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북은 '성미가 불같았다', '다혈질이었다', '광인이었다'는 극단적인 평가의 기록이 많다.
하지만 최북의 원래 성품이 고삐 풀린 성난 황소처럼 공격적이거나 주위의 시선을 끌기를 좋아해서 의도적으로 이상 행동을 한 것은 아닌 듯하다.
그가 그린 다양한 그림들에서 깊은 속내가 읽힐 뿐만 아니라, 평정심을 유지할 때 그의 말 속에는 묘한 깨우침이 있다는 기록도 전해지니 말이다.
또 '붓으로 먹고 사는 사람'을 뜻하는 '호생관'이란 호와, '칠칠한 사람 혹은 칠칠치 못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칠칠'이란 호에서는 거만함 대신 순박함이 느껴진다.
특히 <기우귀가도 騎牛歸家圖>에서는 최북의 진짜 속마음이 엿보인다.
소년이 소를 타고 강을 건너가는 장면으로, 소는 뿔을 보니 늙었으며 털은 길고 뻣뻣하며 앞다리와 뒷다리의 근육이 꽤 거칠게 도드라져 있다.
허름한 옷차람의 소년은 소를 타기에는 아직 어려 보이지만, 소에 의지하여 꽤 깊고 거센 강물을 건너고 있다.
가만히 소년의 얼굴을 보니, 최북의 얼굴과 닮았다.
그의 얼굴에 관한 일화가 있다. 어릴 적에 동네에서 놀다 돌아온 최북이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사람들이 나보고 메추라기라고 자꾸 놀리는데 메추라기는 어떻게 생겼어요?"
어머니의 대답이 일품이다.
"메추라기는 네 얼굴처럼 생겼다."
문득 최북의 어머니답다(?)는 생각이 든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단계중 하나를 그린 <기우귀가도>는 최북의 진짜 속내를 보여 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십우(十牛) 혹은 심우(尋牛)는 불가에서 수행 단계를 소 찾는 과정에 비유한 것이다.
최북 <기우귀가도 騎牛歸家圖> 18세기, 종이에 담채, 24.2x32.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자기의 본성)를 찾아 나서는 심우, 소의 발자국을 발견하는 견적, 소를 발견하는 견우, 소를 얻는 득우, 소를 길들이는 목우, 길들인 소를 타고 깨달음의 세계인 집으로 돌아오는 기우귀가, 소를 잊고 안심하는 망우존인, 소도 사람도 공임을 깨닫는 인우구망, 있는 그대로의 전체 세계를 깨닫는 반본환원, 세속으로 들어가 중생들을 계도하는 입전수수(入廛垂手)가 바로 그 열 단계다.
결국 길든인 소를 타고 깨달음의 세계인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최북의 진솔한 심정이었던 것이다.
불함리한 세상의 벽에 계속 몸을 던지며 결국 자신에게 더 큰 고통과 상처를 주었던 최북.
그런 그가 내적 갈등을 버리고 온화하게 길들여진 소를 타고 평화와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옛그림에도 사람이 살고있네 중에서>
♠최북(崔北 1712~1760)
조선 숙종, 영조때의 화가이다. 본관은 무주, 초명은 식, 자는 칠칠, 호는 호생관, 월성, 성재, 기암, 거기재, 삼기재이다.
자신의 이름인 북자를 반으로 쪼개서 자를 칠칠로 지었으며, 붓하나로 먹고 산다고 하여 호를 호생관이라고 지었다.
산수, 인물, 영모, 화훼, 괴석, 고목을 두루 잘 그렸는데 특히 산수와 메추리를 잘 그려 최상수, 혹은 최순 즉, 최메추라기라는 별칭을 얻었다.
필법이 대담하고 솔직하여 구애받은 곳이 없었으며 남화의 거장인 심사정과 비길 만한 인물이다.
한눈이 멀어서 항상 반안경을 끼고 그림을 그렸으며 성질이 괴팍하여 기행이 많았고 폭주가이며 여행을 즐겼다.
그림을 팔아가며 전국을 주유, 금강산 구룡연에서 천하의 명사가 천하의 명산에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외치며 투신했으나 미수에 그친 일도 있다.
칠칠거사로 알려진 많은 일화를 남긴 위인으로 시에도 뛰어났으며 49세로 서울에서 죽었다.
그의 작품으로는 <미법산수도>를 위시한 <송음관폭도>,<수하담소도>,< 설산조치도>, <의룡도>,등 다수가 있다.