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순례길을 찾는다.
답을 구하러 오는 사람도 있고,
마음의 평화를 위해 오는 사람도 있으며,
단지 길을 걷기 위해 오는사람도 있다.왜 이 길을 걷느냐고 물어오면
모른다고 할 수 없어 이렇게 대답했다.내가 왜 이 길을 걷는지, 알고 싶어서요.
9세기에 스페인 갈라시아 지방에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서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었다고 하여 유럽의 각지에서 순례객들이 찾아옵니다. 약 1200년 전이니, 열심히 걸어온 것이지요.
‘이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이 곳에 왔을까?’
아직은 서로 눈치만 보며 데면데면할 뿐입니다. 한달 후 서로 부둥켜 안고 울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일을 그만두겠다고 고한 날, 나는 모두를 배신한 것 같은 마음이 들었지만 조금도 미안하지 않았다.
집에가는 버스 정류장 앞에 섰다. 매일 밤 정각마다 하얀빛으로 반짝이는 금빛 에펠탑이 오늘도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안녕, 그동안 나를 위로해주어서 고마웠어.
밤 1시가 넘어 집에 왔는데 동생들이 안자고 기다리고 있다. 내일 일찍 떠나니 미리 인사를 했다. 이 원룸에서 네 명이 북적거리고 잘도 살았다. 짐을 싸고 두 시간을 자고 일어나 새벽 5시에 집에서 나왔다. 내가 멘 것은 사실 배낭도 아니었다.
따뜻한 바람만이 파도소리를 내며 나를 에워싼다. 어쩐지 다른 순례자들을 통 볼 수 없다. 이 길을 나 혼자 걷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쫓아갈 사람도 없지만, 쫓아오는 사람도 없으니 다행이다. 그 다행스러움이 걱정스러움으로 변할 때 쯤 씨마스를 만났다.
죽지 않으려고 걸었다. 잠시라도 멈추면 바람에 내동냉이 쳐져 벼랑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아서. 이 엄청난 맞바람을 뚫고 지나가려니 눈물, 콧물에 침까지 흘리고 있다.
이 시련을 나만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 순간, 원망섞인 설움은 가라앉는다. 다같이 애쓰고 있다는 사실에 알 수 없는 위로를 받는 것도 잠깐, 그래도 내가 가장 힘든 것 같다.

새벽 6시, 아직 모두 잠든 알베르게를 나섰다. 나는 걸음이 느리니까 천천히 오래 걸어야 할 것 같아서, 결국 서둘지 않으려고 서둘러 나온 것이다.
그는 스페인 사람이지만 프랑스 보르도에서 7년이나 살았다고 한다. 보르도라면 세계적인 와인 산지이니 혹시 그와 관련된 일을 했나 싶어 왜? 하고 묻자 뜸을 들이더니 대답한다. 사랑 때문에.
짙은 어둠이 깔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새벽에는 분명 나 혼자였는데... 암흑 속에서 서로 알아보지는 못했어도 각자 열심히 걸어오고 있었구나. 나 혼자가 아니었다. 우리 모두 그랬다.
서로 부엔 까미노(좋은 길!) 인사하는데
눈빛을 보면 압니다.
사색이 필요한 지, 대화가 필요한 지.
혼자 걸을 땐 분명 걸음이 이보다 한참은 느렸는데 동행이 생기니 발걸음에 힘이 나서 활기차게 걸어요. 혼자 걷고 싶어 혼자 걸었던 게 분명한데도요!

오늘 처음으로 나 홀로가 아닌, 많은 이들과 함께 길을 시작한다. 그 중엔 어제 나의 동료가 되었던 아이톤(스페인)과 에릭(프랑스)도 있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으니 어색하긴 해도 든든하다. 깜깜한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다같이 우르르 길을 잃었다가 되돌아 오기도 했다. 혼자였으면 정신 똑바로 차려서 길 안잃었을텐데.
빨리 오라느니, 천천히 좀 가라느니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필요도 없다. 함께 걷는게 좋으니 함께 걷는 것이다. 혼자가 편하면 혼자 걸어가면 된다.
순례길에서는 길을 잃을 걱정이 없다.
스팀잇에서 응원과 위로를 훨씬 더 많이 받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낯선 이와 관계맺는 SNS 는 처음이라 더 조심스럽고 서툴러 그런가봐요. 시간과 체력을 넘어 이제는 감정소모까지 많아지니 종종 도망가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그런데 하필 스팀스달도 대폭락...
그래서 이번에도 순례길 연재로 저를 묶어 놓으려고요 :D 마침 순례길 일기에는 나약하고, 못나고, 수줍은 저의 모든 감정이 낱낱이 드러나 있으니 읽는 분들이 좀 적을 때 올리고도 싶었습니다. 지금껏 저를 방문해주시는 분들께는 좀 더 솔직해도 되겠지요.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