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앙앙>인가, 왜 <앙앙>이 아니면 안 되는가, 곧잘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습니다. 한 이십 년 동안 다른 잡지에서는 에세이를 연재한 적이 없기 때문이겠죠.
(중략)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수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모르는 바 아닙니다. <앙앙> 독자 대부분이 젊은 여성이고, 나는 상당히 수준이 높은 아저씨여서 양자 사이에 공통된 화제 따위는 거의 존재하지 않(을것이)기 때문이겠죠. 그렇죠?
하지만 차라리 ‘공통된 화제 따위 없다’고 마음먹으면 되레 쓰고 싶은 것을 편하게 쓸 수 사실을 어느 시점에 깨달았습니다.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까 같은 건 차치하고 내가 쓰고 싶은 것을, 내가 재미있다고 느낀 것을, 자유롭고 즐겁게 줄줄 써나가면 그걸로 되지 않을까 하고. 아니, 그렇게 하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을까, 그런 배짱이 생겼습니다.
만약 나 같은 아저씨가 아저씨 대상 잡지에 연재 에세이를 쓴다면, 이내 그 ‘아저씨 동류성’을 의식하고 글을 쓸지도 모르니, 그건 정말 재미없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앙앙>은 내게 아주 편안한 작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앙앙> 독자가 내가 쓰는 글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느끼고 계신지, 거기까지는 나도 잘 모릅니다. 만약 “이 아저씨는 무슨 소릴 하는지도 모르겠고 완전 시시해. 종이가 아깝다니까”라고 생각하셨다면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립니다. 나 자신은 상당히 재미있고 즐겁게 썼습니다만, 미안합니다. _첫머리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인 무라카미 라디오의 세 번째 이야기다. 무라카미 라디오 시리즈를 읽기 시작한 건 작년 4월쯤이었으니까 거의 일 년 동안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은 셈이다. 뭐, 그 사이사이 다른 책들도 읽었지만 그래도 항상 그의 책을 끼고 있어서 그런지 오랫동안 함께해온 기분이다.
예전에도 곧잘 언급했지만 난 하루키의 소설을 몇 번이나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읽은 소설이라고는 <노르웨이 숲>이 전부다. 그것도 할 일 없는 군대였기에 가능했지 볼거리가 많은 사회였다면 다 읽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 읽은 하루키의 에세이는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책이었다. 그의 라오스 여행기가 담긴 책인데 언젠가 열렸던 국제도서전에서 표지가 예뻐 구매했던 책이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서 하루키의 에세이는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구매한 책이 무라카미 라디오 시리즈였다. 물론 내 예상대로 하루키의 에세이는 소설과 달리 재밌었고, 푸근한 옆집 아저씨 같은 문장들은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그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항상 ‘역시 하루키는 하루키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의 에세이에서 기억나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 가장 최근에 읽은 이 책조차 기억나는 이야기가 단 하나도 없다. 생각해보면 기억날 만큼 중요한 이야기도 없었고, 대부분이 사색이나 잡담에 가까운 글이었기 당연했는지도. 그렇지만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응, 그렇지.’, ‘음, 그런가?’하며 그에게 동조하고 있었다. 뭐, ‘에세이가 다 그런 거 아니야?’하고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아무튼, 오랫동안 끼고 있던 책을 내려놓는다고 생각하니 시원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글이 안 써질 때면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고는 했었는데. 머지않아 하루키의 문장이 다시 그리워질 듯하다. 근데 싫다 싫다 하면서도 계속 읽는 건 아무래도 애증이겠죠?
북끄끄 | #29 무라카미 하루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북끄끄 책장 |
#1 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2 박완서, 두부
#3 황석영, 개밥바라기 별
#4 김훈, 라면을 끓이며
#5 무라카미 하루키,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6 황교익, 한국음식문화 박물지
#7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8 오기와라 히로시,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9 루이스 쌔커, 구덩이
#번외 쇼코의 미소, 아픔을 바라보는 시선
#10 공지영, 봉순이 언니
#11 황석영, 해질 무렵
#12 야마다 무네키, 백년법(百年法)
#13 J. M. 바스콘셀로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14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15 최은영, 그 여름
#16 릴리 프랭키, 도쿄 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17 김보통,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18 김연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19 김영하, 오직 두 사람
#20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21 정유정, 7년의 밤
#22 무라카미 하루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23 앤디 위어, 마션
#24 무라카미 하루키,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25 이석원, 언제 들어도 좋은 말
#26 paper
#27 구스미 마사유키,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어!
#28 요시모토 바나나, 바나나키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