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나무를 벗삼아 고독을 즐기는 아빠와는 달리, 엄마는 늘 사람들의 중심에 있었다. 엄마가 집에만 계셨던 날은 거의 없었다. 내가 아기였을 때도 포대기에 싸서 모임마다 데리고 다니셨다고,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증언했다. (내가 얼마나 순했으면...)
사람이 좋고 궁금한 엄마는 심지어는 외국인을 집에 들여서 숫기 없는 아빠를 방에서 꼼짝달싹 못하게 하셨고, 주목받기도 좋아하셔서 어딜가면 그렇게 대표가 되어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발표를 하셨다. 한 번은 교회 행사 중 모든 신자가 보는 앞에서 ‘딸에게 보내는 편지’ 를 읽으시며 내 이름까지 호명하시는 바람에 교회 고등부에서 친구 한명 없이 아웃사이더로 지내던 내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오른 적도 있다.
심지어는 꿈이 아나운서여서 서류와 면접까지는 통과했는데 마지막 카메라 테스트에서 떨어지셨다는 웃지 못할 사연도 있다. 눈치없이 솔직하신 아빠는 엄마가 떨어진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셔서 (당신은 입이 튀어나와서.. 등등) 화를 사신 적이 있다.
주 3회 엄마를 모시고 수영장에 간다. 물론 엄마가 가고 싶어 하셔서 가는 것이다. 매일 가자고 하시는 것을 피부에 안좋다는 핑계를 대며 세 번으로 줄였다. 내가 한국에 없는 동안에도 수영을 배우고 싶어 단체/개인 수영강습을 신청하셨다가 두 번 모두 강제환불 받으셨단다. 한 번은 다른 수강생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다른 한 번은 도저히 못가르쳐 드리겠다고. 엄마는 원래 수영을 잘하셨다. 내가 엄마에게 수영을 배웠으니까.
오랜만에 수영장을 간다고 설레던 것도 잠시, 탈의실에 벌거벗고 돌아다니는 아주머니들을 보니 당혹스럽다. 전에 외국인 친구를 찜질방에 데려갔을 때, 자기가 왜 다 벗고 모르는 사람들의 나체까지 봐야 하느냐며 경악을 하던 것이 생각난다. 어색한 티를 내지 않으려 주섬주섬 옷을 벗었다. 누가 나 신경이나 쓴다고? 하고 슬쩍 둘러보니 아줌마들 하나같이 나를 쳐다보며 수군대고 있다. 그럼 그렇지, 나는 얼른 안경을 벗었다.
수영장에서 우리 엄마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오늘 수영장에 처음 온 사람이라면 모를까. 엄마가 5년 가까이 다니고 계시는 수영장의 주고객층은 평균 연령이 60 대인 아줌마들이다. 하긴, 내가 가는 시간대가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젊은이들은 다 일하고 있을 시간이니. 탈의실에서부터 숙덕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탕에 들어서면 정말 영화의 한 장면같다.
일단 목욕탕에 들어서는 순간,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사람들이 길을 내어 준다. (모세의 홍해가 생각이 안나서 매일 성경을 읽으시는 엄마께 여쭤보니 여호수와의 요단강이라고 알려 주셨다. 요단강이라니... 요단강 넘으면 저 세상 간다는 뜻인데.) 조폭 두목이라도 된 것 같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처럼 불안하게 걷는 엄마와 그를 부축하며 곁을 지키는 나를 향한 시선이, 정말 뜨겁다! 홀라당 벗고 있어서 더 그렇다!
딸인가봐!,딸이래?, 둘이 똑같이 생겼잖아., 저 아줌마는 왜 저렇게 된거래?, 효녀네, 효녀야., 역시 딸이 최고야. 우리 아들 놈들은...
속삭이는 것도 아니다. 여기 좀 봐달라는 듯이 목욕탕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그 놈의‘딸’ 소리에 헛웃음이 날 정도다. 못들은 척 하지 말라는 듯 나를 열심히 쳐다보며 큰 소리로 말하는 어머님들의 뜨겁고 간절한 시선을, 눈이 나쁘다는 이유로 애써 무시한다.
