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 이어짐
중학교에 진학한 후의 체육 시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학교가 상당한 규모여서였는지는 몰라도 그곳 체육 선생들의 관계도는 꽤나 흥미로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얘기는 조금 미뤄두고, 내 초등학교 졸업반을 조금 더 회상해 보련다.
초등학생 시절이라 해봤자 수십 년 전의 일도 아니고,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리 신기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인 일도 아닌 듯 싶다. 20대를 아직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 중에서도 초등학생 시절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의외로 흔하기 때문이다.
어떤 날들의 경우, 그 공기의 냄새와 온도, 카펫의 촉감과 아이들의 목소리까지도 생생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단순한 사실 관계를 넘어서는, 그 순간을 다시 겪는 듯한 기억이다.
아마도 통증만큼 강하게 뇌리에 남는 감각도 드물 텐데, 마침 체육 시간이었다. 야구를 단순하게 바꾼 소프트볼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만 해도 내가 무척 선호하는 류의 운동이었다. 팀 게임이지만, 개인이 타자로 할 수 있는 활약이 하기 절대적이라 할 수 있으니까. 배트를 휘두르는 타이밍에, 마치 그걸로 손가락을 강타당한 듯한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정확히 가운데 손가락.
그 순간에 배트를 들고 있던 유일한 사람이 내가 아니었더라면, 누군가가 실수로 휘두른 것에 맞았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반사적으로 손을 내려다봤을 때, 정체 모를 노란 물질에 가득 뒤덮인 손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퍼석퍼석하면서도 흩날리는 듯한...그것은 벌의 흔적이었다. 공을 치려고 기다리는 순간 조금씩 흔드는 배트에 의해 위협을 느낀 벌이 내 손가락을 쏜 것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은 순간부터, 문제의 손가락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 통증의 정도를 기억하는 만큼, 10대 시절로부터 남겨져 있는 모든 일들은 날카로울만치 생생하다. 그 기억의 기세를 몰아서 리사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기로 하자.
비록 훗날 중학교에서는 나와 은근한 대립 각을 세우는 일이 가끔 있었지만, 초등학교 당시의 리사는 루이즈 패거리에 의해 밀려 나면서, 상당히 불안한 위치에 있었다. 그 당시의 그녀가 마음 놓고 떠들 수 있었던 것은 나와 함께 다니던 특별 수학 수업에서였다. 우리 중 대부분이 진학하게 된 중학교, 정확히는 중고등학교는 인근에서 가장 큰 학교였는데, 수학에서 앞선 초등학생들을 몇 명씩 데려다가 미리 교육을 시키곤 했다. 아마도 일 주일에 한 번이었던 것 같다.
사실 그 시절엔, 특정 활동이 정확히 주 몇 회인지 따위의 문제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아니, 요일로 이루어진 주 단위의 체계 자체가 중요하지 않았다. 사춘기 때는 성인에 비해 훨씬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들이 많아서, 매일 매일이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가령 현재 프리랜서인 내가 남들보다 느긋한 월요일을 즐기면서 그 날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조하는 데에 그친다면, 10대 초반의 나에게는 귀여운 강아지와 마주친 일, 반 철자 대회에서 이긴 일, 좋아하는 애랑 눈이 마주친 일 하나하나가 특별했던 것이다.
리사는 루이즈 등의 눈을 벗어날 수 있는 특별 수학 시간이 상당히 즐거웠던 모양이다. 다른 초등학교에서 온 아이들에 대해 품평도 해가면서 들떠 있곤 했다. 우리 반에서는 닉과 대런이라는 남학생 두 명도 함께 차출(?)되어 갔는데, 이 둘은 훗날 중학교에서 나의 악연이 된다. 물론 심각한 의미에서는 아니고, 어디까지나 웃을 수 있고 언젠가 풀어놓을 추억의 일부이지만.
초등학교에서는 딱히 시험도 없었기 때문에, 나와 그녀, 닉과 대런의 수학 실력은 담임 선생이 평소에 판단했을 터였다. 문제집을 풀고 채점을 자주 했기 때문에, 담임의 판단은 상당히 객관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때쯤에 일어나게 된 일은 완전히 예상 불가였던 것이다.
조를 이루어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게 된 날이었다. 나른하고 따뜻한 오후였고, 어차피 누가 평가를 하는 것도 아니기에 느슨하고 자유롭게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리사가 내게 시간을 물어왔다.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의 나는 항상 손목 시계를 차고 다니곤 했으니.
말하기도 귀찮아서였는지, 반사적으로 손목을 리사에게 보여주었다.
"그게 몇 시야?" 하고 그녀가 되물었다.
로마 숫자로 되어 있던 내 시계는 작았고, 숫자 역시 가늘고 섬세하게 새겨져 있었다. 리사 역시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근시였던 나와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 "3시 45분."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답해 주었다.
그 날 이후로, 안 그래도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이미지가 썩 좋지 않던 리사에 대한 새로운 종류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수학 성적이 그래도 좋다고 중학교에 특별 수업까지 받으러 가는데, 시계를 볼 줄 모른다는 것. 다른 아이들 사이에선 그저 소문이었지만, 나만은 앞에 있었던 일 때문에 바로 사실로 확신할 수 있었다.
