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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쓴 글에 댓글과 보팅으로 너무나 많은 응원과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청승맞지만 몇번이나 눈물이 핑 돌아서 저도 당황스럽습니다. 예전엔 강해야 한다는 강박같은 것이 있어 어떻게든 눈물을 참았는데 나이들수록 울보가 되어가는 것 같네요. 나약해지는 것 같아 자존심도 좀 상합니다. 아무튼 이럴 때마다 ‘내가 또 스팀잇을 얕봤구나. 여길 떠나기는 글렀’ 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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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미국 몬타나라는 곳에 있었는데, 엄마는 예전에도 자전고 충돌 사고랍시고 허무맹랑한 일로 구급차를 타신 적이 있어 이번에도 무릎이나 까지셨겠지 싶었지요. 실제로 아빠도 별 일이 아니라고 하셨고요. 그렇게 보름쯤 지났을까. 싸이월드는 어떻게 알고 가입하셨는지, 아버지께서 제 미니홈피에 찾아와 댓글 하나를 달아놓으셨습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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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안했는데... 저와는 거의 대화가 없던 아빠가 그런 다정한(?) 댓글을 굳이 달아놓고 가시다니.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쩐지 엄마랑 통 전화통화를 할 수도 없었고요. 어느날, 마침 한국에 있던 사촌동생에게 울면서 전화가 왔습니다. 언니 어떡해, 이모 뇌에서 피가 안멈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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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던 학교는 자퇴처리를 했는데 제 사연을 듣고 등록금을 전액 환불해주더군요. 그제서야 이모들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걱정할까봐 엄마 소식을 전하지 말라던 아빠의 간곡한 당부가 있었는데, 사실 얼른 제가 왔으면 좋겠다고. 제 목소리를 들으면 엄마가 깨어날 것만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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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는 아빠가 홀로 마중을 나와 계셨습니다. 엄마에 관한 이야기는 일체 없고, 날씨 얘기나 나눴지요. 엄마는 제가 도착하기 직전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지셨습니다. 백발이 되어 병원침대에 누워 계시는 엄마는 깊은 잠에 빠져 계신 것만 같아서, 저는 엄마한테 계속 말을 걸었어요. 비행기 타고 오는 길에 창밖에 별이 엄청 많이 떠있었어. 시애틀에 경유했는데 대기 시간이 길어서 시내에 나가 수산시장도 구경하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대답은 커녕 눈길 한번 안주시더라구요. 한달이 지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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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독하디 독하게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는 소리를 하려다가 얘기가 여기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는 왜 울컥울컥하는지. 하필 한국에 온 뒤 처음으로 노트북을 가지고 카페에 나와 글을 쓰고 있는데 난감하네요. 그렇다고 슬픔에 빠진 것은 아닙니다. 데이빗 게타(David Guetta) 의 흥겨운 음악을 듣고 있어요. 병원에서도 그다지 심각한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문병 온 사람들은 엄마가 꾼 돈을 안 갚으려고 저런다는 둥 농담을 일삼았고, 혼수상태에 빠진 엄마보다는 럭비선수처럼 살이 찐 저 때문에 더 충격을 받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몬타나에서 취미로 럭비를 하며 토너먼트까지 나갔었어요. 이 얘기는 왜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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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할머니댁에 다녀왔습니다. 아빠 차(오빠 차 아님...) 를 얻어타고 갔는데, 전날 아빠와 크게 다투어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불효막심하게도, 저는 그 고요함이 너무나 평온하고 좋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는 제게 다섯 가지 질문을 계속 하셨습니다. 집은 어디냐, 한국엔 아주 온거냐, 결혼할 사람은 있냐, 일은 하냐, 동생은 뭐하냐.. 지난 번에도 물어보신 건데 잊으셨나 싶어서 열심히 대답을 해드렸습니다. 송도에 살고, 당분간 한국에 있을 거고, 결혼할 사람은 없고, 지금은 일을 안하고, 동생은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물어보십니다. 집은 어디냐, 한국엔 아주 온거냐, 결혼할 사람은 있냐.... 안그래도 저희 엄마 덕분에 <첫키스만 50번째>를 매일같이 찍고 있는데 할머니 앞에선 명함도 못내밀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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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댁을 떠나기 전, 자리에 앉아 아홉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모든 대답을 다시 해드렸습니다. 질문 다섯개는 똑같았지만 제 대답 하나는 달랐습니다. 네, 있어요. 부모님께도 말씀드리지 않은 이야기를 할머니께 하나, 둘 꺼내 놓으니 그동안 무거웠던 마음이 후련해졌습니다. 그것만 기억하셔도 곤란한데... 알고보니 할머니의 큰 그림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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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는 길, 핸드폰을 장만했습니다. 한국에 온 지 4개월만이네요. 새 핸드폰을 구매하는 것은 8년만입니다. 제일 신나는 것은 이제 핸드폰 본인인증을 할 수 있다는겁니다! 감격...ㅜㅜ 출시된 지 2년이 되었다는 아이폰6S 를 구입했습니다. 기계값이 16만원쯤 하더라구요. 제 옆에 있던 손님은 고등학생과 그녀의 어머니셨는데, 직원이 아이폰 6S 가 저렴하다며 소개하자 그 고등학생이 소스라치며 싫다고 하더군요. 어머니와 한참을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결국 저와 같은 모델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울기 직전이었고요. 공기계나 아빠 핸드폰을 얻어 쓰다가 4년만에 ‘내’ 핸드폰이 생겨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저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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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댓글을 달 때 에너지를 많이 쏟는 편입니다. 누가 보면 답답할 정도로요. 가진 건 시간 뿐이면서 요새는 잠을 푹 자지 못해 대댓글 다는 속도가 더 느려졌습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본격적으로 스팀잇을 하면 집중해서 신중하게 대댓글을 달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핸드폰 생겼다고 자랑하고 싶어 새글쓰기를 누르고 말았네요. 이젠 마침 전화를 받고 근처 공원으로 갑니다. 님의 스팀잇 로고가 그려진 에코백을 메고 다니는 여인네를 보면 아는 척 해주세요. 커피 쏘겠습니다.
(추가)
어머니 사고 관련 일은 벌써 몇 해전 일입니다.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어 그 연장선이자 번외처럼 한 이야기인데, 사정을 모르시는 분들께는 걱정을 끼쳐 드리고 말았네요. 이제는 훨씬 괜찮아진 일이랍니다!! 응원과 위로의 말씀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