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국내 최대 거래소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던 빗썸에는 전설과도 같은 무용담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빗썸에 상장되는 코인은 "오른다". 이는 단순한 단기 가격펌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중장기적인 펀더멘탈, 가치투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니 그 엉터리 운영의 대명사 빗썸이 설마요? 싶으시겠지만 이 괴상하고도 믿기 어려운 법칙은 단 한번도 깨진적이 없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아이콘이라는 코인이 빗썸"프로"에 상장되었습니다. 빗썸프로는 빗썸과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형제 거래소입니다. 아이콘은 빗썸프로에만 상장되어, 거래는 빗썸프로에서만 체결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빗썸프로는 왜 생겨났고, 왜 필요했을까요? 아이콘 상장을 보자 저는 뭔가 알 것 같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 기괴한 이야기에 대해 다루어볼까 합니다.
신은 빗썸에게 양심을 빼았고, 분석 능력을 주었나?
빗썸의 운영방식은 미스테리 그 자체입니다. 발로 만들었는지 의심되는 엉터리 UI와, 밥 먹듯이 터지고 주저앉아 버리는 약골 서버, 느려터진 고객지원 서비스 등은 정말 분통이 터지게 합니다. 도대체 그동안 받아온 그 많은 수수료는 어디에 쓰는지 이해가 불가능한 수준이죠. 그 뿐만인가요. 비트코인 캐시 사태같은 불공정 거래가 의심되는 사례는 열손가락으로 세기가 힘들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악명높은 거래소 빗썸에게도 한가지 배울(?) 점이 있습니다. 신들린 듯한 그들의 상장 능력인데요. 정확히 어떤 기준으로 상장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펀더멘탈이 근간이 되는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상장하는 족족 대박을 치는 그들의 암호화폐 선별 능력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빗썸이 선택한 코인은 언젠가 구조대가 온다는 믿음은 상장 펌핑을 믿고 진입하는 투기꾼들의 보험이 되었습니다.
2017년 하반기 빗썸의 아이들
2017년, 빗썸은 상반기에 리플/대시/라이트코인, 하반기엔 모네로/제트캐시/퀀텀/이오스를 상장했습니다. 상반기에 상장했던 코인들은 워낙에 네임밸류들이 높은 것들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빗썸의 선택 능력을 판단하기엔 어려워보입니다. 상장할만한 애들을 상장했다고 생각됩니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아무래도 하반기 코인들이겠지요. 하반기 코인들이 어떤 성장률을 보였는지 볼까요?
각각의 데이터는 Bittrex/Bitfinex 등에서 마구잡이로 뽑아왔습니다. 정확한 수치는 실제와 근소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빗썸의 아이들은 상장 공지 근처보다 평균적으로 2배의 상승률을 보였습니다. 비트코인의 상승률과 시장 상승률을 크게 상회하는 값입니다. 비트코인 대비 25%, 시장 대비 10% 정도의 이익을 취했습니다. 단기간임을 고려하면 꽤 크고 유의미한 수익률이라 생각됩니다. 이와 같은 데이터는 몇가지 외적인 요소를 부가적으로 고려해본다면 더 의미가 커집니다.
가장 최근에 상장한 이오스는 상장일로부터 3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는 빗썸 상장이라는 재료가 희석되기 충분한 시간입니다. 지금의 가격은 그 코인이 시장에서 인정받은 가격이라고 보아야겠지요. 여기 덧붙여 정보 관리에 허술한 척(?)하는 빗썸의 악행을 고려해보면, 공지 1일전 가격은 이미 많이 양보했다고 보여집니다. 각각의 가격흐름을 살펴볼까요?
이오스는 12월 13일로부터 3일을 거슬러올라가면, 가격이 3.9$였습니다. 퀀텀은 11.4$, 모네로는 47$, 지캐시는 218$였습니다. 빗썸은 상장 때마다 찌라시(이오스 12월 5일, 제트캐시 9월 23일)들이 난무해왔던 것을 고려하면, 실제 상승률은 더 컸던 셈입니다. 물론 빗썸 상장 찌라시는 워낙에 많고 닳고 닳아서, 얻어 걸린 것일 수도 있겠지만요.