약간은 얼떨떨했지만, 남들이 다 배울 때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면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산수 문제를 풀면서 어느 시점에서는 분명 시계 보는 법이 나왔을 테지만, 아마도 리사의 성격상 잘 모른다고 할 타이밍을 놓쳤던 모양이다. 어쨌든, 그 일로 그녀는 한동안 몇몇 여자아이들의 조롱을 감수해야 했다.
전에 다른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나이절이 리사의 남자친구였다. 10대 시절에는 인기가 권력의 척도라는 점에서 분명히 발언권이 강하다면 강한 애였지만서도, 여자아이들끼리의 묘한 감정 싸움에는 어떻게 개입할 방법이 없었던 것 같다.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애에게는 휴식 시간과 점심 시간이 가장 곤란할 텐데, 그 때 나이절은 축구하느라 바쁘기도 했다.
나이절에게 리사는 첫 여자친구였지만, 그냥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그는 결국 다른 중학교로 진학했고, 리사와 같은 반에 진학하겠다고 하는 여자아이는 없었다. 나, 그리고 나와 가장 친했던 레베카가 거기까지 리사를 받아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괜히 셋이서 서로 이름을 적어냈다간, 자칫하면 나와 레베카가 서로 다른 반으로 갈릴 수도 있었으니까.
졸업 독사진을 찍어 서로 교환할 때에도, 그녀와 교환하고자 하는 아이는 매우 드물었다. 결국 동정심으로 교환해준 몇 아이들이 있었고, 그 중에 나도 있었다.
물론 리사에 대해 크게 심각한 언어폭력이나, 신체적인 괴롭힘은 없었다. 하지만 무리에서 밀려나고 노골적으로 반감을 산 일은 그녀에게 불쾌한 경험으로 끝까지 남을 것이다. 그녀가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던 초등학교 졸업반 시절, 그걸 목격한 모든 이들에게 그녀는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과거가 중학교에서 회자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랄까.
어쩌면 시계를 볼 줄 모른다고 제때 말하지 못한 그 자존심을 가늠해보면, 답은 뻔하지 싶다. 중학교에서 나와 마주칠 때마다 리사가 유독 방어적이었던 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다.
물론 그 외에도, 특별히 체육에서 그녀가 나보다 압도적으로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느껴졌는데, 정작 체육 시간에 대해서는 아무 욕심이 없던 나였기에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던 듯 하다. 그녀가 왜 그랬는지는 한동안 미스터리였으나, 몇 번 대립을 거치면서 대강 느낌으로 알게 되었다.
특별 수학 시간을 나와 다녔던 리사였지만, 중학교에서는 우등반에 들지 못했다. 그나마 영어 수업에서는 우등반에 같이 들었지만, 성과를 보면 그녀는 거의 턱걸이 수준으로 들어온 셈이었다. 물론 그곳의 아이들이 한국의 모범생들처럼 성적에 대한 부담을 지고 있거나 경쟁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어떤 면에서든 우월감을 느낄 필요가 있었고, 그 뿌리는 아마도 자신이 따돌림 당하던 초등학교 시절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유독 내게 그랬던 이유는 복합적이겠지만, 우선 내가 자신처럼 발육이 빨랐던 타입이라 직접적인 우열을 가리기 좋은 상대였다는 점, 그리고 자신이 힘들 때 은근히 동정심을 표시한 몇 안 되는 아이들 중 하나였다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고마움보다는 민망함, 그리고 과거를 은폐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나 그녀나 크게 체육에 소질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발육이 빠르다는 건 일찍이 소년과 비슷한 신체를 벗어났다는 것을 뜻한다. 마치 가수 지망생이 변성기를 잘 겪어야 하듯, 운동을 잘하려면 그 시기를 잘 거쳐야 할 것이다. 리사의 경우는 1회차에서 언급했듯이, 따돌림에서 온 스트레스 등이 겹쳐 급격하게 체중이 불어나기도 했었다.
일찍부터 자란 골반과 엉덩이는 운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딱히 운동에 특별한 뜻도 없고, 어린 나이부터 구두나 신고 다니고 꾸미는 데 더 관심이 많으면, 초등학교 때는 좋아하던 공놀이와는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나 리사나 그런 면에서, 중학교에 입학할 때 쯤에는 체육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힘들게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만 해도, 오래 꽤 진지하게 생각하고 해온 발레를 중학생이 되어서는 포기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춘기의 체육 시간은 운동 실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물론 특별히 타고난 체육 특기생은 제외해야겠지만, 그 작은 사회 속에서 강한 아이가 우위를 점하기가 쉽다. 딱히 보복의 위협이 없더라도, 그 사회 속에서 강하지 않은 아이는 이유 모를 두려움에 그저 맞춰주게 된다.
그런 면에서 나나 리사나, 다른 아이들 눈치를 안 봐도 되는 위치를 중학교에서 다져놓게 되었기 때문에, 단순한 운동 실력을 넘어서서 딱히 정의 내리기 힘든, 묘한 구도를 형성했던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