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소고기 동호회의 인간 지표 하이에나 씨가 무심코 비트코인을 샀다고 얘기한 날입니다. 이 친구는 아프리카 초원에서 뛰어노는 하이에나를 보며 엑스타시를 느끼고, 집 안 수족관에서 일어나는 물고기들 간의 세력 다툼을 보면서 인생 무상을 대리 경험하는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데, 투자 경험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뭘 사기만 하면 항상 오릅니다. 인간 지표입니다.
또 한번 우연의 일치인지, 오늘의 시세 변동을 확인해보니 어제의 공포를 다소 벗어난 견조한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 흐름이 내일도 이어진다면 하이에나가 정신 세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야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퇴근 후 시원한 다이어트 코크를 들이키며 작년 6월 하락장에서 든든한 멘탈의 수문장이었던 레드벨벳의 뮤비를 보고 있었는데, 작은 아이가 연필과 도화지를 들고와서는 같이 그림을 그리자고 조릅니다. 10분만 쉬고 같이 놀자고 했더니, "흥, 아빠는 또 여자들 춤추는거 볼려고 하는거잖아"라고 반문합니다. 단단히 삐진 것 같습니다.
반쯤 눈이 풀린 상태로 예쁜 언니들이 춤추는 영상을 진지하게 감상하는 아빠의 모습이 딸에게는 엄청나게 부정적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아빠의 본업인 자기랑 놀아주기를 10분이나 미루는 걸 보니, 가정파탄이 염려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아. 저의 이 험난하고 숭고한 면벽 수련의 길을 7살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오늘 100분 토론 유시민 선생의 "잘 모르겠고", "문과" 드립의 꽉 막힌 모습을 보며 김진화 대표가 느꼈을 막막함이 저의 느낌과 어느 정도는 맞닿아 있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 사실 패널로 나오신 "김진화"라는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예전에 비트코인에 한참 관심이 생겨 서점에서 읽을만한 관련 서적을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의외로 많은 종류의 서적들이 있어 놀랐고 두 번째로 대부분의 책이 발로 대충 쓴 것 같은 황색 찌라시 수준의 퀄리티라는 점에 놀랐습니다.
유독 고퀄리티의 읽을만한 책이 두 권 있었는데 그 중의 한권이 "NEXT MONEY 비트코인"이었습니다. 저자는 김진화 님으로 되어 있었는데, 확인해보니 오늘 출연하신 그 분이셨습니다. 역시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의 태동과 현재의 위치, 미래의 가치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영역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해주신 유일한 패널이었습니다.
엄밀히 말씀 드리면 유시민 선생의 말씀도 제 기준에서 보면 틀린 부분이 없었습니다. 저는 비트코인이 법정 화폐를 대체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고 있으며, 오히려 이 때문에 더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는 의견을 예전의 포스팅을 통해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다만, 달변가들이 토론을 이기기 위해 쓰는 반칙을 여러 번 범했다는 점에서 오늘은 좀 평소보다 긴장하고 힘들었던 토론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회적 효용 가치" 얘기를 할 때, 고개가 갸우뚱 해졌습니다. 전체주의적 사고 방식으로 사회적 효용 가치를 재단하고 그 가치 대비 부정적 효과가 더 큰 경우 국가의 권력으로 이를 금지할 수 있다는 신념.
그가 젊은 시절 추구한 "자유주의"와는 상당히 다른 스탠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유시민 선생이 언급했던 것처럼 사회적 효용 가치의 극대화를 위해 국가가 국민의 삶을 통제했던 유토피아의 시기가 대한민국에도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대통령을 욕하거나 국가의 정책에 반하는 언행을 하면 다음 날부터 영원히 실종되기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경험한 유토피아의 재림을 꿈꾸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나오신 경희대 교수님은 인생의 쓴 맛을 느낀 하루셨을 것 같습니다. 그가 언급한 "선의"는 나카모토 사토시의 백서에 나와 있는 "honest"를 사전적으로 해석한 것인데 아시다시피 저는 이런 식의 오역에 경기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저는 암호 화폐라고 번역하는 것도 최선의 방식이 아니라고 예전에 말씀 드린바 있습니다.
원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The system is secure as long as honest nodes collectively control more CPU power than any cooperating group of attacker nodes.
