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산데르스 반 헤메센, '우는 신부']
우는 모습이 보여 아니면 웃는 모습이 보여? 제목을 말했으니 우는 모습이 보이겠다.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우스꽝스러운 게 느껴지기도 해. 우리 뇌가 감각을 인지하는 건 어떤 목적에 따라 인지한다고 해. 즉 뇌의 앞부분인 전전두피질에서 목적을 설정하지. 그러면 우리의 감각을 담당하는 감각피질은 그 목적에 맞게 정보를 선택한다는 거야.
예를 들어 우리가 열쇠를 잃어버렸어. 아무리 생각을 해도 생각이 나질 않아. 그런데 열쇠를 찾아야 겠다..란 목적만 갖는 거야. 그러고 시야를 돌리다 보면 열쇠가 있는 곳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지. 이런 경우가 우리 목적에 따라 감각정보가 필터링 된 거야.
우리가 흔히 당황해 하는 건, 우리가 콘트롤 할 수 없을 때야. 어떻게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는 거야. 이럴 때 간단하게 목적을 정하는 거야. 틀려도 괜찮으니깐 작은 목적을 정하는 거지. 그러면 뇌가 그 목적에 따라 정보를 수집해. 신호와 소음을 구분하기 시작하는 거지. 빅데이터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하는 뇌가 목적을 정하면 그 목적에 맞게 신호를 해석해 주는 거야. 그렇게 작은 것부터 결정하기 시작하면 좀더 큰 걸 할 수 있게 되는 거야.
그러다가 좀더 큰 걸 결정해야지. 즉 자기가 사는 이유말야. 자신의 존재 목적을 정하는 거야. 그러면 그것에 맞게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해. 큰 꿈을 갖는 사람은 결국 그 꿈을 닮아가기 마련인거야. 그래서 신앙이 필요한 이유인지도 모르고, 신화가 필요한지도 몰라. 저 하늘의 별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 이유인지도 몰라. 조금이라도 닮아가기 위해서. 물론 많은 사람들은 존재의 나침반을 잃어버리기 쉬운 소음에 물들어 살지만.
우리는 충동에 따라 살기 쉽고 그 충동은 우리에게 습관으로 남아 있어. 즉 즉각보상을 얻어야 겠다는 충동. 이 충동은 생존의 위협이 있을 때 즉각적인 먹을 걸 먹음으로써 생존에 유리한 측면이 있겠지. 그런데 이런 충동이 반복되면 습관으로 남아. 재밌는 건 그 습관은 어떤 보상도 없는데 그냥 하는 거야. 습관처럼 먹는 거. 거기엔 어떤 보상이 없거든. 그런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습관적으로 먹게 되는 거야. 습관적으로 TV를 보는 거. 거기에도 마찬가지로 어떤 보상이 없어. 처음엔 충동에 따른 보상이 있었겠지. 그런데 그게 습관이 되면 거기엔 보상이 없어도 그냥 하게 되는 거야.
충동과 습관은 자동화된 기제라 막기가 어려워. 즉 의식적인 노력으로 억지록 억지로 통제하기 어렵다는 의미지. 다만 이들을 막을 수 있는 건 다른 습관이야. 좋은 습관을 들이는 거지. 그리고 목적을 담당하는 전전두피질이 좋은 습관을 목적으로 삼으면 되. 그렇게 되면 그 목적에 맞는 감각정보들이 들어오고 이게 반복되는 좋은 습관이 되는 거야.
예를 들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먹는 충동과 습관이 있다고 해봐. 이때 그 구강욕구를 좋은 차를 마시는 습관을 들이는 거야. 발효가 잘되어 미생물이 풍부한 차를 마시면 스트레스가 사라지거든. 구강충동과 습관을 목적지향적으로 바꾸는 거지. 이런 식으로 조금씩 좋은 습관을 들이면 구태어 충동을 억누르거나 반복강박을 회피하지 않아도 대응이 가능해.
마치 울음 속에서 웃음을 느끼듯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