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왜 그렇게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냐?"
영어로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내 친구가 해준 대답이다. 그 친구의 말이 맞다. 어려운 길이다. 난 외국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어학연수나 유학을 다녀오지도 않았다. 그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공부했다. 학교, 영어학원, EBS 교육방송이 내 영어 밑천의 전부였다. 그런 내가, 이제 겨우 낑낑대며 영어 소설 열 권 정도 읽은 게 다인 내가, 한국 밖으로는 한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내가,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됐다. 영어로 글을 쓰겠다는 꿈을.
Harry Potter and the Sorcerer's Stone
출처: 교보문고
내가 이렇게 허황된 꿈을 가지게 된 건 바로 이 책,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때문이다.
영어 공부를 하겠다고 영어 소설을 읽기 시작했지만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몰라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었다. 무조건 짧은 게 좋을 줄 알고 어려운 단편 소설을 읽기도 하고, 쉽게 공부하려고 영한 대역본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내게 영어소설의 재미를 알게 해 준 존 그리샴의 책을 두어 권 읽고 있을 무렵이었다. 친구가 내게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재미있다며 그 책을 읽어보라고 권해줬다.
처음엔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아이들 책이라며? 마법사? 뭔가 허황된 얘기 아니야? 하지만 자기도 영어로 읽고 있다는 친구의 말에 라이벌 의식이 생겼는지 덥석! 미끼를 물고 영어 원서를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빠져들어 버렸다.
책이 정말 너무너무너무 재미있었다.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영어로 이렇게 표현하는구나. 이렇게 묘사할 수도 있구나."하며 처음으로 영어 문장의 묘미를 느끼게 됐다. 영어 문장이 아름답다는 생각까지 들게 할 정도였다.
사실 그전까지는 "우리말은 굉장히 다양하고, 조사 하나만 바뀌어도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영어로 번역하기 힘들어. 영어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해리 포터 책을 영어로 읽으면서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영어로도 얼마든지 멋지고 아름다운 표현이 가능하며, 우리말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더라도 미묘한 차이들을 충분히 나타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이렇게 멋진 글을, 이렇게 재미난 글을, 나도 영어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있을까? 이제 와서 영어 공부를 시작해도 될까? 회화도 아니고, 독해도 아니고, 영어로 글쓰기를 할 수 있을까?
희한하게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어렸을 적 나의 꿈 중 하나는 당연히 소설가였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갈수록 소설가는 내 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는 이렇게 글을 잘 쓰는 능력이 없었다. 좋은 책을 많이 읽을수록, 그들과 나의 실력 차이는 더욱 크게 느껴졌고, 언젠가부터 나는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처럼 잘 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어로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노력하면,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나도 영어로 저렇게 멋진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어로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
이십 대 중반에, 내 대학 전공이나 그당시 직업과는 상관없는 그 꿈을 신이 나서 친구에게 말했을 때, "넌 왜 그렇게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냐?"라는 걱정 어린 대답을 들었다.
그러게. 왜 하필 이 나이에 새로운 꿈이 생긴걸까.
그 이후로 십여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내 꿈은 아직 변함없다. 내가 직접 소설을 쓰건, 이미 써진 다른 이의 소설을 영어로 옮기건간에 재미있고 아름다운 글을 영어로 써보고 싶다.
희한하게도, 나는 지금도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영어로 멋진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출처: Goodreads
내게 이렇게 멋진 꿈을 안겨 준 해리 포터 시리즈는 전 7권을 영어로 모두 3번씩 완독했고, 오디오북으로도 다 들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다시 한번 7권을 연달아 읽어보려 한다. 그때 쓰려고 해리 포터에 대한 독후감도 안 쓰고 아껴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