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며칠만에 발레를 하러 갔다. 일이 쌓여있을 때에는 사실 운동을 하는 것이 잉여로운 일로 느껴진다. 나는 당장 눈 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해야하는데, 굳이 시간을 들여서 운동을 하러 가야하나,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일을 해결하는게 낫지 않을까 고민을 하면서 발걸음을 뗀다. 하지만 특히 발레에 있어서는, 내가 운동 시간을 빠진다고 했을 때, 그 결석한 시간 동안, 클래스에서는 무얼 하고 있을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일에 집중하기도 힘들어할 것이므로, 어지간하면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정말로 부득이한 사정 빼놓고는. 그리고 다녀와서는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새롭게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랄까. (물론 실질적으로는 방전이 되었을거다. 그러니까 일종의 Runner's High 같은 것일수도 있겠다.)
발레 클래스에 참석하면, 시간은 보통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처음에 스트레칭을 하고 (종종 근력 운동 포함) 그 다음에 바 워크 (Bar work)를 하고 - 이건 흔히들 발레 연습을 하는 장면을 생각할 때 떠올리는 것들이다. 왼손이나 오른손으로 바를 잡고, 열심히 손과 발재간을 하면 된다. 가끔 양손을 잡고 거울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몸의 자세를 교정하기도 한다 - 마지막으로는 센터 동작이라고 해서, 춤의 시퀀스를 배우는 것이다. 선생님의 특성에 따라서 각 분절된 시간의 구성이 어떻게 될지, 시간 분배는 어떻게 될지 달라지곤 한다.
최근에는 바(bar)를 잡고할 때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는데, 발레 동작을 위한 음악이 흘러나오면, 머릿속에 어떤 동작이 어울릴지 상상하게 된다. 리듬과 음색에 맞추어 가능한 동작이 달라지는 느낌이다.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스피커에서 발라드가 나오는데 팝핀을 추는 것은 좀 이상하니까 말이다. 음악에는 음악마다 가능한 동작의 집합들이 존재하고, 내가 그동안 배웠던 동작들의 시퀀스가 그려지면서, 그 중에서 이번 음악에 맞겠다 싶은 동작들을 어떻게 표현해보면 좋을지, 동작들이 어떻게 순서대로 구성되면 좋을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우선은 선생님이 시키는 동작대로 해야하기에 (해야하는 동작을 위한) 몸짓과 (하고싶은 동작이 떠오르는) 머리가 따로 놀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가끔 집에서 발레 음악을 들을 때면, 좀 더 자유로운 몸짓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동작을 제한하는 요소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클래스에서 선생님의 발레 동작을 따라서 하는 측면이 강하다면,
집에서는 그냥 내가 떠오르는 대로 즉흥적인 몸짓이 나오곤 한다. 의식의 차원을 넘어서 무의식적으로 그 때의 기분과 감정이 반영된 몸짓이 먼저 튀어나오는 느낌이랄까.
사람이 가지고 있는 창조성이 어디까지일까 문득 궁금해지곤 한다. 우선 우리가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창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춤의 동작을 아예 모르는 사람에게 춤의 시퀀스를 작성하라고 하면, 어떠한 몸짓이 나타나기는 하겠지만, 춤이라는 어느정도 '정형화'된 장르에 있어서는, 장르의 경계를 가급적 많이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로운 것이다. (물론 시대에 따라 춤의 전형이 달라진다면, 이건 또 다른 이야기이긴 하겠지만, 우선은 어느정도 춤에 대한 특성을 학습하거나 받아들인다는 것을 가정하고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 애초에 선생님의 동작을 보고 따라하기 급급했던 내가, 약간은 여유가 생기면서 노래를 듣고 동작을 떠올리기 시작했다는 것에 조금은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내가 접한 작품들과 관계없이, 자동적으로 시퀀스가 머릿속을 훑고 지나간다. 이 음악엔 이러한 동작들이 어울리겠지 하며 말이다. (물론 그게 진짜 춤이 될 지는 모르겠다.)
