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전쟁은 1894년 전라도 고부의 동학접주 전봉준 등을 지도자로 하여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 관군 및 일본군과 벌인 전쟁입니다.
그동안 동학은 민중운동적인 관점에서 주로 다루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요즘 여러 연구에서 동학을 전투, 전쟁의 시각으로 조망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을 답사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우선 동학교도들이 전봉준의 지도 아래 고부 백산에 집결합니다. 백산은 주위의 평야지대에서 그리 높지 않은 구릉지대이지만 이곳에 올라가면 주위 일대를 모두 둘러볼 수 있는 천혜의 지형입니다. 지금도 백산에는 당시 동학의 집결을 기념하는 봉기 기념탑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백산 봉기 기념비
백산에서 둘러본 주위 지세
전봉준은 항전의 대오를 갖추고 동도대장에 추대되었습니다. 손화중, 김개남이 총관령이 되어 그를 보좌 했습니다. 전봉준은 창의의 뜻을 천명하는 4개항의 행동강령을 선포해 참여한 모든 교도들을 경계하게 했습니다.
동학농민군은 파죽지세로 관군을 물리치고 전주성까지 이르릅니다. 전주성은 조선 왕조에게는 상징적인 장소였습니다. 전주 이씨의 나라라는 중요성과 더불어 왕실의 태무덤이 있던 곳으로 이곳이 만약 동학군에 피탈된다면, 왕실의 체면이 상당히 구겨질 형편이었습니다.
전주성 성문
왕실에서는 증원군을 보내 전주성을 방어하려 했으나 동학농민군의 위세에 눌린 관군은 모두 도망갔습니다. 이로 인해 동학농민군은 전주성에 무혈입성합니다. 동학군이 전주성을 함락했다는 소식에 조정에서는 동학군과 휴전를 추진해 제1차 봉기가 마무리 됩니다.
동학군을 이끈 전봉준 장군 생가와 그의 가묘도 둘러 봤습니다.
장군의 생가
전봉준 장군 가묘
1차 봉기로 조정에서는 동학군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기로 합의 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아 2차 봉기가 발생합니다. 2차봉기는 삼례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삼례 봉기 현장
삼례 기념비
1차 때와는 달리 관군은 일본군의 지원을 받아 동학군 토벌에 나섭니다. 무기면에서 관군보다 열악한 동학군은 패전를 거듭합니다. 마지막 전투는 공주의 우금치에서 벌어집니다. 관군과 일본군에 비해 숫적, 무기면에서 열악한 동학군은 용전분투했지만 거의 대부분이 전사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송장배미라는 마을까지도 생겨날 정도였습니다.
우금치 고개에 서있는 기념비
송장배미 비석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동학군은 수십명이 살아남아 최후의 결전을 준비합니다. 대둔산 정상으로 피신한 이들은 모두가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싸웠다고 합니다. 산이 너무 험해서 올라가지는 못했고, 아래 산장에서 바라보며 석양에 비친 동학 최후의 항전지를 촬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