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야기 할 인물은 성리학의 대학자 퇴계 이황입니다.
이황은 1534년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세자의 스승을 맡으며 벼슬길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성균관에서 수많은 사림 제자들을 가르치는 교수 역할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황의 인생도 그리 평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을사사화 때 관직을 박탈당하게 되는데 복직과 벼슬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하게 됩니다.
후에도 왕이 몇 차례 벼슬을 하사했지만 거절하기도 하고 잠시 맡았다가 그만두기를 반복했습니다.
명종에서 선조로 왕이 바뀐 후에도 이황은 벼슬을 맡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황의 고향은 예안인데, 이곳에서 지방의 유학 살리기에 힘을 썼습니다.
1556년에는 향약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1561년에는 도산서당을 세워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습니다.
이 서당은 이황이 죽고 난 후 그의 사당을 모시는 도산서원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황은 선조의 사랑을 받아 그가 죽은 후에 영의정의 벼슬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황이 얼마나 존경스러운 인물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유학자가 퇴계 이황을 추앙했습니다.
유학자들은 이황을 '동방의 주자'하고 불렀습니다.
주자는 중국 송나라의 학자인데 그가 만든 학문이 주자학이고, 주자학이 곧 성리학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자는 성리학의 창시자인 셈이지요.
이황을 동방의 주자라고 부르는 걸 보면, 성리학을 얼마나 통달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리학은 우주와 인간의 본성을 연구하는 학문이자 철학입니다.
주자는 우주가 형이상학적인 '이(理)'와 형이하학적인 '기(氣)'로 구성돼 있다는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라고 합니다.
이황은 이를 나름대로 재해석해 주리론을 주장했습니다.
즉 이가 기보다는 우월하다는 의미입니다 .
이가 움직여야 기가 생긴다는 주장입니다.
이가 훨씬 능동적이고 주체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리학은 인간 본성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이황은 사단칠정 이론을 주장했습니다.
사단은 측은지심(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수오지심(제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마음), 사양지심(사양할 줄 아는 마음), 시비지심(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인데, 이것은 '이(理)'에서 비롯된 본성을 말합니다.
칠정은 희로애락애오욕인데,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 등 인간의 욕구를 말하는데, 이것들은 '기(氣)'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황은 성리학을 이론화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 사단칠정 이론은 금세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33세의 젊은 유학자 기대승이 이론에 허점을 비판하며 무려 8년간 논쟁이 벌여고 이이도 이 논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황의 이 사상은 일본까지 전파되었고, 이후 영남 지방의 학자들이 이황의 사상을 계승하며 영남학파가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이이의 사상을 계승한 학파는 기호학파라 부릅니다.
이황과 이이는 라이벌이 아닌 성리학을 연구한 학자들입니다.
이황은 주리론에 치중했다면 이이는 주기론을 주장했습니다.
오늘은 성리학 대가인 퇴계 이황의 사단칠정 그리고 주리론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다음에는 이황과 학문적 라이벌이었던 주기론을 펼쳤던 이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