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놀이 드리워진 들판에서 감자를 수확하던 농부 내외가 멀리 마을 교회당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잠시 일손을 멈춘다.
농부는 모자를 벗고 아내는 두손을 모아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라며 삼종기도(아침, 정오, 저녁에 세번씩 치는 종소리三鐘에 맞춰 드리는 기도)를 바치고 있다.
그들의 삶은 비록 고달프지만, 그들은 항상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 그림은 '농민 화가' 밀레가 독실한 신앙심과 노동의 신성함, 장엄한 대지의 숭고함과 인간의 엄숙한 존엄성을 가장 잘 표현한 그의 대표작으로,
보는 이에게 경건한 신앙심과 종교적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밀레는 물감을 살 돈조차 없는 가난한 화가였다.
이를 보다 못한 화상 아르투르 스테반스가 그림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1천 프랑을 지원했다. 그 후 이 그림은 벨기에로 팔려갔다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1889년 경매에서 미국예술가협회에 58만 프랑에 팔려 나갔다.
그 이듬해 루브르 백화점 주인 알프레도 쇼샤르Alfred Chauchard가 거금80만 프랑에 되사들여 프랑스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가 죽은 후 1906년 루브르에 유증되었다.<아는만큼 보이고 보는만큼 느낀다 중에서>
장 프랑수와 밀레 <만종> 1857~1859 56x66cm 오르세 미술관 (Musee d'Orsay Station)
장프랑스아 밀레 (Jean Francoise Millet, 1814~1875)
프랑스의 화가로, 프랑스의 한 지방에 위치한 바르비종파(Barbizon school)의 창립자들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이삭줍기', ' 만종', '씨뿌리는 사람' 등 농부들의 일상을 그린 작품으로 유명하며, 사실주의(Realism)혹은 자연주의(Naturalism)화가라 불리고 있다. 그는 데생과 동판화에도 뛰어나 많은 작품을 남겼다.
바르비종 회파의 창시자, 밀레의 그림은 19세기 후반의 전통주의로부터 모더니즘의 전환으로 보여준다.
'이삭줍기'와 같은 밀레의 작품은 사회주의자로부터는 찬사를 받았지만, 보수주의자로부터는 비판을 받았다.
사실주의,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노르망디의 그레빌에서 신앙심깊은 중농의 아들로 태어나 열아홈 살 때부터 셰르부르Cherbourg에서 그림 공부를 하였다.
스물세 살때 장학금을 받고 파리로 나가 역사화가 폴 드라로슈 (Paul Delaroche,1797~1856)의 제자로 입문해 미술수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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