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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렇게 인사드리네요.
열흘 전 [산티아고 순례길 prologue] 까미노 로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약 800 km 가 되는 길을 한달간 걸었던 이야기라
반복되는 내용에 지루해지실까봐서
각각 [pen] [travel] [diary] [photo] 란 말머리로
일기에 변주를 주어 연재하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이 길은 ‘순례길’ 입니다.
9세기에 스페인 갈라시아 지방에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에서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었다고 하여
유럽의 각지에서 순례객들이 찾아옵니다.
약 1200년 전이니, 열심히 걸어온 것이지요.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이 산티아고입니다.)
산티아고로 가는 여러 길 중에
가장 오래도록 사랑받았던 길이 바로
프랑스 길(Camino Francés) 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함께 걷게 될 길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으로 지정되었어요.
순례길을 알게 된 것은 대략 2005년,
친구 하나가 한달 동안 길을 걸었다며
노란색 화살표가 그려진 파란 세라믹 타일을
기념품으로 건네 주어서였습니다.
순례길에서 노란색 화살표는 큰 의미가 있지요.
순례자는 모두 이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게 됩니다.
표지판, 길바닥, 벽, 심지어 나무와 돌에도
노란 화살표 표시가 되어 있어요.
그 친구는 독실한 천주교였기에
정말 순례자의 마음으로 길을 걸었을 거예요.
오늘, 신학공부를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거든요.
모두 종교적인 이유로 이 길을 걷는 것은 아닙니다.
순례길이 일반인들에게도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 때문인데요,
우리에겐 <연금술사> 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지요.
그는 이 길을 걷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뒤
1989년 <순례자> 라는 책을 씁니다.
그 뒤로 많은 이들이
파울로 코엘료처럼 인생의 지표를 얻기 위해,
혹은 마음의 휴식과 자기 자신을 찾으러,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기 위하여...
다양한 이유로 순례길을 찾습니다.
그들을 모두 순례자(Peregrino) 라고 통칭합니다.
이런 이름 덕분인지 여행자들 모두
몸가짐을 조신히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
[참고]
[산티아고 순례길 pen] D-1 일 그만둔지 4시간, 배낭 메고 떠나다
파리에서 떠나 바욘(Bayonne) 에 잠시 경유하여
동화같았던 바욘 시내를 구경하고 돌아오니
기차역에 큰 배낭을 맨 사람들이 부쩍 보입니다.
‘이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이 곳에 왔을까?’
아직은 서로 눈치만 보며 데면데면할 뿐입니다.
한달 후 서로 부둥켜 안고 울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한국인들도 보였지만 굳이 아는 척 하지 않았어요.
먼저 말 걸기도 쑥스럽고,
섣불리 친해졌다가 내내 같이 걷게 될까봐서
새침떼기인 척 먼 발치에 앉아 사진이나 찍었지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작은 마을에서 시작됩니다.
생장피에드포드 (St-Jean-Pied-de-port),
피레네 산맥 근처의 스페인 접경 마을이지요.
바욘-깜보를 거쳐 버스를 타고 생장에 도착합니다.
아, 여기구나! 하고 둘러 보기를 잠시,
하차한 다른 승객들로부터 도망치듯,
혼자 성큼성큼 순례자 사무실을 찾아 나섭니다
한 건물 앞에 배낭을 맨 사람들이 줄서 기다립니다.
이 곳에서 순례자 등록을 해야합니다.
성별과 국적은 물론 연령대도 다양합니다.
유럽에서는 은퇴한 분들이 많이 오시더라구요.
순례길을 걷는 데 보통은 한 달 남짓 걸리지만
두 달동안 천천히 걷는 분들도 있고
매년 일주일씩 5년에 나눠 걷는 사람도 있고
길 중간부터 걷는 사람도 있고 다양합니다.
자신의 상황에 맞춰, 발걸음에 맞춰 걸으면 됩니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요.
아래 사진에 개를 데려 온 순례자가 보이시나요? ;)
순례길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제 이름을 적은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습니다.
이 여권(크레덴씨알) 이 있으면
값싼 가격으로 알베르게 에 묵을 수 있습니다.
알베르게는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입니다.
걷게 될 거리와 고도를 표시한 자료도 받습니다.
첫 날은 무려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합니다.
해발 1500미터정도 되는군요.
사무실 안의 저울에 너도나도 배낭무게를 잽니다.
대부분 8kg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한 번 제 가방을 올려 보았습니다.
저울 눈금이 멈추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들립니다.
4.5kg
다 챙겨온 거 맞아?
1유로를 기부하고 조개껍질도 하나 입양했어요.
색이 가장 연한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너도 나랑 같이 걷자.
이상합니다.
몇 시간전까지만 해도
주방에서 8명의 사내들과 티격태격 거리며 일하고
원룸 집에선 3명의 룸메이트와 동고동락했는데
이제는 저 혼자 덩그러니있습니다.
일행과 온 것인지 벌써 친구들을 만든 것인지
벌써부터 웃고 떠드는 사람들이 있네요.
‘나 원래 혼자서도 잘해.’
괜히 한번 되뇌이며 동네를 구경합니다.
이게 실수였어요. 짐부터 풀었어야 했는데......
마을의 집들이 마치 운하 위에 떠있는 것 같습니다.
혼자 둑 위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맞아 봅니다.
드디어 내일, 시작이구나.
날이 흐려서인지 저녁식사 시간대여서인지
거리에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군요.
그 많던 순례자들은 다 어디로 간건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고
드디어 오늘 밤 묵을 숙소를 찾습니다.
만실, 만실, 만실...............
싼 값의 숙소는 모두 만실이예요!
벌써 해는 뉘엿뉘엿 저물고
빗방울도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ㅠㅠ
초조해진 저는 골목을 따라 마을 끝까지 걷습니다.
그런데 어라? 바욘에서부터 보았던,
개를 데리고 온 순례자를 발견하고는
저 혼자 반가운 마음에 다짜고짜 물었습니다.
너, 너 어디서 잘거야?
나는 캠핑할거야.
어디서? 나도 같이 하자.
내 침낭안에서 할 건데...
응?? 비오는데 어떡하냐, 잘자라고 인사를 하고
다시 마을로 돌아옵니다.
비싸서 그냥 지나쳤던(12유로) 도미토리 숙소에는
다행히 방이 남아 있더군요.
순례자 여권에 첫 알베르게 스탬프를 찍습니다.
어젯밤 퇴근하여 2시간을 자고
기차에서부터 하루종일 긴장 속에 돌아다닌 끝에
저녁은 오렌지 쥬스로 떼우고 숙소로 들어갑니다.
이미 자리잡은 순례자들이 내일을 준비합니다.
설렘과 긴장이 가득한 방 안에는
바스락 거리며 짐을 싸는 소리 뿐이네요.
다음날 첫 여정을 위해 모두 일찍 잠듭니다.
저도 아저씨들의 코고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정말 오랜만에 곤히 잡니다.
순례길을 알게 된 지 10년 후,
이렇게 저의 순례길이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