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 이 그림은 유명하잖아. 그런데 이 그림때문에 자살을 한 사람이 10명도 넘는다는 이야기도 있어. 그 사람은 남자들이지. 여자의 마음을 알수 없어 괴로워하는 소년들. 소문인지 진짜인지 모르지만 모나리자가 던지는 질문은 묘해. 즉 답이 없다는 거지. 어디에 속해 있지 않은 묘한 질문을 모나리자는 던지고 있는 거야.
여자가 남자에게 매력을 갖기 위해서는, 여자는 수수께끼에 머물러 있어야 해. 답이 없어야 한다는 거지. 간단해. 의미없는 행동을 하면되는 거야. 그 순간 남자는 기대했던 의미반응이 여자에게 나오지 않으면 일종의 멘붕이 오는 거야. 그래서 더욱 그 수수께끼에 매달리게 되는 거고. 그 동굴에서 나올 줄 모르게 되는 거야.
여자가 자연스럽게 알듯 모를 듯 행동하는 건 이런 남자의 마음을 자기에게 머무르게 하려는 진화적 전략인지도 몰라. 즉 남자로부터 양육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받기 위해서 여자는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짓는 거야. 그래야 남자는 그 수수께끼를 풀려고 매달릴테니깐 말야. 남근에 의해 정해진 의미체계가 덧없이 되는 것, 즉 그동안 믿어왔던 의미체계가 의미없이 되고 덩굴로 뒤덮히게 되는 것. 이게 여성의 자연스런 전략이야. 야만스런 남자는 그 덩굴에 갇혀서 헤메고 말아.
모나리자 그림이 갖고 온 죽음. 그 죽음은 그녀가 섹시하기 때문에 생긴게 아냐. 즉 진화적 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생긴 게 아냐. 알듯 모를 듯 하기 때문에 생긴 거지. 매력은 기형학적 비율때문에 생긴게 아니라 오히려 기우뚱함에서 비롯된다는 거. 지속적인 매력은 흠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거.
사랑의 단상을 쓴 롤랑 바르트의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 빙빙 돌면서 짝짓기를 하는 게임이 있었데. 노래를 부르다가 둘씩 짝을 짓는 게임이었나봐. 혹은 셋씩, 혹은 네명이. 그런데 운이 나쁘면 짝을 얻지 못하잖아. 그러면 혼자 원 가운데 앉아 있어야 했데. 그런데 롤랑 바르트가 짝이 없게 되었다고 해. 그리고 원 가운데 앉았지.
그 순간 그는 일종의 자유와 편안함을 느꼈단 거야. 사랑의 주체가 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