복한 거죠."
그는 "나도 러시아에 와이프와 아이가 있어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이 곳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조금 외로워요. 하지만 여기서 번 돈이 생활에 많이 도움이 돼요. 조금만 더 있으면 여름도 끝이니, 나도 다음 달에는 다시 가족과 함께 식사할 수 있어요."
'그림'은 특별히 돈이 되지 않아 본국에서는 디자인을 한다는 화가. 가족과 잠시 떨어지더라도 이 곳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그림'을 그리며 돈을 벌 수 있다는 그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작품에 몰두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에요. 그 일을 하면서 가족과 웃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죠. 나는 지금 나의 상황에 대해 신에게 감사해요. 늘 잠들기 전에 기도를 올려요. 이 행복이 계속되게 해 달라고."
그는 누가 봐도 카펠교 위의 모든 화가들 중 가장 허름해 보였다. 하지만 분명 그는 행복하다. 그 누구도 그의 행복을 방해할 수 없을 것이다. 5분 남짓한 짧은 대화의 끝에, 나는 그의 얼굴 주름에 깊이 새겨진 삶의 환희를 느꼈다.
햇살이 아름답게 부서지는 성당 앞에서, 한 커플이 결혼사진을 찍고 있었다. 누구보다 환한 미소를 짓는 신부와, 그 신부에게 입 맞추는 신랑. 이 두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에 이 두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누구와도 비교할 것이 없고, 그 무엇도 그들의 삶에 끼어들 틈이 없는, 온전히 두 사람만의 세상이 그곳에 있었다.
나는 '우리' 방식대로 삶을 살고 있다.
결혼을 하던 때, 우리는 조금 특이한 커플이었다. 서른셋의 신랑과 스물다섯의 신부. 양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우리'가 모은 돈으로 조촐하게 준비한 결혼식과 신접살림. 은행 대출을 잔뜩 낀 열 평 남짓한 지방의 오피스텔에서 시작하는 청담동 며느리와 대기업 임원 사위를, 아마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랬다. 성실하게 돈을 모았고, 현실적으로 감당 가능한 결혼식을 올렸다. 허세는커녕, 누가 보면 구질구질하다 비웃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그랬다. 결혼을 앞두고 "나, 정말로 어디로 튈지 몰라요. 어느 날 갑자기 "나 회사 그만둘래요."라고 말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괜찮아요? 정말 괜찮겠어? 평생 원룸에서 못 벗어날지도 몰라요." 하고 묻는 내게 아내가 말했다.
"나, 행복해요. 하고 싶은 걸 해요. 당신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어요. 그리고 내가 행복해야 당신이 행복할 수 있을 거예요."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겁먹지 말고 그냥 하면 돼요,라고 말하며 아내는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여전히 부족한 일상속에 행복하다.
우리의 살림은 여전히 부족하다. 그리고 일상 속에, 하나 둘 어려움을 이겨내며 웃고 있다. 식탁도 없이 바닥에 앉아 아내와 차를 나누며 시작한 결혼생활은, 이제 식탁과 탁자까지 갖춘 제법 그럴싸한 수준이 되었다. 남들보다 많이 모자라게 시작했고, 남들만큼 되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많은 미소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결국 남들이 알아주는 대기업 인사팀을 던져버렸지만, 마음이 맞는 대표를 만나 작은 회사의 임원이 되었다. 그리고 소소하지만 '고료'를 받을 수 있는 글쟁이가 되었다.
나 혼자 계획했던 인생의 그림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렇지 않다. 혼자였다면 결코 거치지 않았을 길을 걸었다. 대기업에 입사했던 일. 회사를 그만둘 때의 오랜 고민. 재취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방황.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우리'가 함께 내린 결론을 따라 길을 걸었고, 그 길은 우리에게 충만한 행복을 주었다. 후회가 있냐고 묻는다면, 단 하나, 이 사람을 더 일찍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생활은 잔인하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아름답다. 꿈을 꾸고 그 길을 걷는 과정이 우리의 행복이 된다. 부족한 것을 채워나가는 과정 속에 우리는 충만해진다.
독신주의자의 결혼 사유는 거창하지 않다
꿈꾸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
독신주의자의 결혼 사유는 거창하지 않다. 꿈꾸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 함께 무언가를 이뤄나가는 걸음걸음마다 우리가 새기는 추억. 우리만의 이야기를, 나는 호기심 가득 담긴 마음으로 기대한다. 바로 오늘 밤, 식탁 위에 놓일 찻잔과 함께 나눌 우리의 일상, 그리고 함께 이야기할 우리의 내일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