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입니다. 다들 설 준비는 잘 하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요즘에 스팀잇에 한국분들이 경제 분석에 대한 글들을 올리시는 걸 보는데, 오스트리아 학파 소속의 학자들 이름이 많이 나오더군요.
한국에 몇 안되는 오스트리아 학파로써 굉장히 기쁘고, 감사하고 그렇습니다. 사실 오스트리아 학파 소속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나, 머레이 라스바드, 루트비히 폰 미제스 등의 학자들은 불환지폐(Fiat Currency)를 반대하고 금본위제, 또는 복본위제(금과 은 모두를 사용하는 것)을 주장했던 학자들 입니다.
(근대 오스트리아 학파의 근간을 마련했다는 루트비히 폰 미제스 입니다. 그의 <화폐신용이론>은 화폐라는 것은 무엇인지, 간접교환은 왜 일어났는지, 이자율은 무엇인지, 화폐는 어떤 기능을 해야하는지 등등 여러분들이 요즘 암호화폐에 투자하시면서 알아가야 하는 점들을 많이 배우실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이들중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그의 저서 <화폐의 탈 국가화>에서 민간이 주조하는 화폐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의 저서들 대부분이 1900년도 중반에 나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굉장히 탁월한 견해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존경하는 머레이 라스바드는 그의 저서<정부는 우리 화폐에 무슨 짓을 했는가?>에서, 민간이 주조하는 화폐가 국가 또는 중앙은행이 주조하는 화폐보다 더 좋았음 좋았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이렇게 지루하게 학자들의 이름을 꺼내놓고 그들이 쓴 책만 나열하는 건 이쯤하고!
이들의 역사와 접근법에 대해서 써볼까 합니다~
오스트리아 학파(Austrian School)는 1870년데에 빈(Vienna)에서 시작한 경제학 접근법 입니다. 그 시작은 빈(Vienna)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던 카를 맹거(Carl Menger)입니다.
(카를 맹거 입니다)
맹거가 오스트리아 학파를 만든 거 이외에 유명한 업적으로는 당시 정설로 여겨졌던 노동가치설(Labor Theory of Value)을 전면적으로 반박한 주관주의 가치론(Subjective Theory of Value)을 만들었고, 경제학계에 혁명이라 불리는 한계효용(Marginal Utility) 이론을 집대성한 경제학자들 중에 한명입니다. (주관주의 가치론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맹거로 시작한 오스트리아 학파는, 그의 제자인 오이겐 폰 뵘바베르크(Eugen Von Bohm-Bawerk)와 프리드리히 폰 비저(Friedrich Von Wieser)에 의해 계승됩니다.
(뵘바베르크 입니다)
뵘바베르크는 그의 스승인 맹거가 고안한 주관주의 가치론을 이자와 자본의 영역에 적용해서 발전시켰어요. 그는 특히 이자가 인간의 시간 선호(Time preference)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밝혔죠. 간단하게 설명하면, 우리는 물건을 미래에서보다 지금 가지는 것을 선호하고, 우리는 그것들을 얻기 위해 이자를 주고 빌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가 어떤 것을 잠시 빌려줄 때, 이자를 지불받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는거죠.
그리고 그 뵘바베르크도 후학을 양성하게 되는데 뵘바베르크의 제자들 중 단연 돋보이는 학생들은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와 조세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였습니다.
슘페터는 20세기 케인즈와 더불어 가장 영향력있는 경제학자로 손꼽히죠. 지금도 우리가 자주 말하곤 하는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창초한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을 소개하며 시장에서 새로운 혁신은 구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파라다임을 연다는 이론이죠.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연준의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과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솔로우(Robert Solow)를 가르쳤습니다. 슘페터의 특이한 점이라면, 그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정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만의 경제 이론들을 집대성 했다는 점이겠습니다. 그래서 강경 오스트리아 학파들은 슘페터를 오스트리아 학파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슘페터와 호각을 다투던 학생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는 슘페터와는 반대로 오스트리아 학파의 정설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더 발전시키는데 기여합니다. 히틀러의 나치가 동유럽을 지배하던 시대에 태어나, 미국으로 망명을 가서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에서 평생동안 후학을 기르는데 모든 노력을 했던 학자입니다.
미제스는 오스트리아 학파를 더 발전시켜서, 인간행동학(Praxeology)을 창시하여 오스트리아 학파에 융합한 학자입니다. 그의 저서 <인간행동>은 지금도 오스트리아 학파에서 성서 취급을 받을 정도입니다. 많은 분들이 얘기하시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drich Hayek)도 원래는 사회주의자였지만 미제스 선생님의 <사회주의>를 읽고 전향했다고 하지요.
하이에크가 오스트리아 학파로 전향한 후 미제스는 하이에크와 함께 경기변동이론(Business Cycle Theory)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곧 오스트리아 경기변동이론(Austrian Business Cycle Theory AKA ABCT)이 됩니다. 간단하게 이 경기변동 이론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경기의 순환은 은행 신용의 주입으로부터 생긴다는 것입니다. 더 값싼 차입은 기업가들에게 생산에 더 많이 투자하도록 자극하고, 소비자들에게 상점에서 더 많이 사도록 자극하지만, 신용 자극이 소진되면 현실은 다시 나타단다는 것. 기업가들은 자기들이 잘못된 물건들을 너무 많이 생산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경기는 침체되며, 지나치게 야심찬 투자들은 탕감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들은 중앙은행의 인위적인 이자율 인하(Lowering the Interest Rate)를 반대하게 됩니다.
미제스는 단순히 경제학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오스트리아 학파의 철학적인 스탠스도 제시했습니다. 경제학은 인간행동의 과학이고, 절대적인 진리로부터 연역하여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제시했죠. 그리고 그 절대적인 진리는 바로 경험이 아니라 선험에서 비롯된다고 믿었습니다. "인간은 행동하며 그 행동엔 반드시 목적을 띈다." 라는 명제는 선험적인 진리로써 우리가 이것을 반박하려는 행위조차도 '반박'이라는 목적을 띈 행동이므로 반박할 수 없는 절대적인 공리인 것이죠. 이런 인간행동의 공리는 나중에 그의 제자인 머레이 라스바드(Murray Rothbard)에 의해서 정치철학, 역사학을 비롯한 많은 분야에 적용이 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굉장히 말이 길어졌네요. 나중에 파트 2로 돌아오겠습니다! 여러분의 Vote는 저에게 굉장히 큰 Incentive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