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입대가 다가오다보니 감성적이게 되나 봅니다. 서점엘 갔는데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 눈에 띄었습니다. '인간실격'이라는 책 제목이 저를 어떻게 흔들었나 봅니다. 책 내용은 아래와 같이 책 뒷면에 잘 정리되어있습니다.
'나'라는 화자가 서술하는 서문과 후기, 그리고 작품의 주인공 요조가 쓴 세 개의 수기로 구성되어 있다. 태어날 때부터 다른 "인간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요조는 그 인간 세계에 스스로 동화되기 위해 "익살꾼"을 자처하며 노력하지만 번번이 좌절하고, 결국 마약에 중독되고 자살을 기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거듭된 동반 자살 기도에서 여자만 죽고 혼자 살아남자, 요조는 마지막 희망이었던 본가로부터 절연당하고 외딴 시골집에서 쓸쓸히 죽음만을 기다리는 "인간 실격자"가 되고 만다.
줄거리만 읽어도 기분이 나빠집니다. 실제로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는 다섯 번의 자살시도를 하였는데, 그 중 두 번은 여자와 같이 자살시도를 하였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같이 자살시도를 했던 여자만 죽고 자신은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평생을 힘겨워했습니다. 평생을 죄책감과 우울에 살다가 마지막 다섯번째 자살시도가 성공(?)하게 되어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인간 실격'은 이러한 작가의 자전적인 측면이 섞인 소설입니다. 이 책에 나온 문장들을 보시면 '인간실격'이라는 책의 분위기를 더 잘 아시게 되리라 생각됩니다.
1.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2. 서로 속이면서, 게다가 이상하게도 전혀 상처를 입지도 않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정말이지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인간의 삶에는 충만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3. 타인. 불가사의한 타인. 비밀투성이 타인
4. 인간 실격. 이제 저는 더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5.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 빠르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어요."
주인공 '요조'는 인간과 세상의 냉혹함(?), 이질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파멸하게 됩니다. '요조'가 파멸한 건 '요조'라는 인물 자체가 가진 인간적 결함 때문이기도 합니다 . 하지만 저는 '요조'의 행동과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갔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 '요조'의 모습과 '세상의 이질적'인 모습 모두를 가지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문장과 같이 우리는 바깥 세상에게 상처받지 않기 위해 또, 그 상처를 괜히 드러내어 먹이감이 되지 않기 위해 명랑한 불신을 가지고 삽니다. 또한 우리도 가해자의 입장이 되어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남에게 상처를 준다고 해서 우리가 모두 사이코패스는 아닐겁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요조'와 같은 순수하고 나약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요조'나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가 마냥 미친놈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과 소설 이방인이 떠올랐습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소설 '인간실격'과 무척이나 비슷합니다. 과장해서 말하면 '마츠코'와 '요조'의 다른 점은 시대, 주인공의 이름, 성별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마츠코'와 '요조' 둘 다 세상을 견디지 못해 파멸해버리지만,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혐오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진심에서 우러나온 호의에 찬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이들이 있기도 합니다. '요조'가 신세진 바의 마담도 '요조'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진술합니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 빠르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어요.") '요조'와 '마츠코'가 파멸하게 된 건 그들의 인간적 결함 때문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요조'와는 다르게 강인합니다. '뫼르소'는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는 하지만, 그는 절대 내면적으로 파멸하지 않고 자신이 느낀 부조리에 죽음으로써 반항하게 됩니다. 하지만 '요조'는 거의 모든 상황에 강물 위 낙엽처럼 수동적으로 흘러다니다 파멸하게 됩니다. 상이한 두 인물의 태도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수능 공부할 때는 문학 지문이 몸서리치도록 싫었습니다. 고전문학, 고전시가, 현대문학, 현대시 지문을 보면서 어떤 감정이나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윤동주의 시는 예외로합니다.) 한마디로 재미가 없었습니다. 군 입대 직전이 되서야 문학을 접하게 되는데(주로 해외 작가), 이제서야 사람들이 왜 문학책을 읽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책을 읽을수록 점점 감성적으로 변해감을 느낍니다. 하물며 글을 쓰는 작가들은 얼마나 더 예민하고 감성적이었을까요. 그토록 감성적이고 예민한 사람들에게 세상의 풍파를 맞선다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괴로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왜 고전을 쓴 많은 작가들이 평탄한 삶을 살지 못하고 단명했는지 알게되는 순간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감성' 따윈 별 도움이 되지 않나봅니다. 뉴스에 나오는 소위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이코패스같은 인간들 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알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