수영장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제일 오른쪽에 있는 초보레일에서 떼를 지어 걷고 있던 아줌마들 모두 나와 엄마를 향해 시선을 집중하고 한마디씩 한다. 네 알아요, 알아. 딸이 왔어요. 외국에 있던 딸이 왔어요. 미스코리아처럼 손이라도 흔들어야할 것 같다.
저봐, 딸이 오니까 아줌마 표정이 밝네., 딸이 어디있다가 인제 나타난겨.,딸이 와서 좋은가보다., 저 아줌마 많이 좋아진거야~
정말 연예인이라도 된 것 같다. 나에게 말을 걸고 싶은 것도 안다. 지금은 그저 선한 호기심이라는 것도. 한분 한분 인사라도 드리며 관심 가져줘서 감사하다고 얘기해야할 것 같지만 애써 모른척 하는 이유는 한가지. 좀 친해졌다 싶으면 전처럼 오지랖이 시작될까봐 그렇다. 예전에는 다 상대해 드렸는데 나중에는 감당을 못하겠더라.
그런데 더 웃긴 건 우리 엄마다. 평소에는 늘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엄마가, 나랑 수영장에만 오면 만연에 웃음꽃을 피우시는 것 아닌가! 나랑 수영을 와서 기쁘신 거라고? 천만에! 우리 엄마는 지금 표정관리를 하고 계신 것이다! 미스코리아가 여기 계셨네.
엊그제는 수영이 끝나고 탕에 들어가 있는데 내 옆에 있던 아줌마들이 나를 코앞에 두고 내 얘기를 하고 계셨다. 그러더니 끝내 한 아줌마가 참지 못하고 내게 말을 거셨다.
딸이예요?
아..........
네.
아아, 딸이구나. 근데 엄마는 어디가 아프신거예요?
아프신 데 없는데요.
안다. 무슨 질문인지. 하지만 엄마가 아프신 건 또 아니지 않는가. 수확이 없을 거란 것을 짐작하신 아주머니는 혼잣말을 몇 마디 하시다가 자리를 뜨시려는데
교통사고예요.
저쪽에서 대화를 듣고 계시던 (듣고 계시는 줄도 몰랐다) 엄마가 대답하셨다.
버스랑 부딪혀서 이렇게 됐어요.
또 한번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대단하다. 게다가 ‘이렇게’ 됐다니? 사람들은 귀를 쫑끗 세우고 엄마에게 집중했다. 더이상 꾀꼬리같은 목소리는 아니지만, 엄마는 지금 이 순간 주인공이 되어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그들의 궁금증을 하나하나 친절하게 해결해주고 계셨다. 모두가 하나되어 벌거벗은 이 곳에서.
나중에 엄마에게 여쭤보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하거나 귀찮지 않으시냐고. 엄마는 너무나 쿨하게, 간단하게 대답하셨다.
나한테 관심이 있나보지.
나는 대놓고 입방아에 오르는 게 부담스러워 죽겠는데, 엄마는 정말 아무렇지 않으신 걸까? 사람을 좋아하시니까? 주목 받는 걸 좋아하시니까? 설마 정말 유명인사라도 되었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더 여쭤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말았다. 나라도 관둬야지, 하는 생각 만큼이나 두려워서 그랬다. 혹시라도 아닐까봐서...
오늘도 수영을 갔다. 지난 번 엄마와 나를 보았던 사람, 보지 못한 사람이 섞여 있는 모양이다. 온 몸에 쏟아지는 뜨거운 시선에 서둘러 안경부터 벗었다. 그래도 들리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옆에는 누구야?, 딸이래, 딸
저 아줌마는 어쩌다 저렇게 됐대?
교통사고로 뇌를 다쳤대.
아이구야.. 그래도 많이 좋아진거야, 저 아줌마.
주섬주섬 어색하게 옷을 벗고 있는데 저기서 누가 벌거벗은 채 다가온다.
딸이라며? 엄마 많이 좋아진거예요.
아.. 네. 감사합니다.
웰컴투 한국. 웰컴투 수영장.
슈퍼스타와 함께 하는 수영장의 앞날이 구만리처럼 느껴진다.
사진은 수영장 락커다. 엄마는 락커 열쇠를 손에 쥐시고도 어떤 것이 엄마 락커인지 찾지 못하셨다. 열쇠에 락커 번호가 붙어 있는 것은 둘째치고... 여러분은 어떤 락커가 우리 엄마 락커인지 제발 눈치 채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