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에서의 추억 공모전에 참여하면서 어떤 추억에 대해 써야 하나 고민을 해봤는데요. 저는 이미 이승엽 선수 은퇴경기에 관해 한 차례 포스팅을 한 바 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짧게 쓴 감이 없지 않아 있었거든요. 그래서 님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같은 추억을 재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같은 주제에 대한 포스팅이지만 자기복제는 하지 않을테니 양해 바랍니다 :)
이승엽 선수의 은퇴 경기가 열린 2017년 10월 3일은 공휴일(개천절)이기도 했지만 주말+임시공휴일+개천절+추석+대체휴일+주말+한글날 7단콤보로 인해 10일짜리 황금연휴기간 중이었습니다.
다음 10일짜리 황금연휴는 2044년 10월입니다. 계산해보니 D-9,658 남았습니다. 벽에 똥칠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모두 그때까지 살아요.
게다가 KBO 최초로 전구단 은퇴투어를 진행했던 터라 10월 3일 전부터 이미 흥행 열기가 뜨거웠죠. 당연하게도 그 날 경기는 라이온즈 파크 전석이 매진되었습니다. 성적 부진(2년 연속 9위)으로 외면받던 라이온즈 파크의 2017년 전 경기 중 유일하게 매진이었는데요. 시즌 중 제가 직관 갔던 여느 경기들과는 달리 시작 전부터 저희 일행 뿐만 아니라 거기 오셨던 팬분들 모두 엄청나게 들떠 있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전광판을 보니, 마지막 날 이승엽은 1루수, 3번타자였습니다 (시즌 내내 이승엽은 지명타자로 5번 타순에 있었습니다). 네, 아무래도 팬들의 기억 속에 이승엽은 역시 1루수, 3번타자죠. 옛날 생각이 나 괜히 혼자 뭉클해지더군요.
요거는 은퇴경기 전 9월 16일 경기 직관 때 운좋게 당첨되어 받았던 이승엽 선수 바블헤드인데요. 은퇴식에 빠지면 섭하잖아요? 그래서 같이 데리고 갔습니다 :)
그리고는 경기 시작.
1회말 이승엽 선수 타석이 되어,
이!(짝짝) 승!(짝짝) 엽!(짝짝) 홈런!
구호를 외치고 있는데, 역시 이승엽은 이승엽. 냅다 홈런을 쏘아올렸습니다. 소름이 돋고 어안이 벙벙해져 같이 간 친구들과 소리지르고 난리를 피운 기억이 나네요.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은퇴경기에서 홈런을 때려버리는 선수라니. 덕분에 1회말에 저와 친구들은 목이 다 쉬어버렸어요.
곧바로 다음 이닝에 초이스 선수가 멍군을 외치며 담장을 넘겼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죠.
그리고 다시 돌아온 이승엽 선수의 두번째 타석.
이!(짝짝) 승!(짝짝) 엽!(짝짝) 홈런!
구호를 외치고 있는데, 눈을 의심했습니다. 1회말 리플레이 보는 줄 알았어요. 1회말과 똑같이 오른쪽 담장을 넘겨버렸습니다. 저도 1회말과 똑같이 난리발광을 떨었습니다. 은퇴경기 홈런도 모자라 은퇴경기 연타석 홈런이라니.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말도 안되게 다음 이닝에 초이스 선수가 다시 한 번 멍군을 외치며 담장을 넘겼습니다. 정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죠. ‘스포츠는 매 경기가 한 편의 드라마다’ 이런 말 흔히들 하잖아요. 와, 근데 그 날 경기는 정말 드라마 같았습니다. 결국에는 초이스 선수가 담장을 한 번 더 넘겨 3연타석 홈런을 작성하면서 두 선수의 장군멍군 레이스가 끝났습니다.
초이스 선수가 너무 미웠어요 ㅋㅋㅋ 눈치도 없지, 2홈런 쳤으면 됐지, 왜 3홈런이나 쳐서 남의 잔칫날 고춧가루를 뿌리냐며 투덜거렸던 기억이 나네요 ㅋㅋㅋ 그래도 사실 초이스 선수 덕분에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은 경기를 봤습니다.
경기 내용도 그랬지만 그 날 응원 역시 역대급이었습니다.
경기 중 울려퍼졌던 삼성 라이온즈의 팀 응원가 엘도라도.
오 오오오오오 최강삼성
최강삼성 승리하리라 오오오 오오오오오오
클릭하시면 소름돋는 엘도라도 떼창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들어도 소름이 쫙 돋네요.
경기가 끝나고도 어느 누구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승엽 선수의 은퇴식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인데요. 은퇴식 사회자의 목소리를 듣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듣자마자 바로 알만한 목소리였거든요.
관중석이 술렁였습니다. 다들 놀라서 “김제동?” “김제동?”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소리소문 없이, 또 누구라는 소개도 없이 방송인 김제동 씨가 이승엽 선수 은퇴식 사회를 보기 위해 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새삼 놀랄 것도 없죠. 김제동 아니면 누가 이승엽의 은퇴식 사회를 보겠습니까? 김제동 씨 본인도 데뷔 전에는 대구 시민야구장 장내 아나운서로 일했었고, 그 때의 인연으로 이승엽 선수와 친분을 쌓은 절친한 사이니까요.
그렇게 시작한 은퇴식에서 이승엽 선수는 눈물을 쏟기도 하며 은퇴하는 소감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은퇴식 중간중간 저를 포함한 관중들은 이제는 마지막일 이승엽 응원가를 불렀구요.
아아아 이승엽 삼성의 이승엽
아아아 이승엽 전설이 되어라
정말이지 그 날 그 순간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은 응원가입니다.
기억을 더듬어 이 글을 쓰면서도 그 날의 여운이 아직 많이 남아있네요.
L36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