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전 포스팅에 사랑스러운 컬러의 사랑스럽지 않은 그림을(꽃을 피우는 인간 나무) 올린 이유는 전시회 글을 쓰기 위해서다. 오늘 올리는 그림을 보고 느낄 나의 팔로워들의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한 일종의 에어백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더 이상 충격적인 그림을 올릴 일은 없을 것 같으니 안심해도 좋다.
내가 프랑스에 오게 된 이유
나는 오랫동안 디자이너로 지냈다. 그리고 또 그만큼의 세월을 기획자로 지냈다. 사실 디자이너로 지낼 때는 행복했다. 일하는 게 즐거웠고 디자이너로 불리는 내 자신을 사랑했다. 우연한 기회에 기획으로 오라는 제안을 받았고, 새로운 도전에 마음이 움직였다.
기획자로의 처음 1년은 참 힘들었다. 하지만 인정받고 싶었고 가능성을 보고 불러준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내가 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친해졌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을 쫓아다니며 지켜봤다. 모두가 하나를 만들 때 세 개를 만들었다. 그렇게 1년 만에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 뒤로 몇 년간 순탄했다. 수많은 프로젝트를 경험했고 작은 팀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할 때 나는 망설였다. 기획자의 길을 계속 가야하는 게 겁이 났다.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기획자로서 사람들의 기대치를 더 이상 충족시켜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도망쳤다. 꿈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모두가 뜯어말렸다. 한국에서 이정도 회사의 이정도 위치까지 올라오는 건 다시는 잡기 힘든 기회라고 말했다.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박수칠 때 떠나고 싶었다. 가장 좋았던 기억만 남기고 싶었다.
프랑스에서의 삶
무작정 프랑스에 왔다. 예술가들. 그들이 있었던 곳이니까. 환상은 환상일 뿐이란 걸 깨달았다
수많은 날들을 참 많이도 울면서 지냈다. 내가 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겠다고 수 백 번 다짐하며 잠들었던 밤들에는 따뜻함이란 없었다. 아무것도 아닌 채로는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나 자신을 다잡았다. 그럼에도 언어 공부와 '뭔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나를 지치게 했다. 그렇게 두어 해를 지냈을 때 나는 우울증을 만났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에도 무기력하고 피곤했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기로 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니 한국에 있는 지인들은 나보고 돌아오라고 했다. 이전 직장의 동료들은 자리가 났으니 오라고, 그 사이 다른 회사로 영전한 상사는 자기네로 오라고 했다. 자기 회사를 만들고 있던 지인도 빨리 들어오라고 성화였다. 제일 많이 흔들렸던 시기다. 다 내려놓고 당장 내일이라도 떠나고 싶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생각이 나를 계속 붙들었다.
무계획이 이뤄낸 성과
1년여의 시간을 그냥 놀았다. 놀았다기 보단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프랑스와 유럽 여기저기 여행 다녔고 남는 시간엔 그림을 그리며 지냈다. 재산 탕진의 시작. 그리고 곧 알거지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작년에 그 그림들로 이곳에서 전시회를 열 수 있었다. 그림 개수를 더 늘려서 오면 다른 곳에서도 전시를 해주겠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명함을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미술사 교수님이 식사 초대도 해주고 데리고 다니면서 화가들을 소개시켜 주기도 했다. 잠시 행복했다. 또 다른 전시회를 위해 나는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산만한 사람이다. 뭔가 흥미로운게 떠오르면 그걸 당장 하고 싶어서 몸부림을 친다. 그래서 일러스트 책을 냈고, 아트 펀딩도 해봤고, 요리책도 만들어 보고, 지금은 또 파리 지도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올해는 아트 컨벤션도 준비중이다. 이렇게 돈 되는게 하나도 없는 와중에 스팀잇을 만나게 됐다. 돈 없고 외로운 나의 삶에 스팀잇은 등불이 되고 친구가 되어 주었다.
결론은 그림을 한장도 못그렸다는 얘기다... ;ㅁ;
열두명의 외국인
피카소는 괴기한 스타일로 자기 딸을 그렸다. 그걸 본 사람들이 어떻게 딸을 이런 모습으로 그릴 수 있냐 항의 했다.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딸을 예쁘게 그렸다면 그걸 본 사람들은 아무도 그 그림을 기억하지 못했을 거라고. 충격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수 있다는 피카소의 말에 동의한다.
전시회는 프랑스에 사는 열두명의 외국인들로 구성되었다. 그래서 전시회 타이틀도 세계의 아티스트들이었다. 나는 그 중 최고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오래 각인되기 위해 충격을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렸다. 물론 우리에겐 별로 충격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당시 프랑스인들은 몹시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계획대로
그림 설명
이 시리즈의 타이틀은 [태양] 이다. 모든것이 태양 그리고 밝음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물음표가 백개쯤 뜰지도 모르겠다. 그림 속 까마귀는 일반적인 까마귀가 아니다. 인간과 신을 잇기 위해 태양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삼족오이다. 사진상 잘 표현이 되지 않았지만 배경은 금박이다. 말그대로 태양 속에서 살고 있는 까마귀를 그렸다. 그리고 한복은 우주를 상징한다. 인간과 우주가 하나라는 의미로 한복의 모양을 디자인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그림은 마치 조용하고 어두운 인생 같은 우주 속에서 태양의 역할을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그림 속 꽃들은 부귀영화를 상징한다. 설명이 길어졌지만 결론은 나의 삶이 태양으로 가득하길 염원하며 그린 그림이다. 부적인가?
어쨌든 전시회는 성공적이었지만 재밌는게 너무 많은 세상에서 이것만 하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다음 전시회는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일단 더 재미있는 것들 부터 하고 생각해 봐야겠다.
그러니 제 이야기는 다 잊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