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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얼리버드가 되어보자.
남보다 일찍 시작해서 선점 효과를 누려보자.
마케팅을 책 겉표지만 보고 배운 나는 호기롭게 주장했어요.
날씨만 받쳐준다면 순조로울 거라고 믿었고 그렇게 믿는 나를 모두 믿어 주었지요.
뭐, 매니저가 얘기하는데 안 믿겨도 믿는 척해야지 별수 있었겠어요.
그래서 "팥빙수 개시"라고 써 붙인 게 3월 말쯤이었죠.
벚꽃이 올라오다 되돌아갈 만큼 쌀쌀한 날씨가 이어지는데 손님들이 팥빙수를 찾을 리가 없죠.
그나마 따뜻한 날엔 어김없이 미세먼지가 태양광을 차단해 주는 바람에 사람들 발길이 뚝 끊어졌고요.
한 달 공치고 나서 알게 되었어요.
밀가루를 입력하면 결코 밥이 출력되지 않는다는 것을요.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니 이제야 팔리기 시작하네요.
지나고 나면 답은 항상 단순했어요.
"너 같으면 패딩 입고 다니면서 팥빙수 먹겠니?"
적어도 저는 안 먹을 것 같아요
파주는 특히 추웠죠.
강남에는 팥빙수를 일 년 내내 파는 가게도 있다지만, 똑같은 임진강 남쪽이라고 똑같이 장사가 잘 되라는 법은 없겠죠.
작년 5월 1일이 가게 개점 날이라서, 4월 매출은 예측 불가능했다는 핑계가 가장 그럴 듯해요.
게다가 저는 7월에 입사했으니 아몰랑이에요.
이제라도 팔리기 시작하니 면은 서네요.
울 가게는 과일 빙수 같은 것은 없고 오로지 팥빙수 한 가지에요.
작년 여름, 다른 메뉴를 제치고 매출 1위를 달성한 녀석이죠.
다른 가게들 2~3백만 원 짜리 눈꽃 빙수 기계 들여놓을 때 우리는 과감하게 옛날식 팥빙수를 선택했어요.
중고 주방용품 업소에 들러 중고 빙수 기계를 둘러 보았죠.
제법 괜찮은 빙수기를 발견해서 얼른 구매했어요.
다른 건 몰라도 일단 성능이 좋아야죠.
15만 원이었어요.
이 기계로 우리는 다른 경쟁 업소를 이겼어요.
물론 팥빙수에 한해서요.
다른 가게들은 우리가 얼마짜리 기계를 쓰고 있는지 모르고 있죠.
알면 까무러칠 거고, 모두 같은 거로 하겠다고 난리 칠지도 몰라요.
올해는 사실 다른 기계로 바꿀까 했어요.
그러나 구관이 명관이라고(자금 여력이 없기 때문에) 한 번 더 이 친구에게 맡기기로 했어요.
올해도 잘 부탁해 팥빙수야.
울 가게는 팥에 고구마를 넣고 직접 삶아서 빙수 팥을 만들어요.
캔으로 되어 있는 업소용 빙수 팥은 안 쓰고 있죠.
팥, 설탕, 고구마로만 만들어요.
손님 중 열의 아홉은 맛있는 팥빙수라고 말씀하시죠.
아주 가끔 우리 집 팥빙수를 먹으려고 일부러 찾아오시는 손님도 있어요.
얼음 알갱이 버석버석한 옛날식 팥빙수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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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과 공휴일을 반납한 생활이 벌써 몇 년째임에도 크리스마스와 어린이날은 여전히 적응하기 힘드네요.
어린이날에 어린이들은 어린이답게 온종일 집에서 TV 시청과 게임을 해야 해요.^^;;
어린이날이었던 어제는 울 가게 사상 최고 매출을 기록했어요.
손목이 아리고 발바닥이 화끈거렸지만, 기분은 최고였어요.
다 망해가던 가게를 살려냈다는 자부심도 조금 더 생겼고요.
조만간 자랑질 한 번 해야겠어요. ㅎㅎ
오늘 아침 비 오길래 폭망하는 줄 알았어요.
이 동네는 외진 곳이라 비나 눈이 오거나, 미세먼지 자욱한 날엔 인적이 끊기거든요.
오후에는 해가 떠서 다행이었어요.
내일 비가 그친다면 연휴 마지막 날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 듯합니다.
겉옷을 벗어 버리고 싶은, 따뜻하고 맑은 하늘을 기대합니다.
하늘아 하늘아 팥빙수 좀 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