춤의 동작들이 분절적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이러한 동작을 각기 어떻게 표현하는 데에도, 그리고 동작들을 이어붙이는 데에도 사람의 감정과 생각이 반영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조금 슬픈 곡조다 싶으면 알롱제(Allongé) 동작을 할 때 앞 뒤의 시퀀스까지 좀 더 깊고 무겁게 늘어뜨리게 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지켜줘야하는 동작의 룰이 있으니, 아마 이러한 차이는 미세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악마는 디테일이 숨어있는 법이니, 그 디테일을 유지하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이 쉬이 넘겨보지 않게 되기도 한다.
사람의 창조성을 모사하려는 시도는 사실 그동안 많이 이루어져왔다. 최근 인공지능 분야에서 이슈 중 하나는 기존의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어떻게 만들어낼까에 대한 고민을 해보자는 것으로서,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GAN)이라 불리는 기법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이 알고리즘은, 기존 발레 동작을 모아놓은 춤의 시퀀스를 데이터로 쓰고, 새로운 춤의 시퀀스를 생성하는 작업에 쓰일 수 있다. 입력 데이터를 발레에만 국한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여러 다양한 춤의 결합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걸 시도해본 (다른 춤을 추는) 친구가 있다. 최근 이 친구를 만나서, GAN을 이용하여, 알고리즘이 출력한 결과를 바탕으로 생성된 새로운 춤의 시퀀스를 실제로 (몸을 이용하여) 추어본 느낌은 어땠냐고 물어보았다. 예상보다 결과는 부정적이었는데, 기존 학습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춤의 시퀀스를 새롭게 생성해낼 수는 있지만, 그 동작들이 음악의 가락에 어울리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다고 한다. 맛깔스러운 느낌이 없었다고 한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느낌과 감각을 아직까지 재현해내는 데에는 사실 부족했던 것이었다.
구글의 Deep Dream과 같은 것이 물론 고흐와 같은 유명 화가들의 그림의 스타일을 학습하여, 여러 방향으로 창조하고 재현해낼 수 있다고 한들, 그 것은 시각과 관련된 것이다. Dense Pose가 사람들의 동작을 분류해내는 알고리즘이라고 하더라도, 이것도 시각과 관련된 것이다. 하지만 춤을 추다보면 시각과 청각 이외에, 다른 감각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특히 춤을
추는 주체로서 시각과 청각은 부차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중시하는 것은, 일종의 (몸이 느끼는) 균형감각 같은 것인데, 몸을 가지고 지탱하며 움직이는 느낌이 좋다. 발가락을 땅에 디디는 느낌에서 무게를 느낀다. 세계에 무게를 가지고 참여를 하는 느낌이다. 평상시 잘 쓰지 않던 근육들이 조금씩 풀어지고, 팔과 다리와 몸통이 조응하여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낼 때, 즐겁기도 하다. Affective computing 분야가 완연하게 발달하기 전까지, 아니 발달을 하더라도, 몸의 여러 감각들의 조합이 주는 즐거움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인공'지능'의 무한한 가능성을 조금은 의심한다. 발레에서 알파고 - 사실은 알파고는 강화학습에 좀 더 가깝다 -와 같은 것이 등장한다면, (춤의 장르에서) 사람으로부터 기인하는 창의성이나 창조성의 개념이 조금은 전복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시각과 청각과 같이 보이고 들리는 것 - 센서를 통해 아주 정확하게 드러나는 것 - 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과 감정들은 애초에 입력 자체가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것은 지능보다는 감성에, 정보보다는 감각에 가까울 것이다.
발레(ballet)와 알파고(alphago)가 결합된 발파고 (...) - 같은 것이, 과연 등장할 수 있을까. 사실 발레를 배우는 누구나 발파고 라고 생각한다. 학습속도(learning rates)가 무척 작아서 그렇지. (그리고 우리의 학습 곡선이 연속적일 것이라는 생각은 버리기 바란다.) 그러고보면 몸과 마음이 연결된 분야에 대해서는 다분히 '기계적인' 과정과 결과가 침탈해 들어올 여지가 좀 더 적을 것 같기는 하다. 우리가 주관적인 감성과 감각을 해석하고 판별하고, 객관성의 세계로 끌어낼 날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분명 이 글은 발레로 시작했으나, (...)
태그를 어떻게 붙여야할지 고민이 되나, 이번엔 그냥 막 붙이기로 한다.
조금 시간이 지난 사진이지만,
발레 포즈를 취한 사진을 하나 올려본다. 이 정도 공개하는 것은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