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날 밤부터 목줄에 휘감겨 있었다. 예비군 훈련, 민방위 교육, 이래서 받아야 하는 교육, 저래서 받아야 하는 교육, 안 받을 수는 없지만 가급적 피하고 싶은 이런저런 교육들. 하루 쉰다 생각하고 편하게 마음먹어도 막상 교육 시간이 되면 길지 않은 몇 시간이 참 지루하다. 평소 기상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일어나야 했다. 힘껏 당겨진 목줄에 끌려다니는 듯한 기분은 지루한 하루를 예매한 후유증이었다.
문득 이런 사설 기관이 왜 국가 기관을 대체하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여기서 수료증을 받아야 국가 기관에서 공인하는 관련된 인가를 받을 수 있다. 사설 기관이다 보니 무료가 아니었다. 이만 몇천 원을 내야 한다. 하루 한 번 상영하는 "지루한 하루"의 예매 비용이 이만 몇천 원인 셈이다. 차비, 점심값은 물론 별도다. 정수기의 맹물과 커피믹스는 무한정 먹을 수 있었지만, 난 위장이 편치 않은 관계로 커피믹스는 먹지 않는다. 3백 명은 족히 수용할만한 강의실에 수강생은 이십 명 남짓이었다. 번호표를 나눠주면서 번호와 동일한 좌석에 앉아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는데 강사가 제일 잘 볼 수 있는 앞쪽 세 번째 줄부터 한 칸 건너 한 명씩 자리가 배정되어 있었다. 다닥다닥 붙지 않았으니 배려받은 것인가. 가운데 통로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은 남자, 왼쪽은 여자로 나뉘어 있었다. ㅋㅋ
관공서나 유사 기관의 건물은 어딘지 모르게 콘크리트 냄새가 난다. 춤을 추다가도 그런 건물 안에만 들어서면 바로 제식훈련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랄까. 목줄에 묶여 끌려와서 더욱 그런건지도 모른다. 신발 밑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넓은 계단에 깊은 울림을 만들고는 형광등 그림자 안으로 파고들었다. 옥상 흡연 장소는 온통 초록색이었다. 바닥과 고개를 내밀 수 없는 2.5m 높이 외벽까지 초록색 방수도료가 칠해져 있었다. 상록수 지천에 자라는 야산의 어여쁜 녹음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이런 교육을 담당하는 강사는 원래 느릿느릿 원고를 읽는 사람들이었다. 청중이 자건 말건 상관없이 오직 가져온 노트의 마지막 마침표를 확인해야 뿌듯해지는 사람들이었다. 난 같은 상황을 예상했지만, 오랜만의 교육에서 사뭇 다른 상황에 부닥쳐야 했다. 여섯 명의 강사는 하나같이 청중과의 소통에 정치적 생명을 건 사람들처럼 보였다. 개중에는 약 팔러온 사람이나 개그맨 공채에나 어울릴만한 소재를 들고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근사한 사자성어나 시를 어떤 화두처럼 던지기도 했다. 대추 한 알에도 몇 개의 천둥과 태풍이 있는데 당신의 열정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런 식이다. 어떤 강사는 강단에서 내려와 일일이 눈을 마주치며 열정과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고 얘기했다.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나는 피식 웃으며 눈을 피했다.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점심시간에는 교육장 근처를 한참 둘러 보다가 감자탕집으로 들어갔다. 혼자 뼈 해장국을 시켜 열심히 뜯어 먹었다. 역시 목줄에 끌려다니는 강아지였음을 뼈다귀를 핥고 있는 내 모습이 확인시켜 주었다.
자의로 이곳에 왔다면 강사들이 하자는 대로 손뼉도 치고 구호도 따라 했겠지만 사설 기관의 의무교육이란 선입견에 내 몸과 입술은 완전히 경직되어 있었다. 더구나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열정과 노력만이 성공을 담보해 줄 수 있다는 판에 박힌 논리였다. 그런 뻔한 논리를 전하기 위해 강사들은 아부하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여전히 그래야만 하는 피곤한 삶을 우리는 살고 있다고 열심히 세뇌시켰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열정과 노력이 없는 사람인가. 성공하기 위해 누구나 열정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나. 성공하지 못한, 즉 돈을 벌지 못한 사람은 낙오자인가. 네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열정과 노력이 없었기 때문이란 얘기를 서슴없이 하는 어느 강사의 강의는 차라리 오만에 가까웠다. 프로페셔널이 되려면 열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누구나 열정이 있고 누구나 프로가 되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저 평균적으로 산다고 해서 삶을 위협받아서는 안되고 게으른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작은 성공을 위해서라도 갖은 노력을 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건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그만큼 취약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반증이다. 모래성처럼 위태로운 구조의 모순을 개개인이 나누어서 떠안고 있는 것이다. 열정은 지금 나의 것은 아니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면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