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시선은 갈수록 싸늘해지고 있다. 세대 간의 경제, 정치, 사회적 이해관계가 날이 갈수록 매섭게 충돌하고 있다. 노인을 공경한다는 의미의 '경로(敬老)'는 옛말이고 노인을 혐오한다는 의미의 '혐로(嫌老)'라는 신조어가 유행을 탈 정도라고 한다.
노인들을 혐오하는 현상에 대해서 우려하는 것은 현재의 노년층만이 아니다. 언젠가는 노인이 될 수 밖에 없는 미래를 상상하고 있는 20~30대 까지도 우리사회의 "노인혐오" 현상을 걱정하고 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노인인권종합보고서'에는 노인인권침해와 그에 대한 국민의 인식상태를 전반적으로 조사한 내용이 실려있는데, 전국의 노인 1천명과 청장년(19~64세)5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노년층보다 청년층이 노인의 처지를 더 비관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특히 청년(19~39세) 중 80.9%가 '우리사회가 노인에 대해서 부정적 편견이 있고 이 때문에 노인인권이 침해되고 있다'고 답을 했는데, 이 비율은 노인층의 응답률(35.1%)의 거의 2배 이상 수준이라고 한다.
아이러니 한 것은 정작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낼 가능성이 많은 노인들보다도, 먼 훗날 자신들의 문제가 될 수 있는 노인층 문제를 현재의 젊은층이 더 앞서서 노인들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히 우리 젊은이들이 경로우대사상이 아주 강하고, 노인들이 자신들의 부모님같은 생각이 들어서, 젊은이들이 너무너무 착하기 때문에 노인들을 걱정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보여지는가.
젊은층이 노인층 문제에 대해서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는 것은 크게 사회전체적인 관점에서의 부정적 측면이 더 많기 때문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 일자리와 복지비용부담을 둘러싼 갈등 때문이기도 하고, 어차피 시간이 갈수록 이 모든 부담은 젊은층이 싫으나 좋으나 짊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작 노인들이 걱정하는 것보다 자신의 문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젊은 층이 더 적극적으로 노인문제를 걱정하고 있는 이면에는, "지금의 청년들이 나중에 자신이 노인이 되었을 때에 어쩔 수 없이 겪게 될 상황에 대해서 미리 걱정을 하고 있는 것" 이라는 설명이 되는 것이다.
결코 말처럼 쉽지 않는 것이, "나중에 늙어서 힘없고 일 못하면 그냥 빨리 약먹고 죽어야지" 라고 말을 하지만, 그렇게 쉽게 죽지고 못하는 것이 인간의 생존욕구이다. 그러니 지금시대의 젊은층이 지금시대의 노인들의 처지를 바라보면서 답답함과 암울함을 느끼는 것도 심한데, 나중에 그들이 겪게 될 노년시기의 암울하고 어두운 미래상은 현재의 노인들 보다도 더 답답하고 더 암울하게 예상될 것이다.
앞으로 저출산과 초고령사회로 인하여 노인세대 부양을 위해서 엄청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 자체에 젊은이들은 거부감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는 결국은 노인층 혐오라는 사회적 문제로 드러나게끔 되어져 있는데, 그 예로서 특별한 관계가 없더라도 노인층을 경멸하고 방임하고 학대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게끔 되어져 있다. 지난해에 태극기 집회와 촛불시위로 구분되어지는 세대간 이념대결도 결국은 이러한 노인층에 대한 혐오와 젊은층의 반감이 더욱 더 증폭되어지는 역할을 했던 것이기도 하다.
어차피 근로의 능력이 없는 노인들에게 경제적 의무와 분담을 요구할 수도 없다. 싫으나 좋으나 젊은 층에게 모든 책임이 전가될 수 밖에 없는 것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노인층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람에 대한 경영과 관리와 인사교육과 기획연구등의 연륜과 체험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정작 노인들이 일을 하지도 못한다. 아니 일을 할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만한 능력을 가진 노인들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세히 잘 들여다 보면, 정작 노인들이 해야할 일은 직접적인 경제활동이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의 연륜과 체험속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로움을 가지고,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간접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측면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노인은 어디를 가나 젊은 층의 부축을 받으려고 기대하는 것 보다는,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존중을 받을 수 있는 무게감이 있어야 하는것이다.
길을 가거나 사람들이 모이거나 공공장소에서의 예의범절과 품행에 있어서도 상호배려와 양보와 부드러움이 미덕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지혜로움을 가진 노인들이 많아진다면, 그것이 직접적인 경제활동이 아니라도 간접적으로는 사회전체의 건강한 경제활동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 되어서 그 댓가는 노인층에게 경제적 혜택을 다시 돌려줄 수 있는 것으로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정작 나이 먹고 늙어서 아무것도 못하기 때문에 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정작 중요한 것은 나이먹어도 내가 해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정작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사회전체적으로 도움이 되는 기여를 하는 것인지를 생각하지 못하는 고집스러움과 무식한 사고의 능력이 정작 오늘날의 노인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기 못한다는 것이 진짜 원인이다.
노인이 해야 할 일은, 젊은 층이 해야할 일을 같이 나눠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직접적인 생산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정말 노인이 해야 할 일은, 젊은이들을 조언해주고 지도해줄 수 있는 노련한 지혜의 능력이다.
하지만 정작 나중에 나이 먹어서도 젊은이들에게서 존중을 받을 수 있고 지혜로운 조언을 해주어서 이끌어 줄 수 있는 깊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젊은시절 동안에 얼마나 많은 경력을 쌓으면서도 자신을 올바르게 성장시켜나갈 수 있었느냐에 걸려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의 젊은층이 노인층의 문제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정작 그들 역시도 나이먹어서 무시당하고 대우 못받으면 어떻게 될까 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닐까. 더구나 젊은시절 동안에 정말 중요한 지혜로움을 쌓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겸손함의 미덕을 실천하고 살기에는 왕성한 혈기와 자존심이 쉽게 허락을 하지도 않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