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풍미를 느낀다고 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이야. 풍미는 혀 안쪽 끝에서 코로 올라오는 작은 구멍. 그 구멍을 통해 전해져 오는 음식향을 맡는 거거든. 그 향에 의해 음식에 대한 전체적인 미감이 달라져. 작은 향으로도 전체 맛이 달라지게 만들지. 그런데 다른 동물들에게는 그런 통로가 없다고 해. 뼈로 막혀 있지. 왜냐면 음식을 먹는 동안 밖을 봐야 하기 때문이야. 경계를 해야하기 때문이지. 그래서 그 구멍이 없어.
반면에 사람은 그 구멍을 통해 음식을 더 잘 즐길 수 있어. 향까지 말야. 그 음식을 즐기면서 아마도 동료들과 같이 나눠먹었겠지. 즉 사회적 뇌를 키우는데 풍미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을 거야. 스모크한 향이 나, 먹어봐. 하는 식의. 수컷은 사냥을 통해 동물을 잡았지만, 그 잡는 양이 별로 안되었다고 해. 그나마 잡으면 부족 전체에게 나눠주길 좋아했어. 그래야 여러 암컷에게 환심을 사기 때문에. 아마도 주된 식사는 암컷이 채집하는 걸로 이뤄졌을 거야. 화식을 해서 영양분을 높이고 그래서 뇌가 더 사회적으로 발달할 수 있었을 거야.
그렇게 우애와 발달을 위한 음식은, 그러나 이면에 죽음을 담고 있어. 그래서 경건한 거지. 렘브란트의 도살된 소 그림을 봐봐. 우리에게 음식이기도 하지만 잔혹한 경건함이 담겨 있잖아. 덧칠의 덧칠을 해서 소의 잔혹한 죽음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어. 누군가의 음식이 된다는 건 잔혹한 일이지.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않아. 경건함이 있어. 그게 예술의 힘이겠지. 잔혹한 삶에서도 경건함을 찾는 것. 그걸 드러내는 게 예술의 힘일 거야. 삶 이면에 죽음을, 죽음 이면에 삶을. 그리고 그 경계에 예술이 있어.
잔혹한 경건함, 그 풍미가 어쩌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지도 몰라. 잔혹함만 있으면 탐욕적인 살육이 되겠지. 경건함만 있으면 도덕주의자가 되고 말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