- (주의!) 빗썸 상장 찌라시를 믿고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또, 빗썸 상장 공지와 동시에 진입하는 것도 기대 이하의 수익률을 줄 수 있습니다. 위 표의 기준가를 상장 공지일로 설정하면, 시장 상승률에 패배하는 결과를 얻습니다. 내부 정보 거래자가 훨씬 유리합니다 (빗썸은 역시 악질입니다). 다만, 비트코인/원화 대비해서는 수익을 봅니다.
보수적인 선별 기준은 오히려 독?
빗썸처럼 상장하는 코인들을 대박을 치게 하면, 거래소 이용자는 해당 거래소를 선호하게 됩니다. 대박 코인을 사기 위해 자연스럽게 돈이 모이게 되고, 돈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비트코인같은 우량주도 "그 거래소"에서 거래를 하게 됩니다. 바이낸스 거래소가 거래량 1위로 올라선 계기는, 신생코인들을 잘 걸러내서 상장했던 것도 있었죠. 대박 코인을 바이낸스에서밖에 못사는데 별 수 있나요? 그리로 가야죠.
근데 문제가 있습니다. 빗썸이 상장하려고 옥석을 가려냈더니, 그 코인은 여기저기 이미 다 상장되어 있습니다. 상장예고를 해봐야 투자자들은 그냥 다른 거래소에서 사고 홀딩하면 그만입니다. 죽쒀서 개주는 꼴입니다. 결국 빗썸은 업비트에게 한국 거래소 1위의 자리를 내줘야했습니다. 그렇게 빗썸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잡다하게 상장하자니 영 불편합니다. 지갑 관리도 문제겠지만, "금손"이라는 타이틀도 버리기는 싫거든요. "빗썸이 상장하면 오른다"는 투자자의 인지적 편향을 포기하는 싫을 것입니다. 근데 이 딜레마는 결국 빗썸을 병들게 합니다. 그래서 빗썸프로를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갈림길에서 선택하지 않고 머뭇거리기만 하면, 도태될 뿐입니다.
빗썸프로=모험을 즐기는 자를 위한 싸움터
이것은 제가 써내려가는 시나리오에 불과하지만, 빗썸이 빗썸프로를 만들어낸 이유는 두마리 토끼를 놓치기 싫은 욕심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 코인 저코인 다양하게 상장해서 시장 참여자의 자유를 보장하는 트랜드와 금손 타이틀이라는 두마리 토끼 말이죠. 빗썸 프로는 자유로운 시장을 위해 새롭게 설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더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는 경영진이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보수는 금손 타이틀을 유지, 진보는 공격적 상장에 무게를 두었을 것입니다.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싸우기만 하다가 결국 두 거래소를 같이 운영하자고 합의를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게 어찌보면 묘수로 느껴지는 것이, 진보쪽이 승리하면 기존 빗썸을 접으면 그만이고 보수쪽이 승리하면 빗썸프로를 접으면 그만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빗썸프로에만 아이콘 상장 됐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아이콘은 어찌보면 지금까지의 상장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거든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조금 더 공격적인 선택을 했다고 보여지고, 의도적으로 업비트에 없는 코인을 골랐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어찌됐든 모험을 즐기는 투자자에겐 좋은 변화임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 아 모르겠으니까, 그럼 그냥 둘다 해봐!
마치며
빗썸에 대한 인식이 아마 많이들 안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도대체 왜 빗썸을 아직까지 쓸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저도 많이 공감하는 부분이고, 솔직히 저도 빗썸을 거의 이용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전부터 빗썸의 펀더멘탈 분석능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이번 빗썸프로의 행보를 보면서 제 생각에 약간은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빗썸이 고른 코인은 "눌림목"에서 사볼만 하다.
아, 이거 중요한 것이니 메모(...) 부탁드립니다. 빗썸입니다. 빗썸프로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