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 교수에게 중증외상 환자들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출처: 동양뉴스통신 (2017. 3)
사실 중환자실과 외상 병동의 중증외상 환자들은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삶과 죽음은 경계가 모호하고 매 순간 소멸과 회복 사이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국종교수의 작은 바램은 이런 삶의 회색지대에서 방황하는 그들을 삶에 가까이 끌어다 놓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은 그들을 죽음을 가정한 상태에서 치료를 합니다. 대부분의 병원에 중환자실과 영안실이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일 겁니다.
아주대병원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가 만들어질 때도 이런 편견은 그대로였습니다. 처음 병원 관계자가 내민 도면 위의 외상센터는 죽음을 기초로 만들어졌습니다.지하 영안실위에 외상센터를 건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국종교수는 이 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물론 빨리 건립하기 위해서는 병원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지만, 그들을 삶의 근처로 끌어내기 위한 자신의 신념을 버릴수는 없었습니다.
한참의 논란 끝에 영안실을 다른 곳에 신축하는 것으로 재단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공사가 이루어지는 동안에도 이교수는 수없이 좌절하고 실망을 합니다. 자신이 경험한 미국의 중증외상센터의 규격을 갖추려 했습니다. 하지만 내부의 중요설비와 장비보다는 외관에 관심이 있었고, 병상의 숫자보다는 편리한 에스컬레이터에 더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그가 주장했던 샌디에이고 외상센터 기준에는 거의 30%수준에 미치는 외상센터가 건립되는 모습을 보며 힘들어 합니다. 그래도 한국에서 처음 중증외상센터라는 이름의 병원이 만들어졌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디클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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