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야기 할 인물은 포은 정몽주입니다.
어제 이야기 했듯이 목은(牧隱) 이색, 야은(冶隱) 길재 우 두명과 함께 삼은중에 한명이죠.
스승인 이색마저 최고로 평가한 최고의 학자 포은 정몽주는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다섯 살 아래인 정도전 또한 그를 존경했다고 합니다.
그는 뛰어난 외교관이기도 했는데 복잡한 국제 관계를 잘 꿰고 있어 명과 일본에도 사신으로 가서 실타래처럼 얽힌 외교 문제를 잘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색이나 정몽주는 신진사대부 온건파로 위화도 회군까지는 이성계 일파와 행동을 같이 했는데 창왕 옹립 문제로 분열하게 됩니다.
이색은 창왕을 옹호했지만 정몽주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성계 일파가 창왕을 끌어내리고 공양왕을 옹립할 때도 정몽주는 이성계를 두둔했고 심지어 공양왕을 세운 공을 인정받아 공신 반열에 오르기도 합니다.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에 있는 정몽주의 묘]
이성계와 등을 돌린 것은 그 다음부터 입니다.
정몽주는 고려의 개혁을 원했지만 나라 자체를 없애는 데는 결사반대했습니다.
역성혁명으로 새 나라를 세우려는 이성계 일파와 뜻이 달랐던 거죠.
하루아침에 동지가 적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마침 이성계가 사냥 도중 말에서 떨어져 크게 다치는 일이 발생합니다.
정몽주는 이성계 측근들을 제거하기에 좋은 기회라고 판단하여 정도전을 가둬버리고 조준과 남은등 강경파를 유배를 보냅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급히 이성계가 있는 해주로 달려가 상황을 전했고 그 날로 이성계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정몽주는 이성계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했는데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졌지만 큰 사건은 터지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가려는 정몽주를 이방원이 붙들어 오랜만에 회포나 풀자며 술자리를 제안을 합니다.
그래서 술자리가 마련되는데 이방원이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하는 하여가를 부르며 함께 새 나라를 세워 백년까지 태평성대를 누리자고 설득을 합니다.
정몽주가 답가를 부르는데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로 시작하는 바로 단심가입니다.
새 나라 건국에 반대하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고려에 충성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입니다.
포은 정몽주는 신진사대부들 사이에 큰 신망을 얻고 있는 인물인데 그런 사람이 조선 건국에 반대한다면 과연 어떻게습니까?.
이방원은 동지로 만들지 못한다면 제거하는게 낫다고 판단을 하였고 집으로 돌아가는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제거를 하게 됩니다.
그때 흘린 피가 오늘날까지도 지워지지 않는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기도 합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나서 이성계는 공양왕을 끌어내리고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바로 조선이 건국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고려 왕건부터 포은 정몽주까지 고려시대를 이야기 해보았습니다
다음은 조선시대 이성계 부터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