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이 공을 주고 받는 놀이를 했데. 그런데 놀이 도중에 두 사람만 공을 주고 받는 거야. 한 사람한테는 의도적으로 주지 않는 거지. 사회적 거절이 어떤 마음을 형성하는지 알아보는 실험이었어. 뇌를 봤데. 그런데 뇌에서 사회적 거절에 대해 신체적 고통과 같은 해석을 하고 있다는 거야. 맙소사. 즉 심리적 고통은 신체적 고통과 같다는 거지. 적어도 뇌에서는 말야.
사실 고통은 신체에서 일어나는 게 아냐. 뇌에서 일어나는 거지. 감각과 감정, 인지적 판단 등이 복합된 게 고통이라는 거야. 신체에서는 단지 전기적 신호만 있겠지. 그 전기 신호가 뇌에서 모여서 종합적으로 해석된게 고통이라는 거야. 연인과 헤어질 때, 사회적으로 거절 당할 때, 을이라고 무시당할 때, 이런 게 뇌에서는 신체적 고통과 같은 고통이라고 해석하는 거야.
그런데 신체적 고통과 다른 점이 있어. 일단 우리는 신체적 고통에 대해서는 민감한데, 심리적 고통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아. 즉 신체적 고통을 당했을 경우에는 잘 쉬라거나, 병원에 가라거나 등등 적극적인 치료를 말하잖아. 그런데 심리적 고통을 당했을 때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진다거나 그냥 놓아두라거나 마음을 비우라거나 등등 다소 추상적으로 회피적인 대응을 하기 쉬워.
하지만 심리적 고통은 신체적 고통과 달리 지속시간이 길지. 그리고 때론 더 고통스럽기도 하고 말야. 술이라고 하는 진통제가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을지도 몰라. 심지어는 타이레놀도 그럴 수 있다는 거야. 하지만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고통을 치유해주지는 않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뇌라는 것에 관심을 두고 방법을 알아보자. 고통은 뇌의 해석이라고 했잖아. 몸에서 일이나는 일이기 보다 뇌에서 종합적으로 해석한 결과가 고통이라는 거야. 사회적 거절은 뇌에 위험신호를 보내는 거야. 이렇게 하면 거절당할 수 있다는 거. 생존과 번식을 위해 사회적 연결고리를 맺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일 수 있지. 수만년의 과거 경험을 통해 이건 고통이라고 해석하는 거야. 물론 그 해석이 도움이 될 때가 있지만 별로 도움이 안 될때도 있어. 사회적 거절 자체가 필요할 때가 있거든.
맨처음 예에서 공놀이를 하다가 한 사람에게만 안 주는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그 안 받은 사람은 사회적 거절에 따른 심리적 고통을 경험하겠지. 그런데 맥락을 바꿔서 생각해 보는 거야. 예를 들면 그 안 받는 사람이, 아 힘든데 잘되었다 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둘이 공놀이를 받는 걸 시키는 입장이거나 관찰하는 입장이 되는 거야. 즉 자신이 그 사람들을 거절하는 포지션을 갖게 되는 거지.
말하고 싶은 건, 해석의 맥락을 바뀌면 고통이 달라진다는 거야. 뇌가 해석할 때는 맥락이 있어. 이건 고통이라고 해석하는 건 그 맥락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는 거야. 그리고 한가지 사안에는 수많은 맥락이 있어. 뇌가 어느 한 맥락에만 고착되어 있으면 다른 맥락을 보지 못해. 대개 긴장되어 있을 때는 한가지 맥락에 고착되기 쉬워. 따라서 긴장을 풀고 가만히 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다 보면, 다른 맥락이 보일 거야. 멈추고 다른 맥락으로 갈아타는 거야.
음, 여전히 쉽진 않지? ^^; 나도 그래. ^^; 하지만 다른 운동도 그렇지만 연습하다 보면 맥락갈아타기가 더 수월해질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