블럭체인의 위변조를 시도하는 공격자들보다 블럭체인의 지지자들(honest nodes)의 CPU 파워 합이 높은 경우 시스템은 안전하다라는 얘기입니다. 보상을 바라지 않는 "선의"의 참여자에 대한 얘기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51%"는 백서에 단 한번도 언급된 적이 없습니다.
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없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분들의 많은 수가 교수님이신데, 교수 직함 다시고 TV 나와서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이와 관련하여 비트코인이 가지는 사회적 효용 가치에 대한 얘기를 좀 드려볼까 합니다.
사회, 효용, 가치, 고상한 단어들의 조합입니다. 뭔가 대단한 이상이 포함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인류의 번영과 평화, 발전과 미래를 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이 행복해지기만 한다면 그 것이야 말로 사회의 효용 가치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행복의 기준은 국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닌 개인의 주관에 따른 것이어야 합니다.
저는 재무학과 더불어 열광하고 신봉하는 또 하나의 학문 분야로 마케팅을 꼽습니다. 마케팅은 사람의 심리와 행복과 돈에 대한 매우 경험적인 접근입니다. 배우는 내내 행복해지고 돈 버는 기술도 배우는 학문입니다.
마케팅의 아버지 필립 코틀러는 마케팅에 대해 단 한 마디로 정의합니다. 바로, "만족감"을 주는 것.
가지고 싶었던 어떤 물건을 소유하게 됨으로써 얻는 만족감.
이 표현이 너무 1차원적으로 느껴지신다면 다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저는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 모델 S로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이 사람은 기술자보다는 뛰어난 마케터의 기질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기와 배터리는 구닥다리 기술입니다. 테슬라가 나오기 전에도 전기차는 많았습니다.
전기차의 목표가 연료비 절감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는데, 오히려 제조 단가는 일반 자동차보다 비싼게 문제 였습니다. 원료의 독점 때문에 대량 생산을 통한 생산단가 절감도 불가능했습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전기차 제조사들은 차를 더욱더 소형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차가 아니라 달구지처럼 만들었습니다.
자동차 제조경험이 전혀 없는 테슬라라는 신생회사는 그런 구닥다리 기술로 고객의 "만족감"을 만들어 냅니다. 대형 럭셔리 세단에 12기통 가솔린 엔진보다 뛰어난 스포츠성을 얹어 판매합니다. 아무도 사지 않을 미친 가격을 붙입니다. 그리고 고객의 만족감에 호소합니다. 테슬라를 소유한 고객은 "우리 후손이 살아갈 미래의 환경을 보호하는 부유한 지식인층"이라는 만족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을 소유하는 것의 만족감은 무엇일까요 ? 2100만개로 제한된 한정판을 소유했다는 만족감 외에도 매일 소고기를 사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꿈을 꾸는 만족감이라던지 사람마다 제 각각의 만족감을 주는 요소가 있을 것입니다.
돈이 그렇게 많아도 자살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돈이 주는 만족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비트코인이 너무 많아서 자살했다는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습니다.
자유주의 국가를 추구하는 한, 만족감이라는 것은 개인의 선택과 자유의 영역으로 남겨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 효용 어쩌고 같은 그럴듯한 말로 국가가 나서서 성인의 행동을 하나하나 걱정하여 "금지"하는 것이 과연 다른 자유주의 국가들이 선택하는 길인지 옆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OECD 가입했으면, 선진국이 되고 싶으면 최소한 그들과 비슷하게라도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여자가 발목이 보이는 옷을 입으면 성범죄가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일부 극단적 이슬람 국가와는 다른 길을 갔으면 합니다.
제가 중동에서 만난 중국 사람들은 본인이 중국인이라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런데, 돈벌어서 중국에 다시 돌아갈거냐고 물어보면 절 미친 사람 보듯이 합니다. 아무도 중국에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잘 몰랐는데 오늘 100분 토론을 보며 살며시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딸 아이를 설득할 논리를 고민하다가 너무 멀리 온게 아닌가 합니다. 오늘은 이 정도에서 줄이겠습니다. 행복한 불금을 기원합니다.
p.s. 한 가지만 첨언하면, 비트코인 이외에 화폐를 대체 가능한 많은 수의 가상화폐들이 있으며 성공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다만, 비트코인이 제도권에 정착할 때까지 숨을 죽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세한 얘기를 드릴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